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 - 붓, 물감 그리고 감성
이제 아메리칸드림은 없나 봐요.
주위에 돈 벌었다는 사람을 못 봤네.
저녁을 차리며 아내가 한마디 했다.
“그게 아니라, 우리 주변에 부자 된 사람이 없는 거겠지.”
실제로 그랬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겨우 그달 그달 넘기며 살고 있었다. 대부분 월말이 다가오면, 잔뜩 쌓인 청구서들로 마음이 심란해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직장을 잃거나, 사업이 어려워지면 당장 다음 달부터 생계가 막막했다. 이런 일이 몇 달만 이어져도, 여지없이 쫓겨나 거리에 나앉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거리는 점점 노숙자 텐트가 늘어나 도시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사정은 우리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911 때보다 더 어려워. 힘들어 죽겠어.” 이 소리를 입에 달고 산다. 다운 타운에서 봉제공장 하는 후배도 “형, 요새 장난 아니야. 단속도 점점 심해져서 직원들도 잘 안 나오지. 중국에서 수입하는 게 훨씬 싸니까, 여기선 옷을 만들 수가 없어. 멀쩡히 다 만들어 납품하면, 돈도 잘 안 주지. 시급은 매년 오르지. 최악이야.”
사정이 이러니, 사람들은 점점 팍팍해지고 마음의 여유도 사라졌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취업 오는 사람들도 눈에 띄게 줄었다. 그들은 값싸고 질 좋은 인력 풀인데 이마저 줄어드니, 한인 사회는 점점 외딴섬처럼 고립돼 갔다.
우리 회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러 일을 다양하게 시도했지만 효과는 크게 없었다.
회사는 거의 사장 혼자서 일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우선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사람이 사장밖에 없었고, 일도 제일 열심히 했고, 잘했다. 고객들 대부분 사장을 믿고 찾아왔다. 사장도 고객의 기대에 부응했다.
지금까지 겨우 버텼지만, 흐름을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우리 회사의 가장 큰 광고주는 U 신용카드였다. 한인을 대상으로 한 광고 마케팅을 맡고 있었다. 광고주의 가장 큰 관심은 카드 가입자를 늘리는 일이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기도 했다.
나는 한국의 전철역이나 거리의 작은 부스에서 행인들에게 작은 선물을 나눠 주며, 카드 가입을 권하는 모습이 자꾸 눈에 아른 거렸다.
‘신용카드 가입은 직접 설명하고 권유하는 것이 효과적인데, 특히 영어가 불편한 한인들에게는 더욱…’
회의 시간에 “사장님, 한국 사람들은 카드 가입할 때 미국 사람하고는 좀 다릅니다. 직접 보고 설명하는 것이 중요해요. 이번 LA 한인 축제에 참여하면, 광고 이상의 효과가 있을 겁니다.”
“정말 그럴까요? 만일 기대에 못 미치면…”
나는 직원이고, 그녀는 사장이라 결정에 대한 심적 부담이 달랐다. 제안을 했는데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면, 광고주가 떠날 위험도 있다. 게다가 미국 사람들은 결정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과정도 복잡했다.
내게는 결심이 필요했지만, 사장에게는 결단이 필요했다.
나는 다시 힘주어 말했다. “반드시 효과가 클 거예요.”
사장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어렵게 말을 꺼냈다.
“좋아요. 한번 해보죠.”
사장의 흔들리는 눈빛, 나는 중심을 잡아야 했다.
며칠 뒤 기획안을 정리해서 사장한테 보고했다.
“핵심은 카드 신청서를 작성한 사람에게 경품 추첨 기회를 줍니다. 1등 상품은 아이패드로 관심을 높입니다.” 당시 아이패드는 누구나 갖고 싶은 인기 품목이었다. 설명을 이어갔다. 마지막으로 예산과 예상 실적 등으로 마무리했다.
사장은 “그 정도 실적이 나온다면 정말 대단한 건데…” 반신반의했다.
그녀와 나는 행사 제안서를 밤늦게까지 하나하나 점검했다. 사장은 입술을 지그시 다물었다. 그리고 천천히 Send를 눌러 이메일을 보냈다.
다음 날 광고주와 미팅 후, 사장은 행사를 하기로 했다고 알려줬다. 다소 상기된 표정이었다. 나 역시 부담이 없지 않았지만 분명히 효과가 있을 거란 자신이 있었다. 믿음은 이성의 뒷받침도 필요하지만 이성을 초월해야 한다.
회사는 어떻게든 돌파구가 필요했다. 대부분 벼랑 끝에서 기회를 찾는다. 지금 우리도 그랬다.
행사는 10월 첫째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나흘 동안 이어졌다. 화창하고 쾌적한 LA의 가을 하늘 아래, 우리는 이른 아침부터 부스를 설치했다. 10피트짜리 부스 두 개를 나란히 임대해, 작은 매장을 꾸리듯 공간을 채웠다. 방문객들에게 나눠줄 다양한 상품, 경품 회전판, 음향 기기, 각종 서류, 그리고 현장 직원들의 비품, 티셔츠, 음료수 등 소소한 것 하나하나 세심하게 준비를 마쳤다.
나는 마이크를 잡고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과장된 말투로 목청껏 소리쳤다.
“자, 날이면 날마다 만날 수 있는 행사가 아닙니다. 상품이 쏟아집니다. 돌려만 주세요.
1등은 무려 아이패드! 어서 오셔서 기회를 잡으세요.”
일종의 호객 행위였다.
마침, 구경 나오신 어머니,
멀리서 귀에 익은 큰 아들 목소리 -
“아범, 아녀?”
눈에 들어온 아들,
세상에!
좋은 대학 나와
큰 회사 잘 다니던 내 아들.
미국까지 와서
장바닥에서 소리치는 장사꾼이라니!
사람들 속에 파묻힌 어머니 표정이 내 눈에 클로즈업되어 들어왔다.
나는 지금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니다.
어떻게든 가족들이 따뜻한 집에서
세끼 밥 먹고, 잠잘 수 있게 해야 했다.
이럴 땐, 늘 아버지 생각이 났다.
어머니 손에 들린 작업복,
단팥빵, 녹아내리던 아이스크림,
어린 두 아들을 보는 환한 얼굴,
무엇이 그리 좋으셨을까?
이것은 유산이었다.
훨훨 불타오르는
유리 공장 용광로 -
씨뻘건 유리물이
도랑처럼 흐르고
등짝은 땀으로 뒤범벅,
열기로 말라붙은
허옇게 핀 소금꽃 -
얼룩진 기름때,
아내가 벤젠으로 닦아내면 어느새 새 옷 -
간식으로 받은 단팥빵 두 개,
빨리빨리 -
아들 녀석들
한 개씩 갖다 주자.
내일은 월급날,
아이스크림 사서
녹기 전에 달려가
먹여야지.
한 시간 거리도
내겐 단 한 걸음 -
아들이 기다린다.
이렇게 아버지는 잠든 나와 동생을 억지로 깨워 먹이셨다.
지금, 나도 오십 년 전, 아버지처럼 살고 있다.
첫날이고, 평일이지만 낮부터 사람이 꽤 몰려들었다.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여기 뭐 좋은 게 있나?’하며 너나 할 것 없이 몰려드니, 줄이 계속 길어졌다.
‘이건 된다!’ 확신이 들었다.
둘째 날 금요일 저녁이 되자. 우리 부스는 인산인해였다. 하루 두 번 있는 경품 추첨 시간에는 몰려드는 사람으로 감당할 수 없었다. 사장은 오랜만에 웃음이 가득했다. 부스 여기저기를 바쁘게 다니며 손님들에게 설명했다.
오후가 되자 준비한 상품이 모두 동 나서, 당장 토요일에 사용할 상품이 부족했다. 광고주에게 급히 ‘무엇이든 좋으니 아무 거라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광고주는 흥분된 목소리로 “어메이징”을 반복했다. 즉시 오버 나이트로 프로모션 아이템을 있는 대로 보내주었다.
절정은 토요일이었다. 그 전날 행사 취재 보도에서 ‘화제의 부스’ 코너에 우리 부스가 신문과 방송에 보도되자 더 많은 방문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실적은 예상을 초과해 보고한 수량의 2배가 넘었다. 대성공이었다.
사장이 환하게 웃으며 직원들 앞에서 광고주로부터 온 회신을 말했다.
“이번 행사 최종 결과가 왔어요.
총 582명이 신청했는데, 승인율 85%로 압도적이래요. 내년에는 LA 뿐 아니라 뉴욕, 뉴저지 그리고 애틀랜타에서도 같은 행사를 하겠다고 연락 왔습니다. 행사 계획과 예산을 수립해서 알려달래요. 모두 정말 수고 많았어요. 감사해요”
직원들 모두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한시름 놓게 됐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한시름 놓은 거였지.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었다.
광고 업계는 급속도로 디지털, 온라인 중심으로 이동했는데, 한인 광고 회사는 이에 대응하기가 역부족이었다. 광고회사로 명맥을 유지하는 회사가 하나 둘 사라지고 있었다. 거스를 수 없는 큰 흐름이었다.
행사 이후 거의 한 달이 지나도 회사에 일이 없었다.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퇴근 후, 아내에게
“회사가 많이 힘들어. 이제 광고는 더 이상 앞이 안 보여.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게 좋겠어.”
아내도 고개를 끄덕인다.
“며칠 전 우리 아파트, 팔지 않겠냐고 부동산에서 연락 왔어요. 그거 팔아서 조그만 가게라도 해요. 마침 국민 연금도 해약할 수 있으니, 몇 달은 버틸 수 있을 거예요.”
다음날, 아침 사장 방으로 갔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사장은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세요. 조금 긴장되네…”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오랫동안 생각했는데, 이제 제 일을 하려고 합니다.”
“회사가 어려워서 그런 거라면, 부담 갖지 않으셔도 돼요. 괜한 생각 그만두세요.”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사장의 본심이 이랬다.
“아닙니다. 계획한 일이 좀 있어요. 더 늦기 전에 조그만 가게를 하려고요. 광고는 아니에요. 하하하”
사장은 말없이 가만히 있더니, 눈물을 닦았다. 직원 앞에서 눈물 흘리는 것을 처음 봤다.
“정말 미안해요. 그래도 이사님, 영주권이 나와서 정말 다행이에요.”
방을 나와 인수인계서를 작성하고 짐을 정리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또다시 짐 싸서 떠난다. 앞으로 만날 미래가 기대도 됐지만, 두려움도 있었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으려나?’
사장이 나를 부르더니 봉투를 주었다.
“많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그동안 많이 애쓰셨어요. 언제든 지나시다 들리세요.”
이렇게 8년간 근무했던 회사를 사직했다. 가장 오래 다닌 직장이었다.
사장은 자기 말에 책임을 다했다.
고객이 만족해하고, 실적으로 연결되는 것을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일에 대한 사랑은 성실로 표현됐다.
시대가 많이 변하고,
변화의 물결이 극심해도,
성실은 언제나 변치 않는 가치로 남는다.
그녀가 증명했다.
회사는 지금 거의 유일한 한인 광고회사로 남아있다,
광고주는 여전히 사장과 회사를 신뢰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녀의 성실함은 인생이라는 캔버스에 색을 입히는 붓과 물감이었다.
그것은 윤리학이나 도덕을 넘어선
삶에 대한 감성이며 감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