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고 있는 게 당연한 삶
누군가에게 사랑을 듬뿍 받아본 적이 있는가?
사랑을 받는다는 감정을 얼마나 느껴봤는지, 어떻게 인지하는지는 상대적일 것이다.
나는 내가 사랑을 못 받고 자랐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사랑을 충분히 받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안타깝게도, '사랑을 받긴 했구나'라는 생각이 30년 인생만에 깨달았다는 게 속상하다. 아빠는 아빠의 방식대로 나를 사랑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게 평범하지는 않았을 뿐이다.
어쨌든 나는 학자금 대출 없이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고, 대학 생활 내내 아르바이트를 안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아르바이트는 용돈으로만 여기면서 지낼 수 있었다.
날 위해 돈을 지불하고 덜 힘들게 해 주려는 아빠의 노력이 사랑이었겠지.
엄마는 늘 바쁘고 날 챙겨주지 못했다. 엄마가 참 궁상이라고 생각했다. 매일 어디가 아프고 아프니 일을 못 나가고 일을 못하니 돈이 없고. 짜증 났다. 왜 우리 엄마는 늘 여기저기 쑤시다고 하고 아프다고 하고 돈 벌 생각도 안 하는 건지. 그렇다고 나를 끔찍하게 아끼면서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지도 않는다.
우리 엄마는 사랑한다는 말을 못 하는 사람이다. 엄마도 사랑한다는 말을 부모에게도, 남편에게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 말이다.
내가 아이 둘을 낳고 키워보니 우리 엄마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안쓰러웠다. 어떻게 아이 둘을 그렇게 외롭게 키워냈을까. 평생 남편한테 사랑도 못 받아보고 시누 5명, 홀시어머니를 모시며 시집살이를 견뎌냈을까.
사실은 짠한 감정 이전에 화가 나고 그래서 짜증이 난다. 왜 엄마는 그렇게 살았을까?
그럴 때마다 너네 때문에 버텼다고 하는 그 말이 나는 너무 싫었다. 사실은 지금도 어느 정도는 핑계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용기가 없었던 거다.
그렇지만, 오빠와 나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하고 지켜내려고 노력했는지는 안다. 그게 아니었다만 진즉 우리 둘을 버리고 혼자 떠났겠지.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나의 엄마로서 잘 이겨내 준 것. 그렇게 지금 내가 볼 수 있을 때 편하게 볼 수 있는 것. 나를 추운 날 따뜻하게, 더운 날 덥지 않게 해 주고 배고프지 않게 해 준 것. 이 모든 게 엄청난 사랑임을 이제는 안다.
나는 집에서 떼를 부려본 적이 없다. 그러면 안 되는 분위기라는 걸 알기 때문에.
대학생 때, 유독 철이 없어 보이는 애들이 있었다. 왜 이렇게 쟤는 철이 없냐고 말하고 다녔지만, 사실은 부러웠다.
나도 진심으로 빨리 철들기 싫었다.
우리 아이들은 집에서 실컷 떼쓰는 게 힘들지만 뿌듯하다. 엄마, 아빠가,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만만하구나 싶어서.
버릇없게 키우겠다는 게 아니다.
언제든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표현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을 뿐이다. 버릇없는 건 다른 이야기고 훈육은 눈물 쏙 빠지게 하는 편이다.
우리 엄마는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사랑하는 마음을 나에게도 그렇듯 아이들에게도 듬뿍 담아내지 못한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한테 사랑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예뻐서 어쩔 줄 모르는 눈으로 쳐다볼 때 나는 그 마음을 다 느낀다.
정말 감사한 점은 시어머님이 아이들에게 사랑을 듬뿍 줄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이다.
나는 참 좋은 시댁을 만났다. 며느리를 존중해 주시고 정말 딸처럼 어머님을 희생해서 도와주신다.
그 마음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닿는 걸 체감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
아빠, 엄마가 아이들을 사랑해 주는 것도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사람도 많은데, 우리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도 듬뿍 받는 게 부럽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럼 당신도 정말 행복을 잘 누리고 컸을 가능성이 있다.
내 기억 속의 할머니는 아빠랑 엄마를 이간질하고 엄마를 괴롭히기만 했던 나쁜 할머니였다. 그래서 할머니의 사랑스러운 눈빛은 기억에 없다.
우리 아이들의 기억 속에는 훗날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고 싶고 그리운 존재가 될 걸 잘 안다. 그게 난 참 부럽다.
할머니가 해 주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함께 노래 부르고 등에 업히는 것. 그게 당연한 우리 아이들이 부러워서 너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