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하게 보면 되돌아옴
기획팀 스물 여덟명이 모두 앉을 수 있는 회의실에 달랑 네명만이 띄엄띄엄 앉아있었다.
다음주 멕시코 지사로 파견나가는 김윤의 과장, 사장 빽으로 입사한 황명철 대리, 고졸 사무직 손다정 그리고 2년 계약직 김은희. 구태여 조직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자들이었다.
화이트보드엔 ‘오 팀장님 송별회’라는 글씨가 애매하게 쓰여있고, 테이블엔 생크림 케이크와 과자가 드문드문 놓여있었다. 초등학생 생일파티보다 못한 초라한 상차림은 손다정의 연출이었다.
다정은 ‘이벤트 걸’로 회사내에 명성이 자자했다. 팀원 생일파티부터 단합대회, 송년회까지 도맡아 준비하곤 했는데, 늘 적은 예산으로도 전문 이벤트업체 못지 않은 그럴싸한 모양새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녀의 솜씨는 입소문을 타고 총무팀에까지 전해졌고, 올초 신임 사장 취임식에까지 동원되었다.
그런 그녀가 열아홉살에 입사해 무려 십년간 모셔온 팀장의 송별회를 이토록 초라하게 꾸미다니.
‘손. 나한테 맺힌게 많은 모양이구나.’
상렬이 다정을 노려보았다.
다정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동그란 눈매가 ‘오 팀장, 내 솜씨 어때?’ 하는 것 같았다.
손! 부르면 개처럼 쪼르르 달려오던 게. 작은 꾸지람에도 금세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던 게. 어디서 감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드는지.
상렬은 속이 뒤틀렸다. 하지만, 날이 날이니 만큼 언성을 높일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그에겐 평소처럼 말단 여직원을 쥐잡듯이 잡으며 스트레스를 풀 만한 기운이 남아있지 않았다.
“손. 번거롭게 뭘 이런걸 다 차렸어. 바쁠텐데.”
“아무리 바빠도 챙길건 챙겨야죠. 명색이 기획팀장님 송별회인데.”
얼씨구. 얼굴 안본다고 막나가네.
상렬은 부아가 치밀었지만 또 한번 참았다.
“아무튼 수고했어.”
순간 다정이 울음을 왈칵 터뜨렸다.
“오 팀장님, 불쌍해서 어떡해요. 으허헝!”
“다정 씨, 왜그래. 팀장님 무안하시게.”
김 과장의 만류도 아랑곳없이 다정은 준비한 대사를 하나씩 읊어댔다.
“팀장님이 너무 불쌍해요! 23년간 근무한 직장에서 쫓겨나다니!”
“언니, 그만해요.”
김은희도 한마디 했다.
“사람들도 너무해요. 팀장님 송별회에도 겨우 네 명만 모이다니. 다들 팀장님을 싫어하나봐요! 으허엉!"
요란한 울부짖음에 옆 팀 직원들이 회의실을 기웃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