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꿈꾸는 그것
회빙환이 인기인 이유는 모두 그걸 바라기 때문이 아닌가?
내가 처음 판타지 소설을 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지금은 제목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지만 언니의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소설은 신세계였다
길을 걷던 주인공이 갑자기 낯선 곳에 떨어지게 되었고, 그곳에서 주인공은 이세계에서 온 특별한 사람으로 대우받으며 위험에도 노출되고 온갖 모험을 겪는다. 완결이 안 났던 걸로 기억하는 그 소설은 내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것으로써 충분한 역할을 했다.
고전소설을 읽으라는 아빠의 눈을 피해 여기에도 인생과 철학이 있다며 퇴마록, 드래곤 라자, 쿠베린(그녀가 표절 작가라는 점은 매우 슬프다.) 등을 마구 읽어댔다.
내가 어린 시절 “나도 차원이동”을 꿈꿨던 것처럼 이제는 공중파 드라마도 회귀, 빙의, 환생 같은 것들을 다룬다. 처음에는 마이너 한 장르였던 판타지 소재를 공중파 메인 시간대 드라마에서 만나는 것은 이상한 느낌이었다. 이걸 여기서 봐도 되나, 싶은 부끄러움을 닮은 어색함과 소수이기에 쉬쉬하던 것이 이제는 양지로 나와 인정받음에 대한 의기양양함 같은 것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런데 이런 소재들이 인기를 끄는 것은 그만큼 많은 이들의 삶이 팍팍해졌음일까? 판타지로 내가 현실도피를 했던 것처럼 말이다.
과거로 돌아가 강남땅을 사고, 삼성과 애플 주식을 사 부자가 되고, 나를 배신한 남편과 친구를 엮어주고 나는 더 나은 사람과 미래를 약속한다. 실수와 실패를 원하는 것으로 바로 잡는 삶, 그때는 몰랐던 것을 앎으로 인해 나아지는 삶을 사람들은 꿈꾼다. 흙수저는 금수저로 바뀌고,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 이전에는 가지지 못한 인기나 능력, 외모를 통해 전혀 다른 삶을 살아낸다. 또는 과거의 많은 지식, 경험과 지혜 등을 가지고 새로운 인생을 잘 꾸려간다.
일상의 고단함을 잊기 위해, 또는 풀어내기 위해 잠시 환상의 세계로 다녀옴은 오히려 건전한 취미생활이 되었다. 오히려 일정 분야에 취미이지만 전문가 못지않은 전문 지식을 가진 '덕후'들은 일각에선 환영받기도 하고, 예전처럼 이상한 눈초리를 받지도 않는다.
단, 그가 일상으로 온전히 돌아와 자신의 삶을 다시 꾸려간다는 것을 전제로 말이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나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 현실을 살아가는 것.
인간은 누구나 색다른 모험이나 일탈, 다른 삶을 꿈꾸기도 한다. 그러나 회빙환을 주제로 하는 이야기들이 결국 예기치 못한 위험을 초래하고, 이점이라 생각하고 휘두른 미래에 대한 지식이나 전생의 지혜들이 자신을 찌르는 칼날로 돌아온다. 회빙환한 삶이든 그렇지 않은 삶이든 결국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이다.
스스로를 잘 아는 것, 이 세상 유일무이하게 반짝이는 나를 사랑하는 것. 내게 소중한 것들이 있는 이 삶을 사랑하고 감사하는 것. 회빙환이 인기를 끌며 많은 사람들이 삶을 팍팍하게 느끼는 때에 더욱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삶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회귀를 해도 빙의를 해도 환생을 해도 그 끝은 지금과 다를 바 없다.
지금 이 삶에 닥친 문제는 진짜 문제인가? 문제가 아닌데 내가 문제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문제가 해결되면 앞으로 행복할까? 더 이상의 문제는 없을까? 진짜 내 삶을 행복하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그것이 없는 내 삶은 불행한가?
아직도 고민하고 있지만 그래도 내게 문제가 아니게 된 것들, 풀어낸 문제들, 극복한 어려움들은 모두 아프지만 나 자신을 똑바로 본 것에 있었다.
나는 아직도 판타지 소설을 즐긴다. 정기적으로 꾸준히 들리던 책방이 이젠 휴대폰 속 앱이 되었을 뿐.
이불을 뒤집어쓰고 몰래 읽다 인기척에 황급히 스탠드를 끄고 자는 척하던 어린이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누워서 폰을 보는 어른이 되었다. 물론 내일 출근을 생각하며 또는 피로를 이기지 못해 잠들긴 한다.
내 행복의 한켠은 예전처럼 전문적이지 않아 덕질이라 부르기 민망해진 취미생활이 자리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세계를 다녀오는 것이 행복하다. 돌아올 나의 삶이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