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내가 내일은 아닐 수도
'오늘이 끝인 것처럼 살아본 적이 있는가?'
만약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자신 있게 나는 '그렇다!'라고 말할 수 없다.
사람들은 참 어리석고 불행하다. 왜 이렇게 걱정을 많이 할까? 전생에 덕을 많이 쌓으면 사람이 되는 것인지 반대로 덕을 쌓지 못해서 사람이 되는 것인지 궁금하다.
가끔 동물들이 부럽다. 물론, 동물이 아니고 사람인 내가 하는 말이라 이렇게 단순하게 말할 수 있겠지. 동물들은 사람이 되고 싶을까?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사실 동물의 생각까지 걱정할 여유도 없다.
걱정에 사로잡혀서 우리는 지금 얼마나 값지고 행복한 순간을 누리고 있는지 망각한다.
· 아침에 눈을 뜨고 가기 싫은 회사나 학교에 억지로 몸을 이끄는 것.
· 한 공간에서 8시간 넘는 시간을 억지로 앉아 있는 것.
· 아이와 하루 종일 붙어서 육아를 하는 것.
· 매일 같이 반복되는 집안 일과 요리, 청소에 지쳐가는 것.
· 배가 고파서 끼니에 맞춰 밥을 먹는 것.
·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까 고민하는 것
어느 하나 평범하지 않을 게 없는 이 일상이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다. 그렇지만 사실 당연해야 하는 건 아닌데 말이다.
나는 매일 생각한다. 나는, 우리는, 우리 모두는, 언제나 늘 당장 훨씬 더 불행해질 준비를 하고 있다고. 그렇지만 만약 조금 더 불행해지는 상황이 닥친다 해도, 사실 또 그게 불행이 아니라 전화위복이 되는 상황일 수도 있다.
내가 아이를 데려가는 길에 사고가 날 수도 있고, 몸이 좀 더 불편한 장애를 갖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내가, 부모님이 큰 병에 걸려서 병원에 평생 입원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럼 그때는 생각하겠지. 그렇게 하기 싫었던 억지로 했던 일들을 하고 싶다고 말이다.
한창 유행했던 MBTI. 나는 극 J에 속하는 편이다. 그래서 장점과 단점이 확실하지만 계획되지 않은 일에 벗어나는 것을 극도로 스트레스받는 게 힘들다.
너무 J라서 돈을 쓰는 것도, 어디 여행을 가는 것도 생각처럼 더 쉽게 결정하기가 어렵다.
바로 옆 집에 사는 부부가 둘 다 P인데 내 관점에서는 그렇게 이해하기가 참 어렵다. 갑자기 "그냥 가보고 싶어서 갔다 왔어." "먹고 싶어서 먹었어." 이 쉬운 걸 나는 왜 못하지?
그 친구들의 생각은 하나다.
'내일 죽을 수도 있는데 그냥 하고 싶은 거 해.'
그래, 맞다. 그리고 나도 잘 안다. 우리는 당장 걱정할 일을 떠안고 사는 것을 잠시 내려놓고 즐기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직 배움이 한참 남았다.
대학에 다니던 때, 여러 친구들 중에 툭하면 국내여행을 다니는 두 명의 친구가 있었다. 두 명 모두 돈이 많은 친구들도 아니었고, 한 달 아르바이트로 돈 벌어서 어디든 대충 떠나서 대충 자고 대충 먹는 그런 친구들이었다.
물론 나는 대학교 때도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축만 죽어라 하는 부류의 열심히 사는 애였다. 그때의 난 그 친구들이 철없다고 믿었고 '나중에 내가 더 잘 살아야지'라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솔직히 난 그 친구들이 부러웠다. 떠나고 싶을 때 그냥 떠나버리는 저 자유로움이 왜 안 됐을까.
지금도 나는 혼자 하는 여행을 꿈꾼다. 비록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조금 더 뒤로 미루고 있는 버킷리스트지만, 사실 이것도 핑계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당장 오늘 한 시간 뒤에 내가 아프다면, 혹은 사라진다면 뭘 가장 후회할까?
· 퇴사하지 못한 것 (실행함)
· 혼자 여행 못 가본 것
· 하고 싶은 일 무섭다고 시도 안 한 것 (실행 중)
· 아이를 마음껏 예뻐해주지 못한 것 (노력 중)
· 화내지 않는 것 (잘 안 됨)
· 남편에게 듬뿍 애정 쏟기 (미안함)
'돈을 많이 벌어서 마음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게 비즈니스 타기'가 새로운 나의 인생 목표였는데, 죽기 직전에 후회할 것들을 생각하니 이건 목록에 들어가지 않는다. 생각보다 내 삶에 큰 가치는 아닌가 보다.
새로운 일을 늘 해보고 싶었다. 글을 쓰는 일, 그리고 글로 사람을 위로하고 내 이야기를 담으면서 나를 또 위로하고, 뭐 돈도 벌고?
그렇지만 회사라는 곳에서 주는 안정감의 여유를 잃는다는 게 두려웠다.
10년 동안 몸 담은 회사를 접는다는 게 생각보다는 큰 도전이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잦은 퇴사와 이직을 하는 사람을 보면서 참 그거 하나 못 견딘다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퇴사가 쉬운 사람들도 사실은 꽤나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회사 없이는 혼자 해내기에 자신도 용기도 없던 겁쟁이여서 그냥 버티듯이 회사를 다녔던 것뿐.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화내지 않고 좋은 말만 하고 싶은데, 몸이 힘드니까 자꾸 말도 곱지가 않다.
세상에서 날 정말 유일하게 행복하게 해 준 사람이 남편인데, 그래서 더 행복하려고 결혼했는데 아이들을 낳고 살다 보니 자꾸 싸운다. 그리고 예전의 불타오름은 시간이 지나서 자연스레 사라졌지만, 남편도 나도 서로에게 온전한 애정을 주는 방법을 잃은 것 같아서 속상하다. 이 방황을 우리는 잘 헤쳐나갈 거라 믿는다.
내가 아쉬울만한 것은 놀랍게도 대부분 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난 안 하고 있지 못하고 있지 않다.
오늘의 나의 태도가 내일의 내 존재에게 만족을 줄 수도, 아쉬움을 줄 수도 있다.
오늘 하루의 최선이 딱 오늘만 충족할 수 있다면 아쉬운 점을 개선해서 내일은 좀 더 나아질 수 있다면, 그러면 그걸로 된 것 아닐까?
너무 먼 걱정을 하는 내가, 그리고 우리가 참 안쓰럽다.
오늘의 나에게 딱 하나만 만족스러운 일을 쌓아가는 건 어떨까? 나는 오늘 브런치를 쓰면서 나의 글을 남길 수 있음에 만족하고, 아이들과 아침에 일어나, 웃으며 잘 잤는지 물어본 질문에 아이들이 웃으며 그렇다고 대답한 그 미소에 뿌듯해한다.
이거면 됐다.
작은 만족에, 또 내일을 기다리는 당연함에 감사를 표하는 날을 쌓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