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익숙한 아빠의 부재.
언제부터인가 부모님의 장례식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 적이 있다. 내가 점점 나이를 먹어간다는 반증이기도 하겠다.
친구들의 부모님 부고 소식에 그 마음을 가늠해 보려고 생각해 보면, 나는 아직 공감이 잘 안 가는 순간이 많다. 물론, 내 곁에 사랑했던 사람이,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은 정말 슬픈 감정이겠지만 그것 또한 사실 내 곁에 있었을 때 해당하는 것 아닐까.
아빠와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떨어져 살았다. 아빠라는 존재가 내 옆에 없는 것이 너무 당연한지도 20년이 넘었다는 뜻이다.
부모가 별거를 한다고, 아니면 이혼을 한다고 다 부모와 자식이 멀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도 아빠를 1년에 한 번씩은 보곤 했었고, 아빠한테 여느 딸들처럼 용돈을 달라고 연락하며 안부를 전하는 사이였기 때문에 아빠랑 많이 멀다는 생각은 안 해봤다.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처럼 아빠와 친한 딸 사이는 분명 아니었다. 일단 평소에 볼 수 없었고, 나의 얘기를 시시콜콜 얘기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아빠가 카카오톡으로 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딸, 아빠랑 가장 하고 싶은 게 뭐야?"
"아빠가 내가 다니는 (대)학교로 데리러 오는 것. 밤에 차 끊겨도 걱정 없게 말이야."
"근데 그게 술 먹고 데리러 오라고 하는 건 안 된다."
"........."
내가 아빠한테 바라는 건, 너무 사소한 것이었다. 늘 막차 시간을 보면서 놀고 싶어도 더 못 놀고, 마음껏 공부도 못하는 나의 대학시절.
나는 택시비가 너무 아까워서 막차가 끊기면 어떻게든 친구들을 붙잡고 첫차가 뜰 때까지 놀았다. 학교가 멀어서 혼자 택시를 타는 것보단 그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빠한테 응석 한 번 부리고 싶은 마음에, 아빠 마음 좀 아파보라고 아빠가 데리러 오는 것이 제일 하고 싶다는 그 말에도 아빠는 술 먹고 부르는 건 안 된다고 말하는 그 말이 나는 짜증 났다.
그렇지만 나는 일반적인 아빠와 딸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짜증을 내지도 않았다. 차라리 짜증을 냈다면 우리는 평범한 부녀 관계였겠지.
아빠의 장례식을 생각하면, 슬프다는 감정보다 걱정되는 생각이 더 많다.
일단, 엄마보다 아빠가 먼저 죽음을 맞이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나도 참 불효녀인가? 아빠와 엄마의 죽음을 내 마음대로 논하고 있다니 말이다.
너무 고생을 많이 하고 힘들었던 엄마가 아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다면, 너무 분하고 짜증 날 것 같다. 그리고 어차피 아빠는 엄마 장례식에 안 올 것 같아서 더 짜증 난다. 그래서 차라리 아빠가 먼저 떠나는 게 낫다. 그래야 아빠가 엄마 장례식에 안 와도 내가 화나는 감정을 느끼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가장 큰 문제가 있다.
아빠의 내연녀가 장례식에 있을 것이라는 점.
아빠는 외도를 하고 있었고, 그게 결국 우리 가족을 찢게 된 발판이 되었다. 그리고 아빠는 그 여자랑 계속 함께 살고 있다.
현실적으로 딸인 나랑 함께 산 시간보다, 우리 엄마보다, 그 여자랑 함께 한 시간이 이제는 더 많다.
아빠의 SNS에서 그 여자를 집사람이라고 부르는 걸 봤다. 내 기억 속에서 엄마한테는 그렇게 말해보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 여자에게 '집사람', '와이프'라고 부르는 그 모습에 많은 게 무너졌다.
내가 볼 수 있는 아빠의 카카오톡 프로필에 그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찍어 올린 날, 나는 아빠에 대한 마음이 다 무너졌다.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로 우리 앞에서는 티 내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아빠의 숨은 삶을 당당하게 내비친 모습에 정이 떨어졌다.
아빠의 부고 소식을 들으면, 나는 슬플까?
글쎄, 너무 아무렇지 않을까 봐 걱정이다. 그냥 그렇구나, 이제 아빠가 세상에 없구나 생각하고 끝날 단순한 감정이 될 것 같아서 그 순간이 예상되지 않는다.
장례식에 그 여자도 오면, 내가 상주로 서 있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아빠의 지인들은 와서 누구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현실적인 또 다른 예로, 장례식 비용은 누가 내는 것일까? 아빠는 우리 가족을 버린 지 오랜데, 내가 내야 되는 건 아니겠지? 그 여자가 내야 되는 것 같은데, 상주는 우리 오빠랑 나고.. 진짜 짜증 난다.
아빠의 장례식을 생각하는 게 슬픔보다 걱정이라는 이 현실이 싫다.
조금만 평범하게 살아주지. 아빠의 부재를 나도 마음껏 슬퍼할 수 있게 그렇게만 해주지.
장례식장에서도 끝까지 내 인생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으로 남지 말아 주지.
다가오지도 않은 그날을 미리 생각하면서 쓸데없는 걱정 좀 하지 말게 해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