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가 지키는 밤
겨울날 내 하루는 검은 바다 위 희미한 등대 불빛에서부터 시작된다.
새벽 5시 반에는 일어나야 학교에 늦지 않았다. 묻지 못할 어른들의 속사정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할아버지, 할머니와 청소년기를 보낸 곳은 바다가 참 예쁜 어촌 마을이었다.
작은 도시와 연결된 다리가 있었지만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한 번에 가는 버스를 타면 40분, 그마저도 첫 버스를 놓쳐 두 번을 갈아타야 하면 1시간은 넘게 걸렸다. 종점이자 출발지였던 우리 동네에서 버스를 타면 가장 안쪽 구석자리가 내 차지가 되었다.
3년간 긴 통학 시간을 견디고 새벽에 버스를 타는 일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왜냐하면 졸린 눈을 비벼 가며 버스에 앉아 워크맨 이어폰을 끼면 거기가 음악회이자 콘서트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승환, 전람회, 신승훈, 조성모 같은 소녀의 소년들로 긴 통학 시간이 무료하지 않았다.
다른 계절은 그럭저럭 견딜 만했지만 늘 겨울이 문제였다. 기름보일러를 마음껏 틀지 못했던 할머니 집에서는 새벽은 늘 얼음장 같던 차가운 겨울을 밟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동트기 전 시커먼 어둠을 뚫고 집에서 나와 쨍한 바닷바람을 맞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새벽녘 첫 차를 기다리는 소녀는 하얀 입김을 불어대며 다리를 동동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동트기 전 어둠은 영원할 것 같고, 끝 모를 냉기를 선사하는 듯하지만, 이내 동이 트고 말간 해가 떠오르면 그보다 어여쁠 수가 없었다. 동틀 무렵 그 언저리에서 어둠을 견디는 일은 소녀에게 그래도 아침을 기다리는 일이니 괜찮다고 여겼다.
다만 시커먼 새벽의 한기보다 마음에 휑한 소리를 내는 시간은 따로 있었다. 가장 시끌벅적하지만 마음은 가장 고요했던 점심시간이다.
급식실이 없었던 우리 학교는 무조건 개인 도시락을 싸 와야만 했다. 그 시절 할머니는 단 한 번도 내 도시락 싸기를 거르지 않으셨다. 참 감사했지만 사실 나는 점심시간이 오는 일이 그리 반갑지 않았다.
도시락 뚜껑을 여는 일은 마치 우리 집 사정을 세상에 펼쳐 보이는 일 같았다. 친구들의 도시락에는 바삭한 돈가스, 계란옷 입은 소시지, 치킨 너겟 등 신식 반찬들이 정갈하고도 뽀도독하게 담겨 있었다.
어느 겨울 점심시간, 앞자리에 앉던 서진이가 도시락을 열었던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늘 중간 자리를 차지하던 친구의 반찬 통에는 소고기 장조림과 비엔나 소시지가 문어 모양으로 반질반질한 윤기를 뽐내며 가지런히 앉아 있었다. 거기에 손 편지가 함께 들어 있었다. 맛있게 먹고 힘내라는 이런 류의 따뜻한 멘트였을 것이다.
반면 내 도시락에는 멸치, 김치, 시금치, 콩자반, 어쩌다 계란프라이가 담기곤 했다. 나는 채식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얼핏 보면 채식주의자의 도시락인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할머니의 정성은 가득했지만 자꾸만 도시락 뚜껑을 열면 그 속에서 상실과 빈틈이 드러나는 것 같아 어쩐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마음이 쪼그라들기도 했다.
친구들과 밥을 먹으면 내 반찬통 속 반찬만 마지막까지 늘 남곤 했다. 그 시절 도시락 반찬에서만큼은 가릴 수 없는 현실이 분명 존재했다.
서진이가 엄마의 손 편지를 읽고 새초롬하게 밥을 먹던 그날, 하교 후 나는 처음으로 할머니에게 반찬 투정을 했다.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신식 반찬을 좀 해 달라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철이 없었다. 철 모르던 사춘기 시절이니 철부지 같은 투정은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당연한 것은 없는데 말이다.
철부지 같은 투정 끝에 할머니가 큰마음먹고 신식 반찬을 해 주셨던 어느 겨울이 생각난다. 그날만큼은 점심시간을 몹시도 간절하게 기다리고 기다렸다. 기다리는 날은 유독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그날은 자신 있게 도시락 뚜껑을 열 수 있을 것 같았다.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반찬통을 평소보다 조금 더 중간으로 밀어 두었다. 뚜껑을 여는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그런데 도시락을 여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빨간 케첩 이불을 덮고 있는 꼬마 돈가스 색깔이 모두 흰색이었다. 동글동글하고 하얀 눈뭉치들 같기도 했고, 얼핏 보면 흰 조약돌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하얀 겨울 낮, 내 얼굴만 케첩 색으로 빨개졌다.
자세한 조리 방법을 모르셨던 할머니는 돈가스가 익혀진 상태로 판매되는 줄 알고 설익은 그대로 담아 주신 것이다. 손녀의 투정에 먼 읍내까지 나가 시장을 보고 나름 정성을 담아 도시락을 싸 주셨지만, 역시나 그 안에는 할머니의 서툰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땐 몰랐다. 그 하얀 돈가스보다 더 하얗게 나를 지켜내던 마음이 시커먼 어둠을 몰아내고 매일 새벽 도시락 칸마다 들어 있었다는 것을.
나는 겨울이 오면, 눈송이가 쌓이는 날에는 그 시절 하얀 눈뭉치 같던 꼬마 돈가스가 생각이 난다. 손녀의 학창 시절을 든든하게 지켜 주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은 마치 어두운 밤을 밝히는 밝은 등대 불빛 같았다. 달도 별도 잠든 동트기 전 칠흑 같던 어둠 속에서도 하얀 등대 같은 불빛 덕분에 길을 잃지 않았다.
존재를 내어 주는 사랑은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마음속 울림으로 남아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반찬들, 오늘은 할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고소한 나물과 된장찌개가 먹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