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위한 단상

사랑하며 기억할게

by dropfairy

여섯 살쯤 되었었나.


집 앞 꽃밭을 지나 텃밭을 경계 짓는 가시 울타리가 있었어. 1미터 정도로 담을 쌓고 그 위에 쇠로 된 가시 덩굴이 엉켜있었지.


난 그 위를 매일 올라갔어. 걸음마를 하듯 차근차근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내디뎠어.


그런데 가시의 사나움 때문이었을까. 10센티도 되지 않는 담의 가냘픔 때문이었나. 매일 담 위에서 떨어지고 가끔 옷을 찢기고 미세한 핏자국을 남기기도 있어.


그래도 그곳에 오르는 걸 포기할 수 없었지. 여섯 살 내가 이 아픔을 이겨내면 어른인 나는 못 이겨낼 고통이 없을 것 같았거든.


보름이 지났을까. 몇 번쯤 아슬아슬 가시 덩굴이 끝나는 샘터 가까이에 도착했다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어. 그렇게 며칠을 바득바득 더 오르다 담의 끝인 샘터의 시작점까지 결국 걸어갔어.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고통을 이겨내야 성장할 수 있다."


드라마에서 본 교훈 때문인지, 어른들의 세상살이를 관찰한 덕분인지 그렇게라도 6살의 어려움을 이겨내보고 싶었어.






'큰'이라는 단어를 붙여야 했던 나의 오빠.


흙과 풀과 조약돌이 장난감이었던 나에게 새하얀 곰인형과 금발의 마론인형을 사다 준 사람이 큰 오빠였다. 놀이동산 구경을 처음 시켜준 사람, 러시아 유명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을 보여준 사람, 루 살로메와 루이제 린저, 니체와 헤르만 헤세, 전혜린과 김기림을 알려준 사람이 큰 오빠였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큰 오빠는 2주에 한 번씩 집에 왔다. 오빠가 오는 날이면 마당에서 노는 둥 마는 둥, 담 밖을 줄곧 주시했다. 오빠 머리가 담위로 삐쭉 지나가길 기다리며 깡충 뛰어가서 안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를 높이 들어 서울구경 놀이를 시켜줄 때면 찢어질 듯 웃음이 와락 터져 나왔다.






열 살쯤 되었었나. 시골집을 떠나 광주로 전학을 갔을 무렵부터인가 봐.


오빠가 집에 와도 더 이상 반갑지 않았고 오빠 앞에서 봄볕처럼 웃지 않았어. 오빠의 명령과 지시가 부당하다고, 나를 구속하고 억압한다고 생각했어.


선생님 말은 잘 들으면서 오빠 말에는 고분고분하지 않았어. "왜 그래야 해?" 하며 따지거나 "나는 강요와 강제와 억압에 굴하지 않는다."라고 대꾸했지.


6살 아이가 그랬듯, 내가 단단한 어른이 되려면 지지 않고 반드시 이겨야 할 대상으로 오빠를 생각했던 것 같아.


서로 반목하면서 "네가 누나였으면 좋겠다."라고 오빠가 말한 적이 있어. 말도 안 듣고 대들기 일쑤였던 7살 어린 동생에게 큰 오빠는 무엇을 보았던 걸까?






2004년 11월 4일. 큰 오빠의 죽음을 알았어.

10월의 어느 날. 오빠는 뉴질랜드 남섬의 커다란 호숫가에 잠들어 있었다고 했어. 부서진 차를 호숫가에 두고 오빠가 그 안에 잠겨있었어. 실종된 지 한 달이 되어서야 오빠의 시신을 찾았고 다시는 오빠를 볼 수 없다는 걸 알았어.

2004년 9월 2일. 오빠는 한국을 떠났어. 언제부터 계획했는지는 모르겠어. 출국 이틀 전, 잠깐 집에 들러서 앞으로 뉴질랜드에서 살 거고, 한국에 오지 않을 거라고 했어.


"다시는 못 보는 건가? 세월이 흐른 후 우리가 다시 만나면 그때는 웃으며 마주할 수 있을까?"


근무 중, "퇴근 후 곧장 집으로 오렴."이라는 작은 오빠의 문자를 받았어. 보는 순간 언듯 스치는 생각이 "큰 오빠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구나."였어.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바로 작은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 큰 오빠가 죽었냐고 대뜸 물어보고 말았어.

"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모든 게 멍해졌어. 내 목소리가 커졌다는 것, 그리고 어느새 내가 울고 있었다는 것 외에 기억나지 않아.


우리가 화해할 수 있다고 믿었어.

나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가고 있었고 우리가 함께 하는데 옳고 그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아가고 있었으니까.

오빠가 떠나기 전,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이렇게 말했어.

"내가 80% 다가갈 테니 오빠는 20%만 다가와. 내가 잘못해서 미안하고 오빠가 잘못한 것도 내가 미안해."

오빠가 죽고 내 가슴에 한 가닥 후회가 지나갔어. 80%의 자존심을 버리면서 20%는 왜 못 버렸는지, 나를 100% 내어 줄 생각을 왜 하지 못했는지 스스로가 원망스러웠어.



나를 가장 처음으로, 가장 특별하게 바라봐 준 사람이 나의 큰 오빠였어.
내 흑갈색 머리카락이 아름답다고 말해준 사람, 나의 내면이 깊다고 말해준 사람,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게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사람, 고통의 끝에서 결국 어느 누구도 미워하지 않게 만든 사람, 그리고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방법을 알려 준 사람.



나의 큰 오빠. 영석 오빠!
한 없이 사랑하고 용서하고 이해하며 오빠를 기억할게.

참한 발걸음에 그리움을 포개어 오빠 곁으로 걸어갈게.

등을 덥히던 봄날의 따스함으로 다시 오빠에게 안길게.

웃으며 마주하는 날까지 매초롬 고운 낯으로 살아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