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 시술을 찾아서
자, 이제 임신을 하기로 결심을 했으니 액션을 취해야 할 때가 왔다. 낯선 일이었다. 보통은 어딘가가 아파서 그 통증을 없애기 위해 병원에 가는데, 임신을 위해 병원에 가는 것은 아프기 위해 병원에 가는 것이니까. 단순히 열심히 부부관계를 하면 될 일은 아니었다. 나는 이미 생리를 안 한지 오래 되었기 때문에 일단 그 문제가 심각했다.
1. 경주 한의원
처음 찾아간 곳은 삼신할배가 의사로 있다는 경주의 한 한의원이었다. 나는 한의학을 좀 믿는 편인데, 우연히 인터넷에서 장항준감독의 임신 썰을 듣게 되었다. 유명하다는 경주 한의원에 가서 한약을 지어왔는데 한약을 지어주며 한의원에서 "중간에 임신을 하게 되면 복용을 중단하시고 환불이 가능합니다"라고 하길래 처음에는 비웃었다는 것이다. 그냥 병원에서 누구나 하는 '좀 있으면 좋아질 거예요'라는 식의 으레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그 한채를 다 먹기 전에 임신을 했다는 이야기였다. 호기심이 생긴 나는 그 병원을 폭풍 검색했다. 진짜로 사람들이 주말 새벽부터 줄을 서는 한의원이었고 성공 후기도 많았다.
전반적으로 몸이 망가져있다고 느꼈던 나는 전반적으로 몸을 바꾸는 한약이 나에게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전화를 할 때마다 임신을 재촉하는 엄마에게도 좋은 방패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을 데리고 바로 돌아오는 토요일 아침에 경주로 향했다. 새벽에 출발해 8시쯤 병원에 도착한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 줄을 섰다. 한두시간이 지나 병원이 문 여는 시간이 되자 번호표를 나눠주었고 언제 병원을 다시 오면 되는지 이야기해줬다. 덕분에 우리는 붕 뜨는 6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했는데, 예상은 했지만 난감한 일이었다. 사실 1박 2일이라도 여행겸 다녀올까 생각했지만 우리는 개를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외박이 쉽지 않았고 경주도 그저 한의원의 목적성만 두고 당일치기를 하기로 했었다. 그래서 우리는 잠이 부족한 상태에서 해장국을 먹고 차에 그저 좀비처럼 있다가 한의원 진료를 보았다.
그 때 의사가 뭐라고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생리가 끊긴지 오래되었다는 소리를 했고 의사는 내 몸이 좋지 않다고 했다. 아침은 먹어야 하고 야채위주로 먹어야 하고 밤에는 일찍 자야 하고 그런 흔하고 뻔하고 현대인이라면 지킬 수 없는 그런 생활수칙들을 권했다. 웃으며 알겠다고 했지만 아마 못 할 거라는 걸 의사도 알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며칠 후 한약 택배가 도착했다. 부담이 되지 않는 가격은 아니었는데, 한 2주 정도 챙겨먹었지만 결국 한 채를 다 챙겨먹지 못하고 한약은 잊혀져 갔다. 사실 맛없는 걸 먹지 못하는 병에 걸린 나와 남편이 한약을 다 먹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2. 집 앞 산부인과
그렇게 한약이 잊혀진지 3개월 정도가 지난 후 다시 각성한 나는 산부인과를 찾았다. 누군가는 좋은 의사를 찾아서 병원을 쇼핑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나는 그냥 내 동선에서 편한 병원을 간다. 그래서 내가 처음 찾아간 병원은 집 근처에 있는 산부인과였다. 요즘은 출산하는 병원도 잘 없다는데, 그 병원은 동네에서 유일하게 집에서 도보권인 산부인과였고 출산도 하고 심지어 산후조리원도 함께 운영하는 나름 큰 병원이었다. 갈 때마다 아이를 앞세운 임산부나 젊은 커플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이 병원에서 임신도 하고 쭉 출산도 하고 산후조리원까지 가는 꿈을 꿨다.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니까 남편이 다니기도 편하겠다는 생각에 산후조리원 가격까지 찾아볼 정도였으니까 나는 꽤 진지했다.
의사는 거진 1년째 생리를 안하고 있다는 나에게 '아주 전형적인 다낭성난소증후군'이라고 이야기했다. 일단 호르몬제를 통해 생리를 유도하고 배란을 유도하자고 이야기했다. 사실 호르몬약을 먹는 건 어렵지 않다. 피임약과 동일하다. 그저 시간 맞춰서 잘 먹으면 그만인데, 뭔가 양약이라면 외과적인 시술로 한번에 조치를 팍! 해버리고 끝내고 싶은 마음인데 일단 한 3주 정도 약을 먹어서 생리를 하고 그 다음 또 2주를 기다려 배란을 잡는 다는 것이 나에게는 조금 성질에 안 맞는 프로세스였다.
어쨋거나 평범한 사람이 나는 나의 자궁과 독대를 할 수 없으니 그저 성실하게 약을 먹고 한달을 기다려 생리를 했다. 그리고 남은 것은 배란유도. 처음에 병원에서 주사를 몇 대 맞고 3일 쯤 후에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초음파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혀 반응이 없네요...?"
다른 다낭성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의 난자들은 아주 강인한 분들이셔서 호르몬을 일반적인 양으로 투여해도 꿈쩍을 않고 있었다.
내가 이해한 바를 간략화해서 설명하자면 이렇다. 난자 하나가 성숙해서 배란되기 위해서는 혼자 호르몬을 90이상 먹어야 하는데, 주사로 호르몬을 100 넣어주면 줄줄이 달린 난자들이 호르몬을 10씩 나눠 먹고 모두 성숙하지 않는 형국인 것이다. 의사는 호르몬을 500 넣어주면서 이러면 성숙한 난자 5개가 나오겠지 했지만, 실상은 호르몬을 50 먹은 미성숙 난자만 10개가 줄줄이 있는 실정이랄까...
의사는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매일 와서 호르몬 주사를 맞으라고 했고 그렇게 일주일 정도 매일 호르몬 주사를 맞았지만 끝까지 내 난자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리가 끝나고 배란을 안 한지 3주가 지나가고 있었고 의사는 이 사태를 끝내기 위한 방법을 이야기했다.
"배란이 너무 안 되는 거 같은데, 그냥 이번엔 생리 유도해서 생리 한 번 더 하고 다시 배란 유도 합시다."
9 to 6로 일하는 직장인으로서 매일 병원에 다닌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특히 나는 직장에서 집이 편도 40분 정도 걸렸고 그나마 겨울에는 퇴근이 좀 앞당겨져서 6시 전에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라, 다시 한 두달이 걸릴 싸이클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좀 막막했었다. 겨울이 끝나고 나면 나는 휴가를 쓰지 않는 한 6시 이전에 병원에 도착할 수 없었는데, 이미 날짜는 2월 말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다시 그 병원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3. 임신한 토박이 친구가 찾은 산부인과
그렇게 나의 첫번째 산부인과가 폭망한 이후 나는 좀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었다. 뭔가 그 의사가 무능력한 것인지, 나의 몸이 쓰레기인 것인지 쉽게 판단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강아지 덕분에 절친으로 지내던 친구의 임신 소식을 들었다. 임신한 친구 커플은 우리 부부와 가장 많이 어울리는 사람들이었는데, 강아지들끼리도 절친이었고 둘 다 이 지역출신이 아닌 우리 부부에게는 유일하게 지역에서 편하게 어울릴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친구 커플 중 여자는 이 지역의 토박이여서 지역과 관련된 여러가지를 알려주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친구가 다니는 산부인과라면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친구에게 그녀가 정착한 산부인과를 물었다.
"음... 00산부인과가 유명하긴 한데, 거기는 좀 돈을 너무 밝힌다는 얘기가 많아서 저는 **산부인과로 다니려고 해요."
그녀가 말한 산부인과는 큰 규모긴 했지만 그녀와 내가 사는 곳에서는 조금 거리가 있는 편이었다. 굳이 그렇게 멀리까지 다닐만한 산부인과라니 나는 혼자 병원에 대한 기대를 더 키웠다. 그리고 혼자 그 산부인과를 예약했다.
산부인과를 찾아 나의 문제를 얘기하자 의사는 너무나 평이하게 말했다.
"제가 보기엔 그냥 살만 빼면 자연스럽게 다 될 거 같은데요?"
별다른 고민도 없이 의사가 내뱉은 말에 나는 뭐라고 더 할 말이 없었다. 물론 내가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 심해진 것은 결혼을 앞두고 남편과 연애를 하면서 살이 급격하게 찌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남편과 연애를 하면서 거진 15키로가 쪘는데, 사실 나는 계속 20키로 정도를 왔다 갔다 하던 사람이라서 살 찐 것을 크게 문제라고 의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힘들게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여전히 제일 예쁘다고 말하는 남편이 있어 든든했다.
물론 임신에 살 찐 것이 좋지는 않겠지만 살을 빼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몇번이나 살을 뺐다가 쪘다를 반복한 나에게는 다이어트에 굉장한 염증과 현타를 느끼기도 했다. 다이어트를 할 때면 너무나 힘들었고 살을 빼고 예뻐진 내 모습과 변한 사람들의 태도에 자괴감을 느낀 경우가 더 많았다. 오버스러운 감상이겠지만 살이 찐 나를 혐오해야 하는 것이 나에게는 더 괴로웠다. 그래서 더 다이어트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살 찐 나를 편안하게 받아주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었다.
의사는 마지막 말이 나를 더 찔렀다.
"이 상태로 임신하면, 100키로 훌쩍 넘게 될 텐데 괜찮겠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 뿐이었다.
"아, 네. 알겠습니다."
4. 남편 회사 신시가지의 커다란 신식 산부인과
다낭성 난소 증후군에 1년 새에 급격하게 찐 살 그리고 끊긴 생리. 이 모든게 다이어트로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은 없었지만 세 문제가 악순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그 중 내가 나의 노력으로 해결 할 수 있는 건 살 밖에 없기는 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6개월 정도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정말로 10키로 정도 살이 빠지니 생리가 돌아오는 것 처럼 보였다. 그렇게 두 번째 생리혈을 보았을 때, 나는 다시 병원을 찾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에게 살을 빼라고 권했던 산부인과를 다시 가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거긴 나의 동선에서 너무 멀었다.
내가 새로 방문한 산부인과는 남편 회사 근처 신시가지에 있는 큰 건물의 2~3개 층을 차지한 산부인과였다. 일단 표면상으로 '여성병원'이라고 되어 있었고 당연히 산부인과라고 생각했다. 또 전화로 예약을 하고 병원을 방문해 상담을 받았다. 다른 산부인과들에 비해 임산부나 아이를 대동한 사람이 좀 적다는 느낌이기는 했는데, 그래도 인테리어를 비롯한 모든 게 새 거로 보여서 기분이 좋았다.
임신을 하고 싶어서 왔다는 내 말에 의사는 시큰둥해 보였다. 나는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 있고 생리가 끊긴지 오래되었다고 이야기했다. 굳이 다이어트를 했고 생리가 돌아왔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살이야 언제든지 또 찔 수 있고 생리도 금방 끊길 수 도 있는 일이었다.
"일단 전형적인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신데요, 호르몬 치료를 좀 해보죠."
그 정도의 말을 하고 의사는 다시 컴퓨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결국 모든 병원의 의사가 똑같은 얘기만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좀 더 직접적인 이야기를 했다.
"근데, 그... 뭐... 시험관이라든가 그런 걸 하면 어떨 까요? 제가 그런 것도 생각하고 있긴 한데..."
"네, 뭐. 그것도 할 수 있기는 한데 일단 다낭성이 심하시고 하니까 호르몬 치료를 하는 게 좋을 것 같고... 시험관 같은 건 하고 싶으면 다른 병원에서 하셔도 되요."
의사의 그 심드렁한 대답에 내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촤라락 떠올랐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시험관을 할 만큼이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서 아무도 나에게 인공수정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라는 착각을 해 왔던 것이다. 병원의 규모에 따라서 시술의 수준이나 진료의 수준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간과해왔던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다닌 병원들에서 한 번도 나에게 시험관 인공수정을 권하지 않았던 것은 그저, 그 병원들에서 해당 시술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은 나는 그저 허탈해 할 수 밖에 없었다.
원래 머리가 멍청하면 몸이 고생하는 법...
내 이런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우리가 사는 지역에 시험관 시술을 하는 산부인과는 딱 두개 뿐이라고 검색결과를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