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망대해에서 살아남는 법
나는 앙리 마티스의 '폴리네시아 하늘, 폴리네시아 바다'라는 작품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유난히 추웠던 어느 겨울, 서울시립미술관이었다. 색을 최소한으로 사용하면서 선과 면이 심플한, 제법 크기가 컸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그렇다 할 기교나 엄청난 기법이 도드라지는 작품은 아니었는데도 태평양 어느 바닷가 앞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착시까지 느껴졌다. 내가 눈으로 기억하는 가장 선명한 작품인 듯하다.
마티스는 전쟁과 불안의 시대에도 위로와 안식, 평온을 그리던 화가였다. 이 작품 앞에 오래 머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가 노년에 병으로 더 이상 붓을 들 수 없게 되었을 때 색종이를 가위로 오려 붙이는 방식으로 만든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그릴 수 없었을 때조차 붓이 아닌 가위로, 캔버스가 아닌 종이로 새로움을 창작해 냈던 것이다. 그 네모난 우주 속에는 포기하지 않는 열의와 조용한 집념이 고스란히 숨 쉬고 있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언젠가 나 역시 다른 감각으로 세계를 다시 배우게 되리라는 것을.
내가 다시 교단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간들이 있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천직으로 여겼던 나였다. 눈으로 보는 세계의 아이들은 환하고 또렸했다. 다만 시력이 사라진 세계에서는 생각보다 깊은 도전과 물음들이 밀려왔다가 다시 밀려 나가기 일쑤였다. 인생의 정답 없는 물음은 하얀 포말을 만들어 냈다. 손에 닿으면 사라지는 하얀 거품들은 망망대해에 나를 홀로 세워 두는 듯 잡히지 않았다.
휴직 후 재활의 시간을 시작하며 나와 남편의 목표는 사실 단 한 가지였다. 학교로 다시 돌아가는 것, 원래 있던 자리에 다시 서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때 남편은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아내는 반드시 교단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산다.'
교단 앞에서 가장 빛났던 내 모습을 기억하는 남편은 그 후 빛을 찾아가는 여정의 동반자가 되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학교가 아니라 중도 시각장애인들을 재활하는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반면 나는 자주 흔들렸다. 어느 날 아침,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그냥 울었다. 내 삶이 무너진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그런 날들이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말없이 나를 일으켜 배움의 자리에 앉혀 놓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끝이 있는 길인지 묻고 싶었다. 이 터널 속에서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는 대답 대신 그 시간을 오롯이 내 곁에서 함께 걸었다. 나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 시절 나는 내가 있던 자리로 다시 돌아가는 상상을 하곤 했다. 미래에 만나게 될 아이들을 머릿속에 자주 떠올렸다. 학교로 돌아가게 된다면,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은 아니겠지만 다시 시작할 그런 기회가 내게 허락된다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이들과 학부모님들께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매일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재활의 시간이 깊어지던 어느 날 함께 점자 공부를 하던 동기가 이런 물음을 내게 던졌다.
“장애학생들을 가르치시던 분이 본인이 중증 장애인이 되셨네요?”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앞으로는 아이들과 부모님들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게 될 것 같아요.”
계절은 생각보다 부지런하게 나를 앞으로 밀고 갔다. 소리로 읽고 쓰는 문서 작업들이 익숙해져 가고, 보이지 않는 세계의 하루가 점점 쌓여 갔다. 4번의 계절을 두 해 보내고 나는 복직할 수 있었다.
마티스는 노년에 휠체어 위에서 붓 대신 가위를 들었다. 더 이상 선을 긋기 어려워졌을 때, 그는 색을 잘라 하늘과 바다를 만들었다. 나는 자음과 모음을 눈으로 읽지 않는다. 문장을 확인하고 고치는 일도, 활자의 배열을 한눈에 살피는 일도 더 이상 눈으로는 할 수 없다.
다만 나는 문장의 온도와 질감을 귀로 담는다. 문장이 걸어가는 방향을 따라 들리는 길이와 무게, 숨이 문장 사이에 머무는 순간으로 글을 쓰고 읽는다. 더 이상 눈이 아닌 귀로 여백을 채워 나갔던 것은 어쩔 수 없는 포기의 흔적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의 선택이자 생존이었다.
나는 새로운 선택의 옷을 입고 걷는다. 결코 무해할 수 없었던 계절을 지나온 문장들은 가지런히 자기 자리를 잡아 바다 같은 백지 위에 잔잔한 물결을 만든다. 나는 가장 나다움을 찾아가는 조용한 항해 중이다.
나의 고요한 항해의 목적은 항구에 빠르게 닿는 일이 아니다. 이 배에 승선한 이들과 느리더라도 함께 완성해 가는 여정 그 자체가 한 폭의 작품이 된다는 것을 나는 안다. 두려움을 안고도 조금씩 나아가 본 길이 새로운 물결이 되고 가보지 않은 항로가 된다는 것을 망망대해 위에서 배웠다. 오늘도 나는 아이들과 같은 배에 오른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파란 하늘로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