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에서도 할 수 있는 건 있다.
몇 달 전, 엄마가 말했다.
"이사하면서 네 짐을 살펴보는데, 상장이 참 많더라. 임명장도 정말 많았어. 언제 그렇게 반장을 많이 했나 모르겠네."
그렇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얼마나 나만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살았는지 잘 모른다.
나는 한마디로 '빠른'이다. 1년 빨리 입학했고, 3월 말 생이라 원래 입학통지서가 안 나왔는데, 나보다 생일이 10일 빠른 옆옆집 친구는 입학통지서가 나왔단다. 그래서 엄마는 내 딸도 학교에 보내달라고 요청해서 입학할 수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상하게도 나는 원래 빠른으로 빨리 들어간 1년 나이 많은 아이들과 유치원 때도 이미 친구였다. 원래 내 나이의 친구들이랑은 한 번도 친구를 해 본 적이 없다. 운명이었을까?
엄마한테 왜 나는 어릴 때부터 1년 빠른 애들이랑 유치원도 같이 다니고 친구였는지 아냐고 물어보면 우리 엄마는 모른다고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
엄마는 나를 키울 때 뭐가 제일 좋았는지, 나는 어떤 아기였는지 물어도 엄마는 다 모른다고 한다. 그냥 너무 힘들었던 기억 밖에 없어서 나의 어릴 때 기억은 모두 지워버린 것처럼 정말 그냥 다 모른단다.
사실 나도 엄마 아빠와의 추억은 없다. 늘 집에서 회사에 다녀온 아빠가 오면 같이 거실에서 티비를 보다가 엄마가 현관에서 들어오면 쥐 죽은 듯이 적막이 흐르고 그때부터 우리 집에는 웃음소리가 사라졌다. 엄마는 밥도 방에서 따로 먹었고, 그냥 투명인간처럼 살았다.
신기하게도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밖에서 당당했다. 사실은 우리 집의 쇼윈도 부부의 모습을 나의 당찬 모습으로 감추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었다. 아무도 내가 엄마랑 그 집을 나오기 전까지 우리 집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내 전략은 성공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전교 회장 후보에 지원했다. 나와 경쟁을 하는 유력한 다른 후보였던 친구는 공부도 잘하고 총명하고 정말 예쁜 친구였다.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나도 초등학교 때는 공부도 잘했고 꽤나 총명했고 나름 인기가 많았다. 인기 좀 있다는 두 여자 아이들의 인기투표와 같은 싸움이었다.
그리고 나는 부회장이 되었다.
분했다. 우리 엄마 아빠도 전교 회장이 된 저 친구네처럼 맛있는 것도 친구들한테 돌리고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면 내가 이겼을 것 같았다.
그 친구의 플래카드는 정말 정교하고 예뻤다. 하지만 손재주가 없는 나는 친구들과 모여서 어떻게 그 플래카드를 만들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우리 엄마는 지금까지도 내가 전교 부회장을 했던 사실도 모를 거다. 내가 말을 안 했을 수도 있고, 했어도 엄마한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중학교 때는 학급 회장은 물론이고 방송부도 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그때만 해도 방송부는 꽤나 있어 보였고 나름 권력이 있는 부서였다.
고등학교 때는 이제 학급 회장은 더 이상 하기 싫었다. 9년을 감투를 쓰고 살았더니 그냥 갑자기 지겨워졌다. 애들도 너무 말도 안 듣고 다 짜증 났던 기억이 있다. 이제 다시는 학급 회장 같은 건 안 한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 작은 권력에 중독이라도 되어 있던 듯 학급 회장 대신 학생회에 들어가서 더 막강한 힘을 차지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인정 욕구'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내가 뭘 하던 신경 써주지 않는 집에서부터 벗어나 나의 실체를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모든지 잘하고 인기 많은 아이로 보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인정 욕구만을 바랬다고 하기에는 그래도 나는 참 아이들 통솔을 잘하기도 했다. 아무도 내가 회장이 되었다고 기뻐해주고 축하해 주는 가족은 없었지만, 나 스스로 잘하는 것을 찾아서 자존감을 키우고 있었다. 심지어 나보다 한 살 많은 아이들이 나의 리더십에 홀딱 반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나이에 가족이라는 우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혼자 빠져나갈 수도 없다. 이 우물 안으로 더 깊게 빠지지 않고 밧줄을 찾아 내 몸을 일으켜 세운 건 내 마음의 근육이었을지도.
물속으로 가라앉기 싫어서 우물 밖에서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열심히 설명하고 나 좀 누가 봐주기를 애타게 PR 하고 있었다. 그렇게 다들 나를 바라봐줘야 스스로 우물 깊은 곳으로 추락하지 않을 것 같았나 보다.
그래서일까. 지금은 감투가 참 싫다. 사람을 이끄는 책임감이 부담되고, 그냥 조용한 나만의 공간이 좋다.
지금은 스스로 우물에서 빠져나와서 다른 세계를 향해 해항하고 있는 바다 위에 있는 기분이다. 잘 버텨냈고, 저 멀리에는 또 어떤 게 있을지 궁금하다.
누가 날 인정해주지 않아도 내가 안다.
'나 참 행복하려고 애썼구나.'
우리 아이들만 봐도 행복한 하루가 너무 소중해서 더 이상 튀고 싶지 않다. 너무 행복해 보이면 누가 무너뜨릴까 걱정돼서 조용히 숨고 싶은 날들을 계속 쌓아나가고 싶다.
진짜 부를 이룬 사람은 굳이 부를 과시하지 않는 것처럼, 어느 정도의 행복을 갖춰가는 나는 더 이상 내가 평범하게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는 것을 티 내지 않아도 되는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이제 좀 행복에 꽤나 다가서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