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없는 게 아니라 말할 사람이 없는 거였다.
이거 보고 사인하래.
둘째가 집에 오자마자 종이 한 장을 쑥 내밀었다. 언제나 말투는 건조했고, 표정엔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대수롭지 않게 종이를 받아 들고 읽었다.
굵은 글씨로 인쇄된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부교장 명의의 공식 통신문이었다.
[워싱턴 D.C. 견학 중 발생한 학생 행동에 대한 주의 통지 및 학부모 면담 요청]
‘뭐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둘째는 지난주, 학교에서 주관한 워싱턴 D.C. 견학을 다녀왔다. 돌아와서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
“어땠어?” 물어보면
“좋았어. 재밌었어.”
그게 전부였다.
항상 자기 이야기를 자세히 하지 않는 아이라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통지문에는 전혀 다른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견학 도중, 학생이 사전 허가 없이 대열에서 이탈,
인솔 교사와 다른 학생들에게 심각한 우려를 주었고,
전체 일정에 차질을 초래했다.’
마지막 문장이 더 무거웠다.
‘재발 방지를 위한 주의 요청과 학부모 면담 요.’
나는 통지문을 들고 둘째에게 물었다.
“DC에서 무슨 일 있었어?”
둘째는 별일 아니라는 투로
“자연사 박물관에서 책 읽고 있었는데, 나중에 선생님들이 나 찾으러 왔어.”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무심히 말했다.
사건은 이랬다.
박물관을 견학하던 중, 둘째는 구석에 놓인 인쇄물을 정신없이 읽고 있었다. 대열은 그를 두고 이동했고, 인솔 교사가 인원 점검을 하다 학생 한 명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난리가 났다. 당시엔 휴대폰도 없었다. 다시 거슬러 올라가 박물관 안을 샅샅이 뒤진 끝에, 한쪽 구석에서 혼자 책을 보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반가우면서도 얼마나 화가 치밀었을까...
나는 둘째의 행동을 이해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아이였다.
미국 가기 전, 친정에 인사가요.
셋째 출산을 한 달 여 앞둔 7월 중순, 휴가철이라 친정으로 향하는 길은 아침부터 막혔다. 제2 경인 고속도로를 타고 광명 IC를 지나니 벌써 차가 꽤 많아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아이들은 뒷자리에서 신나서 떠든다.
경부 고속도로로 갈아타, 이천 휴게소에 잠시 들러 간식을 사 먹었다. 여기는 사시사철 손님들로 북적인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여러 음식을 맛보는 것은 미국에서는 좀처럼 즐길 수 없는 한국 만의 재미였다. 애들은 아빠 손잡고, 이것저것 입에 넣고 깔깔대며 즐거워한다.
중부 내륙 고속도로를 들어서니, 고향 분위기가 물씬 난다. 산이 높고, 계곡이 깊다. 나는 청풍명월로 유명한 청풍에서 태어나 자랐다. 충북이지만 강원도 원주와 가까워, 말투는 강원도 특유의 억양이 강하다. 평소엔 두 시간이면 올 거리인데, 세 시간이 넘게 걸려 점심때가 지나서야 도착했다.
큰애가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뛰어가 품에 안기며 대뜸 “할아버지, 토끼 가져왔어요? 제가 기를 거요.” 묻는다. 평소엔 무뚝뚝하기만 한 아버지는 외손주가 예뻐서 어쩔 줄 몰라하신다. 햇볕에 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야가 보자마자 토끼 보여달라네.” 곁에 있던 엄마가 “아휴, 오느라 고생 많았네. 어여 들어와” 하며 우리를 이끈다.
아버지는 손녀를 위해 농기구 창고 한 귀퉁이에 널찍한 토끼장과 토끼 암수 한 쌍을 준비하셨다. 큰애는 토끼가 마냥 신기한 듯 쳐다보며, 미리 준비한 이름도 붙여주었다. ‘미키와 미니’였다. 평소에 늘 재밌게 보던 미키 마우스와 미니 마우스의 이름이다.
첫째, 둘째 날에는 풀도 뜯어 주고, 청소도 하더니 셋째 날부터는 꾀를 부리기 시작한다. 그다음 날부터 토끼장 근처에 얼씬도 안 했다.
친정에선 오이 농사를 지었다. 제천 특산물인 금수산 가시오이로 품질 좋기로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오전 10시까지 농협 공판장에 납품해야 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온 식구가 부지런히 오이를 따서 박스에 담는다. 이때는 남편도 함께 거든다. 싱싱한 오이를 박스에 담아 경운기에 싣고 농협 공판장으로 간다. 아버지가 경운기를 몰고, 남편과 두 아이는 짐칸에 오이 박스와 함께 타고 간다. 아이들은 공판장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을 얻어먹으려고 기를 쓰고 따라갔다.
“할머니, 이게 뭐야?
“냄비 방석”
“할머니 이게 뭐야?”
“냄비 방석”
뭐가 재미있는지, 둘째가 할머니한테 깔깔거리며 묻고, 할머니도 재밌다는 듯이 같은 대답을 계속 반복한다.
“야가 뭐가 될 안 가봐. 뭐가 그리 궁금한 게 많은지, 하루 종일, ‘할머니, 이게 뭐야’ 묻는 다니…”
둘째는 궁금한 게 참 많았다. 처음 보는 신기한 것이 많은 시골에서 하루 종일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할머니, 이게 뭐야?” 묻고 다녔다.
둘째가 미국 온 지 얼마 안 된 세 살 때, 버튼을 누르면 영어 발음이 나오는 장난감이 있었다. A를 누르면 ‘에이’, 사과 그림을 누르면 ‘애플’— 스펠링도 하나씩 따라 읽어주는 식이었다. 아이는 하루 종일 그 장난감 앞에서 놀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 어느새 떠듬거리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소름이 돋았다.
‘내가 혹시… 천재를 키우는 건가?’
책을 읽기 시작하자, 독서량이 엄청나게 늘었다. 유치원도 들어가지 않은 꼬마가 몇 년 위인 언니 오빠들도 읽지 않는 두꺼운 책을 재밌다고 혼자 읽었다. 도서관에 데려다 놓으면, 몇 시간이고 아무 말 않고 책만 읽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가면, 항상 혼자 따로 앉아 두툼한 책을 뚫어지게 읽으며 슬며시 혼자 웃기도 잘했다. 지나가는 아이들이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어느새 둘째는 ‘천재 소녀’로 동네에 소문이 퍼져갔다.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자랑스러운 마음이 더 컸다.
둘째는 또래 친구가 없었다. 아이도 친구에 대한 별다른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책을 통한 배움도 중요하지만, 친구들과 부대끼며 관계를 배우는 것도 필요했다. 사실 이게 더 중요했다.
둘째는 학교에서 전형적인 너드(nerd)로 알려졌다. 안경을 꼈고, 주로 책만 읽었다. 친구 없이 혼자 학교 여기저기 다니며 유심히 풀도 보고 나무도 만져 보았다. 가끔 슬며시 웃기도 하니 누가 봐도 이상한 아이였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고, 패션 센스도 없이 매일 편안한 옷만 입었다. 지금이야, 이런 이들이 IT 천재 이미지로 세상을 주름잡으며 선망의 대상이지만, 당시엔 영화나 TV드라마에서 자주 놀림감이 되던 시절이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학교에서 오라는 날이 돼서, 남편과 함께 학교에 갔다. 담당자의 안내로 회의실에 들어가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회의는 부교장이 주관했고, 생활지도 교사, 담임 선생님과 인솔 교사 그리고 통역을 도와줄 자원봉사자가 참석했다.
부교장이 견학 당시의 일을 다시 한번 설명했다. 요지는 통지문 내용과 같았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관계자들의 회의를 거쳐 둘째를 '향후 1년간 대내외적인 활동에 참여를 금지한다’라고 결정했다. 최근 총기, 각종 폭력, 마약 문제 등으로 학생들의 안전 문제가 이슈화된 데다가, 둘째는 이래저래 학교에서 요주의 학생이었다.
청천벽력이었다.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혔다. 이것은 엄연한 폭력이었다.
뭔가 계속 적고 있던 남편이 고개를 들더니 다소 경직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목소리는 떨렸다. 화를 참을 때 나타나는 그만의 모습이 보였다.
“이것이 법적으로 합당한 조치입니까?” 이 말을 듣더니 그들이 서로 얼굴을 돌아보았다. 적잖이 당황해하는 눈치였다. 우리는 아이 때문에 물러설 수 없었다. 이런 대접을 받느니 차라리 전학을 가는 게 나았다.
남편의 말이 이어졌다.
“저는 업무상 한인 언론사 관계자들과 친분이 깊습니다. 학교에서 이 결정을 강행한다면, 저는 이 사실을 언론에 알려 공론화할 것입니다. 혹시, 학생이 소수계여서 인종 차별적인 결정이 없었는지, 변호사를 통해 법적인 검토도 함께 진행할 것입니다. 우리 가족은 법에 허용된 모든 권리를 행사할 것입니다.”
목소리는 단호했다. 만일 자식이 아니라, 자기 일이었다면 “알았으니 다음부터 잘하겠다”라고 끝냈을 것이다.
부교장은 당황해하는 기색으로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들끼리 몇 마디 나누더니, 잠시 상의해 보겠다며 회의실을 나가 10분쯤 후에 다시 들어왔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타협안을 제시했다.
“좋습니다. 부모님 의견을 수용하겠습니다. 대신 부모 중 한 분이 보호자로 참석해야 합니다.” 동의하고 학교를 나왔다.
아이한테 필요한 게 무얼까?
고민이 깊었다. 그때 며칠 전 읽은 어느 미국 엄마의 책 한 구절이 떠올랐다.
‘부모는 감독, 아이는 선수 - 부모는 아이와 한 팀이며, 명감독이 돼야 한다.’
그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감독의 역량에 따라 선수의 성적이 달라진다.
팀 성적은 오로지 감독 책임.
운동 경기에서는 선수 교체가 가능하지만,
내 아이는 절대 뺄 수 없는, 단 한 명의 선수.
가슴이 뜨끔했다. 마음을 다졌다.
‘그래. 나도 감독이 되자.
적어도 내 아이한테 만큼은…
누구보다 좋은 명감독이 되자.’
감독의 중요한 역할은 선수를 위해 좋은 코치를 선발하는 일이었다.
‘둘째가 마음 터놓고 의논할 수 있는 좋은 선생님을 찾자.’
이게 가장 중요했다. 아이가 크니 딱히 내가 해 줄 수 있는 역할이 없었다. 애들과의 대화 소재도 점점 줄어들어 그저 학교에서 돌아오면, “오늘 어땠어?” 물어보는 정도였다.
주변에 수소문했지만 마땅한 선생님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둘째가 “수학 선생님 친구가 학원을 차렸는데, 설명회 한대. 오면 맛있는 것도 준대. 가고 싶어.”
마침, 토요일 오후 시간이라 둘째를 데리고 갔다. 아직 8학년이라 설명회와 큰 관련은 없었지만, 좋은 선생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기회가 되면 어디든 찾아 나섰다.
캐티 선생님. 30대 초반의 여자였다. 중학교 때 이민 온 1.5세로 영어와 한국어 모두 완벽했다. 대입 컨설팅을 하다가 독립해서 이제 막 시작했으니, 아직 학생은 없었다.
똑 부러지게 말하는 것이, 아주 똑똑해 보였다. 끝나고 잠시 만나 “선생님, 우리 둘째가 학교 생활을 좀 힘들어해요. 불이익도 많이 당하는 것 같고요. 애가 의논할 상대가 필요한데, 제가 그걸 채워줄 수 없네요. 어쩌면 좋을까요?”
선생님이 둘째를 불러 언니처럼 다정하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좀 있으니 둘째가 해맑게 웃으며 말한다. 그동안 대화에 갈증을 느꼈던지, 계속 말이 이어졌다. 나하고는 없던 모습이었다.
선생님께 점점 마음이 끌렸다.
정식 미팅 약속을 하고 헤어질 때, 내게 “얘한테 10학년 언니가 있다면서요, 다음번에 같이 오세요.” 말한다.
‘10학년이면 방향도 거의 다 잡혔는데, 이제 와서 뭐 할 게 있나?’ 잠시 머뭇거렸다. 사실 돈이 더 큰 부담이었다.
“제가 이제 새로 시작하니까, 좋은 학생이 많이 있어야 해요. 자매니까 그냥 해드릴게요.” 기분 좋게 정곡을 찔렀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후, 둘째는 틈만 나면 선생님께 이메일, 텍스트를 보냈고 전화도 자주 했다. 크고 작은 고민부터 학교애서의 시시콜콜한 일상까지, 내게 말하지 않던 것을 그녀에게 편하게 털어놓았다. 큰애도 자신의 고충과 진로에 대해 선생님과 자세히 이야기 나눴다. 둘째의 얼굴이 서서히 달라졌다. 나하고도 말수가 늘고, 웃음이 많아졌다. 친구도 몇 명 생겼다. 가장 큰 위안이었다.
세상에 도움이 필요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말을 안 할 따름이다.
많은 사람들이 둘째를 보고, ‘얘는 알아서 잘하지?’ 말하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재’인 줄 안다. 과연 그럴까?
애는 애다. 스스로 알아서 하는 애는 아무도 없다.
이것은 어른도 비슷하다.
애는 특히 애(愛), 사랑이 필요하다.
어느 한쪽이 특별하면, 부족하고 모자란 부분이 더 많다. 둘째에게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동안 잘하는 줄로만 믿었다.
둘째는 감수성도 예민해서 글을 잘 썼다. 다른 사람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 예민함에 공감하지 못하고, 무시하고, 면박을 주곤 했다. “지금 바쁜데, 뭘 그런 걸 신경 써. 나중에 해도 안 늦어.” 이런 식이었다.
‘나중에 이 아이가 받은 상처를 알고, 얼마나 가슴 아팠는지…’
참 감사하게, 둘째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생겼다.
그 아이는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표정이 바뀌고,
말이 바뀌고
인생도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