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수비학을 아는가?
이름과 생년월일을 수와 셈을 이용해 개인의 특성을 이해하는 거라고 한다.
예전에 타로 보시던 분이 수비학도 봐주셨다고 했는데, 나는 GPT에게 물어봤다. 요즘 GPT는 참 별 걸 다 한다. 'GPT에게 수비학을 물어보라'는 지인의 추천을 받아 재미로 해보았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내 눈길을 끈 건 '인정'
사업을 할 때의 나는 내가 인정욕구 참 많은 사람이구나 알았다. 적어도 내 사람들에게 이해받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그래서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눈으로 보는 엄마에게 큰 상처를 받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엄마인데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보는가, 하는 것과 온 세상으로부터 나를 부정당하고 거부받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증명하고 싶었다. 부모님의 권유나 유도된 선택이 아닌 진정 나 스스로 선택한 길에 대한 인정. 그리고 그것에 대한 증명.
그런데 이제와서는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한가 싶다. 변화무쌍한 이 세상에서 그런 증명이 무어. 내가 좋으면 됐지. 사실 그렇게라도 목표를 만들고 나를 자극해 움직이도록 하려는 장치였는데,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이 아니고서야 그저 나를 힘들게 할 뿐이었다.
셀프 칭찬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스스로에게도 야박했다.
내가 정말 힘들었던 시간은 다른 사람의 기준보다 나 스스로의 기준에 미치지 못할 때였다. 이쯤 되면, 이 나이면, 이 연차면, 이 정도 했으면 내 성과는 이 정도여야 하는데 왜 그게 안 될까? 내가 부족한가? 뭐가 부족한가? 뭘 해야 하지?라는 고민이 2년 가까이 이어졌다. 해볼 거 다 해봤는데 안 돼서 아니구나 했다. 그리고 미련도 버려졌다. 툭툭 털어낼 수 있었다.
결국 모든 판단의 근거는 '나의 기준'이다.
사회의 기준, 타인의 기준, 시선과 평가들 이런저런 말들 많지만 그것들을 내가 받아들이냐 마느냐로 내 마음이 바뀐다.
그래서 다시 나를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하면 행복할까? 나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지금 내가 바라보고 달리는 것이 진짜 '나의 목표'인가? 그 과정에서 나는 지금 행복한가?
사업을 하는 5년은 행복했다. 주변에서 죽상이었다, 힘들어 보였다, 해도 나는 그 힘듦까지도 좋았다. 교실에서 모든 것을 간접경험으로 깨우치던 나는 보다 다양한 것을 글이 아니라 직접 부딪혀 경험하며 배우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다양한 경험을 하고 더 성장하는 내가 좋았다. 근데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스스로가 의문을 갖은 2년은 덜 행복했다.
그래서 사업을 중단했다. 언제든 다시 때가 되면, 다시 하고 싶으면 하자.라고 하고, 내게 쉽고 익숙한 길을 갔다. 어려운 일을 해야만 성취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잘하고 익숙한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사업보다 쉽게 느껴진다. 쉽다고 하지만 종종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기고 하루에도 몇 번씩 뒷목을 잡는다. 그래도 괜찮고 거기서도 보람과 행복이 있다.
내 기준을 세우자.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며 슬퍼하지 말고, 슬픈 것도 내가 정하도록 하자.
기준이 없기로 해도 된다. 기준이 없는 게 내 기준이면 되니까.
당신은 오늘을 전에도 살아봤는가? 나는 오늘이 처음이다. 처음 하는 것은 실수도 할 수 있고, 못 하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다. 처음인 오늘을 사는 나를 칭찬하자. 처음인데 너무 잘했다!
오늘 내가 한 일들을 적어봐도 좋다.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 씻고 옷 입고, 혼자 출근하고, 많은 업무들을 해내고, 퇴근도 혼자 잘했다. 이따가 밥도 혼자 잘 챙겨 먹을 거다. 이번에도 누구의 도움도 없이 씻고 잘 준비하고, 제 때 잘 잘 거다. 어린이만 해도 이거 혼자 못 하는 경우 아주 많다. 근데 당신은 전부 스스로 다 해냈지 않은가!
칭찬 많이 해주자!
모두가 지금은 처음이 아닌가
전에도 해봤던 거, 오늘 실수하면 어떤가. 많이 애썼으니 토닥여주자.
내일 또 열심히 잘해보자.
사실 잘 안 해도 된다.
그냥 지금 행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