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완벽함의 두 얼굴

유연함이 사라진 완벽주의 -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by 물 긷는 자 연지신
자기야, 내일 점심때 우리 집에 와.
맛있는 거 할 거니까 와서 먹어.

앞집 미쉘 엄마가 내일 점심 먹으러 오라고 한다.

“웬일이야? 무슨 좋은 일 있어요?”

“내일 P사에서 우리 집에 음식 데모하러 올 거야. 부담 없이 오면 돼”


당시, P사 냄비는 주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가격은 보통 냄비의 스무 배 이상 고가인 데다, 건강 냄비로 명성이 자자했다. 이 냄비 한 세트 갖고 있다는 것은 고급 자동차를 소유한 것 이상의 자부심이었다.

손님이 방문했을 때, 이 냄비로 조리한 요리를 대접하는 것만으로, 꽤 격식을 갖추었다고 인정받는 분위기였다. 나도 꼭 갖고 싶었지만, 가격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고급 제품답게 한 번도 할인한 적이 없었다.


“내가 뭐 도와줄 것 있어요? 좀 일찍 갈까?” 빈손으로 가기 쑥스러워, 품앗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 말을 꺼냈다.

“괜찮아. 데모하러 오는 사람들이 다 준비해서 온대. 우린 그저 장소만 제공하고 먹기만 하면 돼.

P사 똘이 엄마가 우리 동네 사람이잖아. 그이도 온대.”


남편한테 똘이 엄마 이야기를 잠깐 들은 적이 있었다. P사는 남편 회사 광고주였다.

“P사에 박성자 이사라고 있는데, 아마 미국에서 영업을 제일 잘하는 한국 사람일 거야. 이 동네에 산다던데. 보통 똘이 엄마라고 불러. 근데 별명이 악어야.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다고…”

실제 자식 이름이 똘이가 아니라, 사람들 기억하기 쉽게 자기가 붙인 이름이라고 했다. 별명이 하필 악어라니… 보통 사람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점심 무렵, P사 직원들이 미쉘네 집에 왔다. 똘이 엄마는 단정한 차림에 작은 체구였지만, 단번에 사람들 시선을 모았다. 그녀가 손짓하자 직원들이 숙련된 솜씨로 잘 다담은 돼지고기, 오징어, 생선을 순식간에 냄비 속으로 집어넣었다. 물은 한 방울도 넣지 않았다.
‘타지 않나?’ 의아했지만, 차마 묻지 못했다. 이런 것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잠시 후 꺼낸 수육은 부드럽고 담백했으며, 오징어는 촉촉하고 쫄깃했다. 생선은 비린내가 사라지고 고유의 맛이 살아 있었다. 통째로 넣기만 했는데... 믿기지 않았다.

진짜는 따로 있었다.

똘이 엄마가 “집에 아무 냄비 하나만 가져오세요.”

미셀 엄마가 평소 쓰던 냄비를 들고 오자, 똘이 엄마가 P사 냄비와 나란히 물을 올렸다. 끓기 시작하자 베이킹 소다를 두어 숟가락 떨어뜨렸다. 미쉘네 냄비로 끓인 물을 한 숟가락 떠먹는 순간, 입안 가득 쓴맛이 퍼졌다. 도저히 삼킬 수 없었다.

“왜 이렇게 써요?” 모두가 놀래서 물었다.

곧 P사 냄비에서 끓인 물이 차례로 돌아왔다. 한 모금 혀로 살짝 찍었는데 신기하게 전혀 쓴맛이 없었다.
“중금속 때문에 이렇게 쓴 거예요.” 똘이 엄마의 이 한마디에, 모두 입을 굳게 다물었다. 얼굴은 긴장으로 굳어졌다.


‘여러분은 그동안 이런 중금속을 몸에 집어넣은 겁니다.’ 똘이 엄마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순간 냄비를 갖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꼭 사고 싶은데, 돈이 없었다.

‘괜히 왔네…’


데모가 끝나고,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3-40분이 지나 분위기가 무르익자, 똘이 엄마가 자기 얘기를 시작했다. 전라도 억양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제가 고향이 여수예요. 완전 시골이었다니께요. 남편 따라 무작정 이민 왔는데, 아 - 할 줄 아는 게 밥 하는 거밖에 없었다니까 - 어느 날 교회 권사님이 이 일을 해보라는 거예요. 요리만 하면 된다니까 두말 않고 했지.”

“냄비 세트를 차에 가득 싣고, 오라는 곳은 묻지도 않고, 구석구석 누비며 다녔어요. 일 년에 하루도 안 쉬었다니까...”


그녀의 별명이 악어라고 해서, 외모나 성격이 꽤 억셀 줄 알았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자그마한 체구에 야리야리하고, 말도 조리 있고 재밌게 잘했다. 전라도 사투리가 섞여 판소리 가락 같이 흥겹기도 했다. 모두 똘이 엄마 말에 빨려 들었다.

그런 것보다 그녀의 손님에 대한 헌신은 상상을 초월했다. 고속도로 운전도 못하면서, 어디든 직접 배달했다.
냄비 꼭지가 부러지거나, 불에 그을려 교체가 필요할 때면 어떻게든 해결해 주었다.
자연히 손님이 손님을 소개하는 일이 넘쳐났다.


“맨손으로 시작해서, 이 일 하면서 시골에 집도 사드리고, 두 아이 공부시키고 결혼도 시켰어요.
손님들한테 감사할 뿐이지요.”

그녀는 손님을 늘 같은 마음으로 대했다. 감사와 사랑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성취는 학력도, 스펙도, 지능도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P사뿐 아니라, 한인 영업계에서도 그녀를 능가할 사람이 없었다.




정말 대단한 여자야!

P사 사장은 50대 중반쯤 된 미혼 여성으로, 중학교 때 이민 온 1.5세였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고, 항상 굽 높은 구두에 단정한 정장을 갖춰 입었다. 워낙 세련되고 미모도 출중해, 어지간한 남자들은 감히 다가가지 못할 것 같았다.

그녀는 대학교 1학년 때, 아르바이트로 지금의 냄비 회사를 만났다. 그 해에 사내 영업 실적 1위를 차지했다. 대학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끝내 이 회사를 인수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회사에서 밤을 새우는 일이 다반사였고, 신제품 개발이 있을 때엔 위스콘신 주의 제조사로 직접 날아가 한 달 넘게 기술자들과 숙식하며 개발 전 과정을 함께 했다.

광고 안을 가져가면 보통 5~6번은 수정을 거듭했다. 글씨 크기의 미세한 조정에서부터 레이아웃 배치까지, 마음에 들 때까지 끝없이 고쳤다. 더없이 까다로운 고객이었다. 편집증에 가까운 완벽주의자였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이것이 그녀에게 가장 중요했다.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집중력과 완벽주의. 그녀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나는 영국과 결혼했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회사와 결혼한 여자 같았다.**


P사는 올 LA 한인 축제를 야심 차게 준비했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파격적인 할인 행사를 기획하고, 광고도 대대적으로 집행했다. 실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틀쯤 지나니 분위기는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모두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뭔가 전과 다르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행사를 마치고 짐을 정리하며, 직원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이젠, 정말 전 같지 않아.”

“요새 젊은 애들이 요리를 하나”

“이렇게 비싸고 무거운 걸 누가 써? 싸고 좋은 게 얼마나 많은데, 우리 같은 옛날 사람들이나 쓰지”


어느 날부턴가 베테랑 영업 사원들이 하나둘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정해진 월급이 아니라 오직 판매 커미션으로 산다. 수입이 줄면, 언제든 미련 없이 회사를 떠났다. 문제는, 떠난 사람들이 남아있는 유능한 직원들을 데려가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회사는 눈에 띄게 흔들려 급기야 판매망이 무너졌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일이 아니라 서서히 다가온 거스를 수 없는 변화였다.


P사 사장은 ‘내가 옳아. 내가 제일 잘 알아. 나 아니면 안돼.’ 이 생각으로 가득 찼다. 자기 고집을 꺽지 않았다. 유연함이 사라지니 아집만 남았다. 그녀를 성공으로 이끈 완벽주의가 이제, 쇄락의 길을 트고 길안내를 했다.


똘이 엄마는 끝까지 남아 P사가 다른 회사로 판매권을 넘기는데 중간 역할을 다했다. 옮긴 회사에서도 한동안 P사 냄비 영업을 했다. 그리고 고객에게 끝까지 책임을 다했다.


완벽주의가 유연함이 사라지면, 아집이 되어 고이고 썩는다.

반대로 감사와 만나면, 흘러 나가 향내가 난다.


P사 행사에서 일하고 보수로 받은 냄비 여러 개를 집에 가져왔다.

아내는 가져온 냄비에 그렇게 행복해할 수 없었다.


“이걸로 맛있는 된장찌개 끓여야지~”

콧노래를 부른다. 나도 덩달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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