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범하기 위해서 얼마나 발버둥 쳐야 하는가
90년대 생, 나의 유년시절에는 아빠, 엄마, 그리고 두 자녀 이렇게 네 명의 가족이 가장 평범한 가족의 형태였다. 물론 현재 기준으로는 미혼도 많고, 외동도 많지만 나는 그냥 네 명의 가족 구성원을 만드는 것을 가장 해내고 싶었다.
아빠의 외도로 중학교 때 엄마, 오빠,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이서 살게 되었지만, 사실은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늘 우리 집에 웃음소리는 없었다. 부러웠다. 그냥 다른 가족들이 함께 외출하는 그 모습만 봐도 좋아 보였다. 내가 가져본 적 없는 평범함을 그들은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매일의 일상이.
그렇게 나의 꿈은 돈을 많이 버는 것도, 내가 하고 싶은 어떤 멋진 직업을 갖는 것도 아닌 그냥 남들이 봤을 때 평범한 것이 되었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내 유년시절 기억에는 가족과의 추억이 정말 하나도 없다. 이상하게도 슬프지도 않다. 그냥 그렇게 살아온 삶이 너무 당연했기에.
한 번씩 친구들이 가장 부러웠을 때가 있었는데, 학교 졸업식 때 가족들이 다 같이 와서 사진을 찍고 외식을 하는 것. 졸업식마다 엄마가 혼자 오거나 엄마가 이모를 데리고 왔다. 중학교 졸업식 후에는 엄마랑 우동집에 가서 우동과 김밥을 먹었다. 고등학교 졸업식 후에는 친구들 몰래 집으로 조용히 왔다. 아빠는 한 번도 졸업식에 온 적이 없다. 대학교 졸업식 때 아빠가 갈 사람이 있냐며 온다는 것을 오지 말라고 말렸다. 이미 대학생의 나는 아빠의 존재가 마음속에 크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아빠는 안 와도 괜찮았다.
가족 다 같이 외식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외식이라는 개념도 사실 생소했다. 그리고 나중에 내가 돈을 벌어서 엄마랑 오빠를 데리고 처음으로 패밀리 레스토랑에 갔을 때, 내가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를 더욱 깨달았다. 돈을 벌어서 가족과 밥을 먹는 행복을 누리는 것. 우리 부모님은 못 이뤄준 이 평범함을 나는 내 손으로 이루겠다는 다짐과 함께.
지금도 부단히 생각한다. 과연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범함이란 무엇일까.
나처럼 네 명의 가족 구성원을 꾸리는 것일지,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 되는 것일지, 아니면 평범함이라는 것 자체를 생각하고 살지 않는 사람이 가장 평범한 것일 수도 있겠다.
며칠 전, 대학 동기가 집에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왔다.
"나는 내가 평범하게 자라지 못해서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게 목표였어. 그리고 지금은 그걸 이뤘다고 생각했는지 목표가 없어서 공허해."
이어서 친구가 말했다.
"평범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려면 평범해 보이는 수면 아래에서 미친 듯이 손과 발로 헤엄을 치고 있는 거야."
내가 살아온 35년 간의 세월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아주는 듯했다. 그 말에, 그 공감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힘들었지만 그리고 앞으로도 더 수면 아래에서 미친 듯이 헤엄을 쳐야겠지만 잘하고 있다는 믿음이 견고해졌다.
나의 아이들은 평범한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르도록 지독하게 평범한 아이들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