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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법을 배우는 중, 태국(3편)

태국_(D+14 ~ D+16) 세계여행 中

by 정재훈

D+14 22.11.9 숙소 이동하는 날.


여기 숙소 에어컨은 적응이 안 된다. 새벽에 수건으로 에어컨 바람을 막고, 침낭을 꺼내어 덮었더니 그나마 잠을 자긴 했다.


오늘은 숙소를 이동하는 날이다. 카오산로드 쪽으로 갈 예정이라, 숙소 이동 이외 다른 일정은 세울 수 없다. 나갈 준비를 하고서 체크아웃도 미리 하고 1층에 짐을 두었다. 나는 책상에 앉아 드디어 가계부에 지금까지의 영수증을 다 붙였다.(당연히 가격을 정리하지는 못했다..) 생각보다 영수증이 많았고, 물을 살 때조차 영수증을 받았더니 양이 너무 많았다. 어차피 여행 끝까지 관리하기는 힘들 것 같았고, 그래서 대충 정리해서 필요 없는 것은 버렸다. 가계부를 매일 수기로 쓰다 보니, 피곤하면 자꾸 미루게 된다. 새로운 방법이 필요할 것 같다.


2시간 정도 정리를 했고, 오후 1시가 되어서야 가계부 정리가 얼추 끝났다. 밥 먹을 시간이 다 되어서 근처 시장으로 밥을 먹으러 나갔다. 여기 지내는 내내, 같이 지내던 한국인 형님은 유튜브를 찍고 계셨고, 오늘 점심 먹을 때 촬영을 도와달라고 한다. 시장에 도착했고, 나는 메뉴를 고르다 똠얌국수를 시켰다. 핸드폰 어플로 계산을 했고,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갔다. 하지만 식당 사장님은 돈을 못 받았다고 한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서로 당황했다. 한참 얘기하다가 결국 사장님이 그냥 먹으라고 하셨다. 나 돈 냈는데.. 억울한 상황이었다.


어제 백화점에서 먹었던 음식과 같은 것으로 하나 더 시켰는데, 가격은 1/3 이면서 양은 2배였다. 배신감이 들었다. 그렇게 촬영도 도와주고, 밥도 든든하게 먹었다.


시장에서 나와, 길거리에서 19바트 타이 버블티를 사서 마셨다. 900원 정도였는데, 맛이 상당히 괜찮았다. 가게 사장님은 우리 둘을 보더니, '오빠'라며 한국 드라마 팬이라고 하신다. 한참을 웃었다.


음료를 들고 숙소로 다시 돌아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다음 숙소 체크인 시간까지 쉬는 시간을 보냈다. 여행을 시작하고 벌써 2주가 지났는데, 아직까지 쉬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쉬지 못한 것 같다. 숙소 이동만 해도 상당한 체력 소모가 있었고, 그나마 남는 시간에는 뉴스 확인 및 일지 작성을 해야 한다. 우선 최대한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겠지만, 정말이지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


어느덧 시간이 벌써 저녁때가 되었다. 숙소 사장님께 여쭤보니 근처에서 버스를 타면 저렴한 가격에 카오산 로드로 갈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정처 없이 버스 정류장으로 보이는 곳에 서서 버스를 기다렸다. 같이 타는 현지인분의 도움으로 버스를 쉽사리 탈 수 있었고, 버스는 퇴근시간대였는지 꽉 찼다. 차가 너무 막혀서 버스는 거의 앞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 버스 안에는 안내양이 있었고, 한 사람 한 사람 결제하고 티켓을 나눠주고 계신다. 큐알 코드로 결제가 가능한 기계를 들고 계셨지만, 작동이 잘 되지 않아서 현금으로 냈다. 어디까지 가냐고 물어보고는, 지도로 주소를 보여주니 8바트를 내라고 한다. 가방은 무릎 위에 올려서 가라고 한다. 한 사람에 한 자리만 허용된다는 뜻 같았다. 좁은 좌석, 더운 실내, 무거운 가방. 당연히 에어컨도 없는 버스였지만, 창문을 열고 달릴 때 불어오는 바람은 정말 시원했다. 불편은 했지만, 저렴하기도 하고 새로운 경험이라 재밌었다.


중간쯤 이동했을 때, 사람들이 더 탑승하며 버스는 만차가 되었다. 오늘 숙소 이동하는 길이 꽤나 힘이 든다.

빨리 숙소 가서 씻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차가 막힌 탓에 1시간쯤 걸려서 카오산 로드 중심으로 들어왔다. 이제 여기서부터 숙소까지는 10분을 더 걸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신호등이 없다. 대충 보아도 10차선이 넘는 도로. 사람들은 자연스레 차도를 가로질러 가고 있다. 나는 가방을 앞뒤로 메고 있어서, 저 사람들처럼 이동하기는 무리였다. 그래서 현지인 한 명을 붙잡고 함께 이동했다. 너무 감사했다.


다행히 도로를 건넜고, 저렴한 숙소를 예약했더니 위치가 꽤나 구석 쪽에 있다. 도착하자마자 체크인을 했다. 내 방은 4층이었고, 화장실과 샤워실은 1층이라고 한다. 계단의 경사는 또 왜 이리 높은지, 무릎이 다 닳겠다. 숙소에서는 보증금으로 200바트를 현금으로 내라고 했는데, 내일 현금을 쓸 일이 많아서 여권을 냈다. 내일 여권이 딱히 필요하지는 않아서 괜찮을 것 같았다.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샤워를 하고 나와도 더운 이 나라가 아직도 적응이 잘 안 된다.


씻고 나와, 같은 방을 쓰는 폴란드에서 온 쿠바를 만났다. 우리 둘 다 아직 저녁을 안 먹어서,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나는 치킨 팟타이를, 그는 케밥을 골랐다. 폴란드에는 케밥 가게가 엄청 많고,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한다. 우리가 외국에서 한식 찾는 그런 느낌인 건가..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데, 목이 마르다며 근처 편의점에 갔다 온단다. 그러더니 맥주 한 병이 손에 들려있다. 더워서 맥주 없이는 버틸 수가 없다고 한다. 여기서 신기했던 것은, 식당에서 외부 음료를 그냥 마셔도 아무 신경을 안 쓴다는 것.


밥을 다 먹고서, 쿠바가 맥주를 같이 마시자며 편의점에 나를 데려갔다. 쿠바는 왜인지 포근한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잘 나오지도 않던 영어가 갑자기 술술 나온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영어로 대화를 해 내고 있다. 2시간 정도 맥주를 마셨고, 어느덧 호스텔 로비 문을 닫을 시간이라 우리는 바깥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가 맥주를 2병 마시는 동안, 쿠바는 벌써 4병째다. 맥주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


폴란드는 내게 너무 생소했던 나라였고, 쿠바도 한국에 궁금한 게 많다고 했다. 우리는 정말 쉴 새 없이 떠들었고, 불과 4시간 전에 만난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친해졌다.


그는 30살이었는데, 나를 전혀 동생으로 보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한 사람으로서 봐주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 사회에서, 나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속한다. 그래서인지 내 생각, 내 의견을 어딘가에 자유롭게 말하기는 힘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오늘 쿠바와의 대화에서는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사람의 차이인지, 문화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절대 어리지만은 않고, 꽤나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튼, 폴란드에 대해 꽤나 알 수 있었던 날이다.

오늘 또 친구 한 명 사귀었네! 가만히 있는 것보다 이동해야 무언가 하나라도 바뀐다.


*14일 차의 한 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나에게도 적용된다.



D+15 22.11.10 태국 놀이동산에서


7시 30분, 알람이 울리기 전부터 눈이 떠졌다. 오늘은 놀이동산에 가기로 한 날이라서,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쿠바는 아침부터 훈제 소시지를 뜯으며 핸드폰을 보다 자다 반복했고, 벨기에 친구는 이불속에서 새우잠을 잔다. 어제 새벽까지 없었는데, 방금 들어온 것 같았다. 쿠바는 모기에 물렸다고 했고, 나는 홈매트 덕분인지 모기에 물리지 않았다. 여행 2주밖에 되지 않았지만, 동남아에서 가장 잘 가져온 물건 중 하나는 홈매트 모기향이다.


모든 짐은 자물쇠를 걸어 방 안의 사물함에 넣어두었다. 약속 장소까지는 버스를 타야 했고, 내가 타야 하는 버스가 전부 버스 정류장을 지나친다. 손을 흔들 수도 없었다. 3차선이나 멀리 있어서.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에어컨이 달린 503번 버스가 내 앞에 정차해 주었다.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되나.. 아무튼 20분 정도 타는데 15바트를 냈다. 어제 버스 가격이 8바트 였으니 거의 두 배를 지불했다. 하지만 에어컨에 7바트는 너무나도 가치 있는 가격이다. 등이 다 젖었던 어제를 생각하면 정말이지 오늘은 천국이다.


승려복을 입은 분들이 버스에 탑승했는데, 요금을 따로 내지 않는다. 태국은 불교 국가이기에, 바로 이해가 갔다.


약속 장소에는 내가 먼저 도착했고, 세븐일레븐에서 미리 먹을 것을 구매했다. 오늘은 낸과 낸시가 태국 놀이공원에 꼭 데려가고 싶다며 나를 불러냈다. 우리 셋은 10분쯤 뒤 다 같이 모였고, 곧바로 쇼핑몰로 간다. 때마침 환전을 해야 해서 환전소에 들렀다. 환율 공시를 따로 해 놓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물어보니 환율이 꽤나 괜찮아서 곧바로 바꾸었다. 환전을 할 때는 신분증이 있어야 했는데, 숙소 디파짓으로 여권을 맡겨둔 것이 이제야 생각이 났다. 혹시나 해서 지갑에 들어있던 ISIC국제학생증을 냈는데, 가능하다고 한다. 일이 풀리려니 이렇게도 풀린다.


건물에 들어온 김에 식당에 가서 밥도 먹었다. 밥을 기다리고 먹는 동안 낸의 아이패드로 놀이동산 티켓 예매를 했다. 혼자였다면 절대로 못했을 예매 절차였다.


식당에서 나와, 놀이동산까지는 밴을 타러 간다고 한다. 밴에 타서 30분 정도 기다렸지만, 차는 출발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기사님께 여쭤보니 오래 걸릴 것 같다고 하셔서 우리는 급하게 택시를 잡았다. 꽤나 거리가 있었고, 고속도로를 타고 이동해서 톨게이트 비용도 따로 나왔다. 거리를 생각하면 비싼 가격은 아니었지만, 돈 아낀다고 고생하며 로컬 버스를 타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도착한 놀이동산. 평일이라 그런지 한산한 느낌이다. 창구에서 티켓을 교환하고, 팔찌도 차고서 우리는 드림월드에 입장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에버랜드 느낌이랑 상당히 비슷했다. 규모가 상당히 커서, 입장료가 오히려 저렴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조금 둘러보다 놀이기구를 하나둘씩 타기 시작했다.


한국 놀이기구랑 거의 비슷한 구성이어서 너무 재밌는 시간이었다. 종류는 오히려 더 많았던 것 같다. 다만 조금 아쉬웠다면, 놀이기구들의 시간이 다소 짧아서 중간에 끊는 듯한 느낌이었달까..


우리는 2시간 정도 놀이기구를 타며 어린아이처럼 함께 놀았다. 저녁노을 직전에, 마지막으로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니 진짜 예쁘다는 표현밖에 나오지 않았다. 어느덧 마감시간이라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공원의 마지막 손님인 것처럼,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 낮에는 그렇게 많던 차량이 한 대도 보이지 않는다. 밤이 늦어져 모기는 또 왜 이리 많은지, 스프레이가 필요했다. 택시도 놀이동산 안쪽으로는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퇴근하던 직원이 낸을 오토바이로 태워 놀이동산 밖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도움을 받아 택시를 한참 타고 다시 시내로 이동했다. 차가 너무 막혀서 시내로 이동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mrt역에서 내렸다. 저녁 7시, 다들 피곤한지 눈을 절반쯤 감고 있다.


'시암'이라는 곳에 가서 저녁을 먹고 헤어지자는 둘. 지하철을 타고 또 이동해서 쇼핑몰이 몰려있는 곳에 도착했다. 교차로를 두고서, 4개의 큰 백화점이 연결되어 있었다. 이곳 식당은 가격이 꽤나 있었고, 대부분 웨이팅을 하고 있어서 밥 먹을 곳을 찾기가 마땅치 않았다.


거의 1시간 가까이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한 라멘 집에 멈춰 섰다. 나도 오늘 제대로 된 끼니를 못 챙겨서, 메뉴를 각자 3개씩 시켰다. 우리 셋은 음식이 나오고 나서야 웃음을 지었고, 남김없이 모든 음식을 다 먹어 치웠다.


이제 숙소에 가야 하는데 시간은 거의 저녁 10시다. 아침 9시부터 나와 하루가 다 지나갔다. 그렇게 구글맵에 나온 버스를 타고 숙소에 가려는데, 낸이 계속 아니라며 친구에게 전화를 한다. 그러곤 삼얀으로 가야 한다고 한다. 아무리 검색해도 그 근처에 다른 역은 없었다. 그래도 현지인이고 나보다 잘 알겠지 라는 생각에 조용히 따라갔다. 둘은 mrt에 타자마자 잠에 들었고, 내가 삼얀에 도착했다고 하니 허겁지겁 밖으로 나간다.


내려서 어떻게 집까지 가냐고 물어보니, 이미 내 숙소까지 그램 바이크를 불렀단다. 나는 둘이 집에 어떻게 가냐고 물어본 건데, 내 이동 편을 알아봐 준 것이었다. 나를 데려다 주기 위해 굳이 밤늦게 함께한 것이었다.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고마운 하루다. 둘의 막차 시간도 있어서, 서둘러 작별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헤어졌다.


숙소에 도착했고, 도착하니 쿠바가 맥주를 마시고 있다. 이미 꽤나 마시고 숙소에서 구매해 또 마시고 있었단다. 옆에 앉아서 내일 일정을 얘기하다가 자기도 아직 아무것도 못 정했고 나와 상황이 같단다. 자전거를 구매해서 여행을 할 생각이라고 했는데, 오늘 하루 종일 자전거 가게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나저나 진짜 모기가 너무 많다. 스프레이를 한 통 더 사야 할 것 같다.


방으로 들어와 씻고 내일 버스와 숙소를 찾아보았다. 모바일 예약과 홈페이지 예약이 가격이 차이가 나서, 귀찮아도 1-2000원 더 아끼기 위해 노트북을 켜서 예약을 한다. 나는 일단 내일 수코타이로 이동한다. 그 어떤 계획도 아직 없다. 단지 도시 이동과 숙소 예약만 했을 뿐. 일단 오늘 너무 고돼서, 빨리 자고 내일 아침에 이후 일정은 생각해 보아야겠다.


정리를 마치고 누웠는데, 분명 쥐다. 쥐가 걸어 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침대 밑에도 있는 걸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위아래로 다 들린다. 아무튼, 방콕 일정이 이렇게 끝났다.


그나저나 쿠바는 또 맥주와 함께 밤을 보내고 있다.


*15일 차의 한 줄

받은 만큼 돌려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자.



D+16 22.11.11 갑자기 결정된 수코타이행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와 세수만 하고 짐을 싼다. 쿠바는 아침까지도 계획이 없다고 했고, 나는 옆에서 조금씩 도와주며 짐을 마저 쌌다. 그는 갑자기 경로를 위로 틀어 치앙마이를 간다고 했다가, 그냥 다시 캄보디아 가려고 동쪽으로 간다고 했다가.. 갈피를 못 잡더니 일단 버스터미널로 같이 가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목에(숙소 근처) 떡하니 자전거 가게가 있다. 어제 자전거 사러 14키로를 걸었다는데 숙소에서 1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이 표정을 나만 본 게 너무 아쉬울 정도로 웃겼다.


구글맵에 버스 정류장과 버스 번호가 쓰여있긴 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버스 예정 시간도 나온다. 물론 10분 이상 차이가 나서 의미는 없었다. 버스가 도착했고, 타자마자 우리에게 옆자리에서 가방을 치우라는 안내양. 우리 둘에게 '미스터, 혼자 앉는 자리로 가.'라고 단호하게 얘기한다. 버스 좌석은 충분히 여유가 있었는데 너무 단호해서 어쩔 수 없이 따랐다. 버스비로 19바트를 냈다. 그제보다 거리가 조금 더 멀어서 더 받은 것 같다. 나는 버스에서 쿠바와 DM으로 얘기를 주고받았다. '자리가 많은데 너무한 것 같아'라며. 그리고 내릴 때가 되자 안내양은 '미스터, 여기서 내리면 됩니다.'란다. 아까의 깐깐하고 차가운 얼굴은 볼 수 없이 따뜻하게 우리에게 내릴 위치를 알려준다.


쿠바는 파타야로 가고 싶다며, 터미널에서 우리는 인사를 했다. 나는 미리 예매한 12go에서 보내준 티켓으로

53번 플랫폼을 찾았다. 직원은 티켓의 내 이름만 확인하고서는, 48번으로 가라는 말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라고 알려주었다. 플랫폼은 생각보다 컸고, 버스 탑승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KFC에서 버거 치킨 세트 하나를 시켜서 먹었다. 카드 계산이 가능해서 조금 비쌌지만 결제를 했다.


솔직히 싼 가격은 아니지만 오늘 저녁도 굶을 것 같았고, 첫 끼니이기에 그냥 든든하게 먹기로 결정했다.(사실 6천 원 정도여서 엄청 비싼 것도 아니었다.)


2시 10분쯤, 버스는 출발을 한다. 우등 버스 좌석이 아니라 그냥 일반 의자였다. 슬리핑 버스도 아닌, 애매한 이 불편한 일반 좌석 버스를 10시간을 탄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다리가 출발부터 불편해오기 시작했고, 나는 우선 먹을 것과 옷, 목베개를 꺼낸다. 그래서 조금은 나아졌는데, 일단 버스 내부 온도가 너무 이상하다. 추워서 바람막이를 입으면 덥고, 벗으면 춥고. ‘수코타이 히스토리 버스’였다. 5시 40분, 다리가 저려올 즈음 휴게소에 도착했다. 노을이 너무 예쁘다. 네 옆에 앉은 학생으로 보이는 여자분이 조용히 다가와서는, 번역기로 20분간 쉬니까 먹고 화장실에 갔다 오라고 한다. 말을 안 걸어 주었으면 몰랐을 뻔했다.


밖에서 허리를 펴고, 스트레칭 후 의자에 앉아 있는데 버스 안내양이 내게 눈웃음을 치며 들어가자는 신호를 보낸다. 여기는 희한한 게 노을이 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정말 얼마 안돼서 어둠이 들이닥친다. 지금 거리를 확인해 보니 180킬로 정도 남았고 현재시간 6:23분, 2시간 40분이 남았다, 10시까지 남은 일지 마무리 해야겠다.


핏사눌룩에 도착했고, 갑자기 버스를 바꿔 타야 한다고.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기사님을 잠시 붙잡고 급하게 수코타이 관련 정보를 찾아보았다. 언젠간 이런 황당한 순간을 예상하긴 했지만, 왜 하필 체력이 바닥난 지금일까.. 그래도 이것도 경험이라 생각했다.


나는 핏사눌룩의 수코타이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고, 기사님이 오셔서 어디 가냐고 물어보신다. 영어를 아예 못하셔서 지도로 태국어를 보여주며 역사공원을 가리키니 알겠단다.


30분을 더 이동했고, 도착지에는 숙소 사장님이 늦게까지 나를 기다려주고 계셨다. 진짜 빨리 눕고 싶다. 숙소에 내려 본 첫 수코타니 인상은 좋았다. 그리고 방콕보다 훨씬 시원했다. 세븐일레븐이 숙소 바로 옆이다.


들개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사장님. 숙소는 가성비가 너무 좋았다. 너무 깨끗하고 쾌적하다. 또 다행히, 죽으란 법은 없는지 편의점은 24시간 운영을 하고 있었고, 나름 도시락과 라면 등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었다.


편의점 도시락과 컵라면을 가지고 방에 돌아왔고, 제대로 된 음식은 아니었지만 입에 들어가는 순간 행복이 퍼져나갔다. 행복 별 거 있나 싶었다.


왜인지 모기가 없었고, 정말 오래간만에 반바지를 입었다 이게 며칠 만인지..


*16일 차의 한 줄

행복, 별 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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