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닝 포인트

모르기 때문에 기대한다.

by 물 긷는 자 연지신
아랫집 남자가 갑자기 쓰러졌는데,
생명이 위독하대요.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자, 아내가 말했다. 그를 잘 알지 못했지만, 위아래 살며 마주치면 안부 정도는 묻곤 했다. 며칠 전에도 보고 인사했는데…

“아직 젊지 않아? 애들도 어리고”

“응급차 오고 난리 났었어요. 그 집 엄마가 얼굴이 하얘져서 얼마나 당황해하던지. 애들 좀 봐달라고 해서, 낮에 종일 우리 집에 있었어요.”

아내가 말을 이어갔다.

“카이저 병원 응급실로 갔는데. 폐가 수축됐다가 펴지지 않았대요. 며칠 더 두고 봐야 한다는데, 꽤 심각한가 봐요. 애들도 어리고 그 아줌마는 집에서 살림만 했는데, 아저씨 잘못되면 어쩌나…”


아랫집 남자는 LA 경찰국(LAPD) 범죄 감식반(CSI) 소속 경찰관이다. 경력이 20년 넘는 베테랑으로 한국 사람 중에 자기가 유일하다고 했다. 업무 특성상 주로 밤에 근무하고, 낮에는 거의 집에 있었다. 직업이 경찰인지라, 인상이 무척 강했다. 체격도 한국인으로는 꽤 큰 편으로 182-3센티는 돼보였다.


그 집엔 아들이 둘 있었는데, 큰애는 초등학교 5학년, 둘째는 2학년이었다. 큰애가 발달장애가 있었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정상과 경계에 있는 아이였다. 얼핏 봐서는 잘 구분이 안 됐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 달랐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오른손을 흔들었다.

동생은 사내아이지만 눈이 커다랗고 똘망똘망한게 여자애처럼 예뻤다.

아내 말에, 그 집 아빠는 유난히 둘째만 편애하고 큰애한테는 모질게 대했다. 그가 큰소리치는 소리를 집에서도 여러 번 들었다. 부부 사이도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부인 표정이 어딘지 그늘져 보였고 어쩌다 마주치면 얼굴을 숙이며 피했다.

그녀는 큰 아들에게 매우 헌신적이었다. 아들을 어떻게든 일반 학교에서 정상적인 아이들과 공부할 수 있도록 애썼다. 온갖 부정적인 의견과 반대를 무릅쓰고 끝내 라크라센타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일화는 이 동네에선 유명했다.


다음날 출근할 때, 아파트 파킹랏에 그가 타고 다니던 BMW 오토바이가 덩그러니 서있었다. 퇴근할 때에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 옆에 부인이 타고 다니던 낡은 붉은색 미쯔비시 SUV가 쓸쓸해 보였다.


전적으로 남편에게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관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틀어졌고, 남편은 지금 생사의 문턱에 서 있다. 게다가 큰아들은 정상이 아니다.

사면초가가 바로 이런 것인가? 그녀에게 삶이란 어떤 의미일까?


그렇게 2주가 지났다. 다른 사람의 죽음이란 늘 접하는 평범한 일상이라 기억에서 흐릿해졌다.

퇴근 후 집에 오니, 아내가 기다렸다는 듯이

“여보, 아랫집 아저씨가 어제 깨어났대요. 2주 만인데, 기적이래요.

보통 정상으로 돌아오기가 거의 불가능한데, 사람도 알아보고 완전 정상이래요.

병원에서도 지금까지 이런 일이 없었대요. 정말 잘됐지 뭐예요. 아줌마 얼굴이 활짝 폈어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부인의 어두운 얼굴이 떠오르며 ‘참 잘됐네’ 생각했다.

“한시름 놓으셨겠네.”

“한시름이 뭐예요. 거의 죽다 살았지. 그 아줌마야말로 여기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볼 때마다 말했어요. 늦게 결혼한 데다 애들은 어리고. 게다가 큰애가 정상이 아니잖아…”


아랫집 남자는 워낙 체력이 좋아서인지, 바로 퇴원해서 집에서 요양 중인데 놀랍게 회복 중이라 했다. 출근하며 파킹랏을 보니, 그의 오토바이가 방향이 좀 바뀌어 있다. 며칠 후, 아파트에서 아내와 걷는 모습을 보았다. 반갑게 인사했다.

“아이고, 고생 많으셨지요? 많이 좋아 보이세요. 언제 시간 되시면 저희 집에 한번 오세요.”




제가 죽음을 경험했어요.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되물었다.

“제가 병상에 누워있는 내 모습을 봤어요. 의사들이 하는 소리도 다 들었고요. 그런데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 없었어요. 누워있는 그 몸 안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니까요.”

‘말로만 듣던 임사체험?’


실제로 경험한 사람을 직접 보면서 이야기 나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미국에서 강력 사건 - 주로 총기 사건 - 이 가장 많은 LA에서, 끔찍하고 충격적인 현장을 제일 먼저 찾아가 조사했다. 늘 죽음이 곁에 있었다. 어느 날 불쑥 찾아온 죽음을 만난 뒤, 다시 돌아왔다.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고, 말할 때 그의 표정은 꾸밈없이 진지했다. 뭔가 알려주고 싶은 간절함이 느껴졌다.

“어떤 터널을 지나고 있었어요. 한참 가고 있는데 밖이 환해지며, 엄청 많은 사람들이 어떤 강을 건너는 것이 보였어요. 나도 빨리 건너가려고 서두르는데. 갑자기 아내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어요.

“안돼!”

소리에 확 깨어났어요. 지금도 방금 전 일처럼 생생해요.”

혼란스러웠다. ‘그가 사실을 말하는 것은 확실한데, 흔히 말하는 뇌의 환각 때문에 착각한 것이 아닌가?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눈이 떠졌는데 손등에 햇볕이 비쳤어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죽 흐르고 늘 봐왔던 세상이, 바뀐 것은 하나 없는데 얼마나 아름답던지, 감사하고... 병원 창밖 풍경이 그렇게 평화로운 거예요.

내 손을 주무르는 아내가 세상에,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었어요. 나도 모르게 아내 손을 잡았네요. 처음일 거예요.”

그는 자기 경험을 모두 말하고 싶어 했다.

“아시겠지만, 우리 큰애가 정상이 아니잖아요. 사실 제가 그 녀석한테 몹쓸 짓을 많이 했어요. 와이프한테도 그랬고, 우린 한 번 싸우면 끝장을 냈어요. 욕도 많이 하고요.


제 베개 밑에는 권총 두 자루가 장전돼 있어요. 하도 끔찍한 것을 많이 봐서, 사람들이 정상으로 안 보여요. '부스럭'하는 소리만 들려도, 나도 모르게 베개 밑에 있는 총으로 손이 갔어요. 총을 들고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안심할 수 있었어요”


“다른 사람이 바뀌면 행복할 줄 알았지요. 우선 아내와 큰 놈을 내 생각대로 밀어붙였는데, 오히려 악화될 뿐이었어요. 와이프 하곤 이혼 직전까지 갔고,

그런데 죽음 문턱에서… 내가 바뀌었어요. 아내 손을 잡고 산책한다니까요. 웃음도 눈물도 많아지고. 큰 놈이 이젠 불쌍하고 안쓰러워 마음이 아려요.

왜 이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이 좋아요.”


말하는 그의 눈이 호수 같이 깊었다. 그가 경험한 것이 사실이든 환각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가 변함으로 그와 가족이 모두 행복해졌다.


거의 자정이 다돼서 그는 한 마디를 남기고 아래층 집으로 내려갔다.

“집이 가까워서 참 좋네요.”




요새, 심리치료받고 있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치료까지 받으실 정도예요?”

“우리는 끔찍한 사건을 다루면 의무적으로 심리 치료를 받게 돼 있어요..”

이어서 말했다.

“LAPD는 아마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직업 중 하나예요. 전쟁터보다 더해요.”

“오늘 저녁에 차 한잔 할까요?”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좋지요.”


“저는 인간들이 참 악하다고 생각해요. 정말 인간이길 포기한 사람들이 세상에 가득해요.”

그는 얼마 전, 세계적인 팝스타의 사망 현장도 조사했다.

“그 사람, 엄청 외로웠어요. 집안에 온통 인형으로 가득해서 놀랐어요.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었던 거지요. 곁에 있던 사람들 모두 자기를 돈으로만 보니. 얼마나 외로웠겠어요.”

그는 여러 사건 현장들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며, 인간이 가장 극한으로 악해지는 순간들이 그려진다고 했다. “가보면 상상이 돼요. 그중 몇몇 사건은 너무 끔찍해서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어요.”


그는 조금도 주저 없이 “사람은 누구나 상황이 들어맞으면, 범죄를 저질러요”라고 단정 지었다. “겉모습은 절대 그럴 사람 같지 않아도, 누구나 살인할 수 있어요. 예외는 없어요.”

그의 말에 수긍이 됐다. 나도 그렇지 않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내가 말을 꺼냈다. 그를 만나면, 꼭 묻고 싶던 의문이 있었다.

“네. 얼마든지요?”

“완전 범죄가 가능할까요? 만일 선생님이라면 범행을 완벽하게 감출 수 있겠어요?”

“그건 불가능해요. 저는 이걸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절대 그런 짓 안 하지요. 언젠가 반드시 걸려요.”

그는 세상에 비밀은 없다고 했다.

“결국 다 알게 돼요. 왜 그렇게 감추고 숨기려고 애쓰는지… 안쓰러워요. 후회해도 이미 늦지요. 사람은 누구도 완전하지 못해서, 반드시 흔적을 남겨요.”

현장에는 실수의 자국들이 의외로 많다고 덧붙였다.

“죄짓고 피해 다니는 사람들,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에요. 피해서 도망 다니는 것은 더 무서운 감옥에 갇히는 거죠. 그렇게 사느니 하루라도 빨리 자수하고 광명 찾자. 하하하”


오늘도 거의 자정을 넘겼다. 그는 아쉬운 듯 인사하며 집으로 갔다.

“가까워서, 참 좋네요.” 오늘도 같은 말을 한다. 너무 늦어서 미안하다는 그만의 표현이다.


몇 달 뒤, 우리는 라크라센타를 떠나 오렌지 카운티로 이사했고, 그도 집을 사서 산 바로 밑 전망 좋은 집으로 이사했다. 자연히 소식이 끊겼다.


어느 해 라크라센타 지역에 산불이 크게 났던 적이 있었다. 온 동네가 연기로 뒤덮였고, 불꽃이 금방이라도 주택을 덮칠 것처럼 세차게 펄럭였다. 산과 가까운 지역 주민들에게 모두 대피령이 떨어졌다.


TV 뉴스를 지켜보고 있는데, 그가 나왔다. 한국 뉴스뿐 아니라, 미국 뉴스에도 시간마다 그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대피령을 거부한 채,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마당과 지붕에 물을 뿌리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자세히 보도됐다. 미국 뉴스에서는 그를 은근히 영웅으로 만들었다. ‘자기 목숨을 바쳐서 재산과 가족을 지키고 보호하는 미국인의 표상’으로 추켜세웠다.


그의 말이 떠올랐다.

“죽음이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면, 잘 안 와요. 그런데 나하고 먼 남의 얘기라고 생각하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요. 내가 경험한 사건들이 대부분 그랬어요. 저는 늘 죽음과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죽음이 맛만 보여주고 다시 돌아간 것 같아요. 그때 그 일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이혼해서 혼자 살고 있을 거예요. 지금쯤 거의 폐인이 됐겠지요.”


그는 인생의 극과 극을 경험했다.

보기 드문 행운으로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모른다. 그게 정답이다.

모르기 때문에 기대하고,

기대가 무너져도

또 다른 기대를 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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