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에서 마시는 홍차는 유난히도 뜨겁다. 연중 내내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는 열대 나라에서, 사람들은 오로지 뜨거운 차만 마신다. 스리랑카의 옛 국호는 실론(Ceylon)이고, 그 이름을 딴 실론티는 스리랑카에서 생산된 홍차를 뜻한다. 명불허전 실론티의 나라답게 이곳에는 하루 네 번의 티타임이 있다. 눈 뜨자마자 한 번, 점심 전에 한 번, 오후 휴식 시간에 한 번, 자기 전에 한 번. 이열치열이라는 말이 딱 맞는다. 스리랑카 사람들에게 차는 곧 삶이고, 나 역시 차를 마시며 일상을 나누는 삶에 익숙해졌다.
스리랑카 우바(Uva) 지역에서 생산하는 홍차는 중국의 기문, 인도의 다즐링과 함께 세계 3대 홍차로 손꼽힐 만큼 명성이 높다. 스리랑카 내륙 산간은 눈을 돌리는 곳마다 차나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방팔방이 찻잎으로 덮여있다. 그러나 차밭의 싱그러운 초록빛은 식민 지배가 남긴 상흔이기도 하다. 영국은 1796년부터 1948년까지 스리랑카를 지배했는데, 자국민의 홍차 소비를 위해 스리랑카 고산지대에 차나무를 심었고, 인도 타밀족을 스리랑카로 강제 이주시켜 차 생산 노역에 동원했다. 1948년 스리랑카는 독립했지만, 돌아갈 곳을 잃은 타밀족은 정부가 제공한 판자촌에서 생활하며 찻잎 따는 일을 이어가고 있다.
차는 세상에서 가장 수직적인 음료가 아닐까. SFTGFOP, FTGFOP, FOP, OP, Pekoe, Fanning 등 홍차는 잎의 형태에 따라 수많은 등급으로 나뉜다. 그 등급에 따라 차를 마시는 사람들의 계층이 나뉘기라도 하는지, 이름도 어려운 최상급 홍차는 부자 나라에서 즐기고, 해외로 팔려나갈 수 없는 더스트(Dust) 등급의 홍차는 스리랑카 사람들이 삼킨다. 더스트는 먼지처럼 미세한 모양이며 향은 단조롭고 맛은 거칠다. 어째서 이 섬에서 자란 정교하고 섬세한 차는 외국인이 누리고, 내국인이 마시는 차는 먼지 취급을 받는 걸까. 식민 지배는 차의 모양으로 형태를 바꾼 채 계속되고 있었고, 찻잔에는 인도양의 눈물이 우러나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물 다음으로 많이 마시는 음료는 차(茶)라고 알려져 있다. 차를 준비하고 마시는 과정은 마치 선(禪)과 같아 우리의 마음과 행동에 깊은 영향을 준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마시는 차의 거래가 조금이라도 공정해진다면 세상도 한결 공평하게 흘러가지 않을까. 그런 믿음으로 모든 거래에 책임을 다하는 공정무역 활동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현지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차를 생산하고 싶었다. 정의로운 차로 사람들의 내면에 변화를 일으키겠다며 패기만만하게 공정무역 모임을 만들었고, 차를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차를 통한 세상의 변화를 꿈꿨다.
홍차의 꿈을 안고 스리랑카에 돌아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차를 우려 마셨다. 플라스틱 통에 뜨거운 물을 부었고, 차 때가 가득 낀 스트레이너로 찻잎을 걸러냈고, 이가 나간 낡은 찻잔에 차를 내렸다. 플라스틱에 뜨겁게 우려낸 차에서는 불쾌한 고무 냄새가 나기도 했다. 더스트 홍차답게 찻물 위에는 찻잎 가루가 둥둥 떠올랐다. 설탕을 세 스푼이나 넣었지만 쓴맛을 감출 순 없었고 입안에는 텁텁함이 남았다. 차로 가난을 표현한다면 이런 맛이 나지 않을까. 자신들이 마시는 홍차가 다른 나라에서는 먼지로 불린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한평생 더스트 홍차를 마셔야 하는 그들에게 연민이 올라왔다.
세계가 착취하는 것이 어디 찻잎뿐이랴. 무역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존엄을 착취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공정무역으로 스리랑카를 돕겠다는 다짐만 수년째 하고 있다. 이제 이 섬을 위해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야 할 때가 됐다. 사업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홍차 연구원을 만나고, 홍차 판매원을 만나고, 스리랑카 티 보드(Sri Lanka Tea Board)라 불리는 정부기관의 관계자를 만났다. 그런데 그들은 공정무역에 회의적이었다. 정부에서 타밀족 지원사업을 하고 있으며, 사회적 차별도 크지 않다고 답변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주지 않았다. 그들은 이 섬의 지배층인 싱할라족 엘리트였다. 가장 중요한 존재, 타밀족 여성들을 만나지 못했다.
차를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스리랑카에서 처음 홍차가 재배되었다는 캔디 구석의 차 산지에서 찻잎을 따는 타밀 여성들을 드디어 만났다. 그들의 손끝은 찻물에 까맣게 물들어 있었지만, 눈동자는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루 일당 1,000루피(한화 약 5,000원) 정도 벌지만,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는 아낙네들이었다. 가족 모두가 차밭에서 찻잎을 딴다고 했다. 자녀에게도 고된 노동이 대물림될 것을 알지만,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일할 수 있음에 기뻐하는 사람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지만, 그 하루라도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는 사람들. 누가 감히 그 삶을 가난하다고 정의할 것인가. 그들은 강인하고 능동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만든 각본 속에서 이들은 불행한 역할을 맡아야 했다. 내가 하려는 일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나도 모르게 공정무역의 가치보다는 불공정한 현실을 더 부각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노동이 힘들다고 말하는 그들의 얼굴은 요즘의 내 얼굴보다 행복해 보였다. 이 섬에서 가장 가난한 건 나였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한 채 더 많은 것을 손에 쥐기 위해 애쓰고 있었고, 사람들의 가난을 회피하면서도 그 위에 정의를 세우려고 했다. 나는 이 섬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을 오해하고 동정하며 살아왔을까. 스리랑카에서 나무만 보고 뿌리를 짐작했고, 파도만 보고 바다의 깊이를 가늠했다. 정작 그 안에 흐르는 정기는 알아보지 못했다.
품질이 낮은 등급의 홍차를 마신다고 해서 그들의 삶마저 열등한 취급을 받아선 안 된다. 나는 스리랑카어를 조금 아는 한국인, 차를 공부하는 지식인이라는 오만감에 사로잡혀 당연히 그들에게 내 도움이 필요하리라 착각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애프터눈티 세트의 화려한 디저트와 도자기 브랜드를 따지며 차의 미를 추구할 때, 한 잔의 차에 담긴 삶의 무게를 생각하는 나는 남들보다 인간적이라는 도덕적 우월감에 젖어 있었다. 현장에서 사람들의 눈을 마주하고 나서야 진정 공정해야 할 것은 무역이 아닌 마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찻잎을 따는 여성들의 품에 안겨 나의 빈곤한 마음을 참회하고 싶었다. 그들과 연대하기 전에 섣불리 연민부터 하고 있던 폭력적인 동정심을 용서받고 싶었다.
차 산업이 불평등한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타인의 삶을 함부로 재단할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는다. 다른 이들에게 공정무역을 설득하기에 앞서 나부터 공정한 정신을 배워야 한다. 도움을 주려고 하기 전에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머물러야 한다. 사람을 보는 관점부터 달라져야 한다. 이제는 오만이 아닌 겸손으로, 동정이 아닌 존중으로, 이 섬과 함께하고 싶다. 이 땅에 발을 디디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사람들 곁에 나란히 서는 것까지. 그렇게 스리랑카를 한 잔의 차처럼 천천히 우려내며 따뜻하게 사랑하고 싶다.
내 멋대로 세상을 판단하고 바꾸려던 욕심을 비우고 시내로 돌아왔다. 홍차 전문점에 들어가 홍차 한 잔을 주문했다. 예쁜 사리를 입은 싱할라족 여성이 건넨 차에서 그동안 친구들 집에서 맛볼 수 없던 섬세한 풍미를 느꼈다. 오랜만에 마시는 부드러운 차였다. 그런데 친구들이 건넸던 촌스러운 찻잔과 쓰디쓴 홍차 맛이 사무치게 그리운 건 무슨 연유일까. 내 마음에 스며든 차. 함께한 시간이 우려진 차. 숭고한 땀방울이 담긴 차. 그 차에는 고단하지만 그럼에도 따뜻한 삶의 여정이 있었다.
그건 가난한 홍차가 아니었다.
그건 고귀한 홍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