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온 모든 것이 우연이었을까.
2012년 2월부터 2013년 2월까지 칠레로 해외봉사를 다녀왔다. 내가 해외봉사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언어를 배우고 싶었다.
유학을 보내 줄 형편이 되지 않는 집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이루려면 직접 나서야 한다. 말이 해외봉사고 멋있어 보였지 나의 목적은 봉사가 아니었다.
기독교 단체에서 간 해외봉사는 내가 텔레비전에서 봤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결국은 기독교 전파 목적이었던 것. 나는 종교를 싫어하지 않는다. 그들의 신념과 그 힘으로 살아가는 것에 존중하고 이해한다. 그렇지만, 내가 받아들이고 체득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사실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라서 한 달 만에 포기하고 돌아오려고 했다. 그렇지만, 스스로에게 이 일 년의 기간도 하기 싫은 걸 못 버티고 돌아가는 내가 너무 부끄러워서 다시 해보기로 했다.
돌아와서 얻은 것은 결국 1년 동안 함께 했던 동료들이다. 힘든 시간을 타지에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버텨준 동생들을 얻게 되어 이 해외봉사가 더욱 뜻깊었다.
1년 동안 소중한 것을 얻었으니 이 얼마나 행운인가.
한국에 와서 복학하기 전에 재미로 사주를 봤다. 그대들은 사주를 믿는가? 나는 어느 정도 믿게 되었다.
사주를 본 4월에 말하기를
"곧 좋은 인연을 만나겠네요. 어? 근데 잘해보세요. 잘 될 것 같아요."
나는 당분간 남자를 만날 생각이 없었다. 조금 더 놀면서 쉬고 해외봉사를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군기가 바짝 잡혀서 복학 준비나 하고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한창 공부에 매진하고 있던 어느 날 저녁, 제일 친한 친구가 전화가 왔다.
"진짜 너랑 너무 잘 맞을 것 같은 사람을 찾았어. 소개 한 번 받아볼래?"
괜찮다고 여러 번 사양했지만 친구는 진짜 딱 한 번만 만나보라고 그래서 정말 그냥 만나만 본다고 했던 그 남자.
그렇다. 지금의 내 남편이 되었다.
인연이라는 게 있을까? 부모님의 불화만 보고 자라온 나는 철저한 비혼주의자였다. 만약 결혼을 해도 30대 중후반에나 한다고 늘 말했고, 결혼은 하더라도 아이는 절대 낳지 않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러던 내가 이 저출산 시대에 아이 두 명이나 낳고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남편을 소개받고 '사랑이란 게 이런 것이구나', '사랑을 받는 건 이런 기분이구나'를 1분 1초도 놓치지 않고 느꼈다. 만난 지 한 달 만에 '나는 이 사람과 꼭 결혼을 해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뜻하지 않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 사람을 만난다는 것.
아직도 내 생의 최대의 행운은 이 사람을 만난 것이라는 걸 나는 너무나도 잘 안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자마자 첫째가 유치원에서 독감을 옮아왔다. 왜 하필 연휴 시작부터 독감인가..
둘째가 옮을 수도 있어서 남편과 둘째는 시댁으로 보냈다. 그렇게 첫째와 둘만의 동거가 시작됐다.
사실 첫째는 어느 순간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너무 활발한 테토남이라 솔직히 버겁기도 하고 어느 순간 첫째에게는 화 만나고 소리만 지르는 내 모습이 싫었다. 고치고 싶어도 막상 상황이 닥치면 쉽지 않았다. 그런 첫째랑 함께 있는 게 무서웠다.
첫째는 아빠를 더 잘 따르는 아이라 아빠랑 할머니댁으로 가라니까 웬일인지 절대 안 간다고 집에 있겠다고 했다. 그래서 둘째를 아빠랑 보내고 첫째랑 있게 되었다.
첫째랑 함께하는 2박 3일 동안, 첫째에게 너무 미안하고 내가 이 아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이 작고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난 왜 그렇게 화만 냈을까. 많이 서운했을 첫째한테 그저 미안했다.
사실 첫째에게 화가 많아진 건 둘째가 태어난 이후다.
둘째가 태어나고 늘 나는 둘째 담당이었고 첫째는 아빠 담당이었다. 이렇게 서로 바꿔서 아이들을 돌보는 건 2년 만에 처음이다.
그렇게 오롯이 첫째만 볼 수 있는 시간에 고마웠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첫째를 생각하면서 울컥한다. 많이 외로웠겠구나 싶어서.
둘이 있으니 첫째는 오히려 차분해졌다. 어쩌면 자기를 더 봐달라고 그렇게 테토남이 되어가는 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 나도 여기 있다고, 사랑한다고 말해달라고.
이렇게 내가 이 소중한 아이를 돌봐줄 수 있어서, 외로움을 봐줄 수 있는 시야를 넓힐 수 있어서, 지금 이 독감이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
늘 남들보다 힘들다고 생각했던 내 삶은 어쩌면 사실 행운이 차례대로 도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