집에 도착했다. 현관에서 시계 방향으로 거실, 안방, 화장실, 작은방, 주방. 모든 게 달라져 있었다.
아랫배가 뜨거웠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돈독이 올라 안 입고 안 먹고 안 놀고 산 것이 아니다.
아침잠이 많아 늘 부랴부랴 일어났고 아침 식사는 거르기 일쑤였다.
점심과 저녁은 회사에서 먹고 군것질은 안 한다. 술, 담배, 유흥을 즐기지 않아 그쪽으로 돈 쓸 일이 없던 것도 꼬박꼬박 저축할 수 있던 이유다.
틈이 나면 책을 읽는다. 소설, 만화, 에세이, 역사서, 자기계발서까지 닥치는 대로.
책은 서점에 가서 직접 산다. 온라인 구매가 훨씬 경제적이지만, 책 한 권을 들어 무게를 가늠하고, 제목과 표지에서 내용을 짐작하고, 아무 데나 펼쳐 문체를 파악한 뒤 소유 여부를 결정짓는 행위에 중독되었다.
책을 읽지 않을 땐 글을 쓴다. 그러다 보니 작문 실력이 늘었다.
취미로 인터넷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기대보다 반응이 좋았다. 덕분에 매달 교통비 정도의 부수입도 올리고 있다.
외모를 가꾸는데 돈을 쓰지 않는 건 검소해서가 아니라 관심이 없어서다.
낭비하는 성향이 아니었을 뿐, 돈에 미쳐서 하고 싶은 것도 못 하고 살진 않았다.
견딜 수 없이 고단한 삶도 아니었다. 지루하긴 했지만 외로웠던 적도 없다.
나름대로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았고, 평생 꿈꿨던 평화로운 내 집을 마련했을 뿐인데.
내 얼굴, 말투, 행동, 숨소리 그리고 내가 자라온 환경이 여희주의 마음에 안 들었을 수 있다.
등산대회 날에도 내가 탈진한 것까진 몰랐을 테니, 밥상머리에서 뛰쳐나가는 열 살 아래 후배가 죽도록 미웠을 수 있다.
그래서 그런 창의적인 모함을 만들어 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는지도.
게다가 여희주의 생존한 부모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일찍, 내 부모가 세상을 떠난 것도 사실이었다.
그걸 트집 잡아 여희주가 나를 비난한다 해도 그건 그녀의 자유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녀가 내 평생 목표이자 최고의 성취물인 이 집을 깎아내릴 권리는 어디에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