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시작하며,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당신도 행복하길

by 해넘이

무서운 것은 귀신뿐이던 행복하던 어린 시절,

증조할머니까지 4대가 한 집에 살아 북적거렸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물론 집을 방문하는 친척들의 이쁨을 듬뿍 받으며 골목대장이 되어 온 동네를 뛰어다녔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뒤흔든 IMF는 우리 집도 피해 갈 수 없었고, 아빠는 명예퇴직, 할아버지는 말기 암 판정을 받으셨다.

아빠는 할아버지를 살리고, 돈을 구하기 위해 사방팔방 이리저리 뛰어다니셨다. 할아버지는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이어가셨으나 끝내 숨을 거두셨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을 마쳐가던 나의 일기 마지막엔 항상 할아버지를 병문안 온 친척들과 할아버지의 투병 경과가 있었다. 병문안을 온 사촌들과 나는 평소에 못 먹던 과자를 먹고, 동네를 뛰어다니며 놀았지만 그 이야기의 끝엔 일기에 날씨를 적듯 할아버지가 얼마나 아프신지 적혀있었다.


가족들은 죽고, 흩어지고, 도망치듯 이사 간 좁은 집에는 빨간딱지가 붙었다. 드라마에서처럼 온 데 덕지덕지 붙지는 않았다. 이미 우리 집엔 빨간딱지를 붙일만한 물건도 없었다.

어렸어도 집에 찾아오는 빚쟁이들을 '그런 사람 모른다'며 쫓아내야 했고, 나는 조용한 아이로 새로운 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2년 정도 흘러 전학 간 곳에도 적응하며 지낼 즈음 혼자 지내시던 할머니마저 입원하셨다.

그렇게 예뻐하던 나도 알아보지 못하고 사경을 헤매시다, 인사 한번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보내드려야 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3년 동안 해마다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내드렸다.

삶의 균형은 무너졌고 나의 생활은 많이 달라졌다.


나름대로 항상 행복과 즐거움을 찾으며, 주변 사람들과 함께 역경을 극복해 갔고 나는 그것에 자부심이 있다. 그렇게 보내온 시간들이 내게는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존감의 근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종종 불행하다고 느꼈다. 집을 벗어나고 싶었다. 세상이 다 같이 망하고 모두가 똑같은 출발점에서 다시 시작했으면 했다. 이세계로 차원이동을 꿈꿨다. 또는 아무도 모르게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학교 선생님들은 나를 안타까워하셨다. 나는 어딘가 어두운 아이가 되어있었다. 담임선생님도 내게 쉽게 말을 걸지 못하셨다.

나의 행복은 어디로 갔을까.


삼십 대 후반이 된 지금, 결론은 무척 행복하다.

성인이 되고 아무런 문제가 없었냐고 하면 한 달 전에도 큰 일은 있었다. 사실 어제도 마음이 잠시 술렁였다.

그러나 나는 지금 행복하다. 속상하지만 행복하다. 일 하다 열도 받지만, 행복하다.

사실 화가 잘 안 난다. 불행에 빠져있을 시간이 없다. 행복하기만 해도 부족한 시간이다.

객관적으로 불행의 요소가 많았던 내가 지금 편안한 행복을 찾기까지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글을 씀으로써 첫 번째로 나는 내 자존감과 행복을 굳건히 한다.

그렇게 혼자만 끄적이고 끝나도 좋지만 내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하면 더 기쁘다.

그래서 내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이런 방식으로 행복할 수도 있구나, 하며 당신도 행복해지면 좋겠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 많이 사는 세상에 살고 싶다. 길을 가다 마주치는 사람들이 행복해서 나도 같이 행복하면 좋겠다. 여기에 쓰는 글들 모두 나의 이기심에서 출발한 글이지만 결국 누군가에게 나쁜 일이 아니니 시작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 행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