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에게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13)

by 노동자a

다음 날 아침. 출근 준비를 마친 난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걸어 내려갔다.

아끼던 빨간색 하이힐을 신은 탓에 발뒤꿈치가 금세 쓰라려 왔다.

아파트 단지 내리막을 걸을 땐 뒤꿈치가 따갑다 못해 뜨거웠다. 지하철에 빈자리가 여러 군데 있었지만, 그냥 서 있었다.

역에서 회사까지 늘 걷던 그 길을 걸었다.

얼얼해진 발뒤꿈치에서 빨간 피가 흘렀다.


출근해 자리에 앉은 뒤로 정신이 없었다.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쳤다.

두 눈은 벽시계와 여희주 사이를 바쁘게 오갔다.


오전 열한 시. 여희주가 파우치를 들고 화장실로 가는 게 보였다.

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따라갔다.

복도를 지나 화장실까지의 길이 천릿길처럼 멀게 느껴졌다.

화장실 문고리를 잡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다행히 등 뒤의 손은 침착했다.

크게 심호흡한 뒤 문을 열었다.

makeup-6698881_1280.jpg

여희주는 거울 앞에서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다.

아주 잠깐, 하지 말까? 지금이라도 멈출까? 살던 대로 살까? 그런 생각도 했다.

순간 여희주의 입술 한쪽이 피식 올라갔다.


거봐, 넌 아무 짓도 못 해. 내가 아무리 짓밟아도 찍소리 못하는 게 바로 너야.


난 여희주를 똑바로 보았다.

너만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야. 난 널 증오한다고! 목구멍에 걸린 말을 꾹 참고, 등 뒤에 있던 손을 그녀의 옆구리로 힘껏 뻗었다.

knife-376381_1280.jpg

과도가 뚫고 들어간 그녀의 옆구리에서 시퍼런 액체가 삐죽삐죽 새어 나왔다.

예상외로 여희주는 아무런 반격도 하지 못했다.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그녀의 얼굴에 드러난 공포였다.

긴 세월 툭하면 나를 무시하고 모욕을 주던 그 무시무시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쨌거나 난 연습한 것들을 하나씩 실행했다.

우선 그녀의 한쪽 귀를 잡아 들어 올렸다.


“악착같이 돈이나 버는 불쌍한 애?”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내 집이, 품격이 떨어져?”


여희주의 머리채를 잡아 화장실 문에 처박았다.

널브러진 얼굴을 잡아 틀어 나를 보게 했다.


“네가 아무리 더럽고 쓸모없는 벌레여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어.”


마지막 말까지 마쳤을 때 다리에 힘이 풀렸다.




유일하게 면회를 온 사람은 수애였다.

말없이 한참을 앉아있던 수애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 여자한테 당한 사람이 언니뿐인 줄 알아? 다들 참고 사는 거야. 똥이 무서워서 피해? 더러워서 피하지! 언니도 끝까지 참았어야지!”


수애는 자신이 내게 전한 말 때문에 이 사달이 났다고 여기고 있었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런 생각은 해 본 적도 없는데.

여희주를 찌른 것에 대해서는 전혀 후회하지 않지만 수애의 죄책감에 대해서는 미안했다.


“미안해.....”


떨리는 음성으로 겨우 한마디를 했다.

눈물이 툭 떨어졌다.

화요일 연재
이전 08화벌레에게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