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과 확신 사이
당신은 어떤 길을 만날 때 주저하는가?
누구에게나 지나가기 꺼려지고 걸어가기 망설여지는 길이 있다. 이를테면 고층 건물의 유리 바닥, 바다가 훤히 보이는 출렁다리, 터널이나 방음이 없는 고가도로, 난간 없는 외길. 당신은 어떤 길 앞에서 주저해 본 일이 있는가?
나는 남편의 손을 잡고 참 많은 길을 다녔다. 울퉁불퉁한 자갈밭길, 가파른 내리막길, 숨이 턱까지 차올랐던 산행길, 질퍽거리는 흙탕길까지.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꺼려하는 길이 있다. 바로 징검다리길이다. 양쪽으로 굽이치는 강물 소리가 그때만큼 위협적으로 들리는 순간이 또 없는 것 같다. 한 발만 잘못 미끌려도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위협. 그 두려움은 그 길 앞에서 이미 공포가 된다.
공백과 공백을 잇는 각기 다른 높이와 넓이의 디딤석. 어느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다음 발이 닿을 자리를 눈으로 정확히 확인할 수 없을 때, 불확실성은 단숨에 몸을 움츠려 들게 한다. 징검다리는 나에게 가장 까다로운 방식으로 삶을 건너게 하는 길이다.
햇살이 적당한 오후, 그날도 남편과 무심코 길을 나섰다. 생각지도 못한 강가를 만났다. 심지어 징검다리라니. 늘 그랬듯 예고 없이 불확실성은 찾아온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은 곱게 빗은 머리카락을 한순간에 헝클고 지나간다. 허공을 잠시 쏘아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양쪽으로 흐르는 강물 소리가 더 이상 노랫소리가 되지 못하는 순간이다.
눈꺼풀이 있는 눈은 감아 버리면 그만인데, 듣고 싶지 않은 소리 앞에선 귀꺼풀은 왜 안 만드셨는지 이 날만큼은 창조주가 야속하다.
“여기 말고 다른 길 없어?”
“이 길이 가장 빠른 길이야. 생각보다는 안전해.”
“거짓말!!”
역시나 늘 그랬듯 의심이 한 발 앞선다. 안전한 길 위에서 정지와 균열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더 그렇다. 한 번 내디디면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그 시작 앞에서 항상 망설인다. 나는 멈출 수도,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는 이 길이 가장 곤혹스럽다.
묵묵한 남편은 내 불평불만에 아랑곳없이 뚜벅뚜벅 걷는다. 분명 더 안전한 길이 있을 것만 같은 의심은 마음에 확신처럼 굳어진다. 남편이 한 발 디딤석을 딛고 선다.
“한 발 앞으로 조금 뻗어 봐. 응, 조금 더 높이. 그보다는 오른쪽.”
채념한 나는 결국 한 발 내디딘다. 여전히 양쪽 귀를 기만하듯 물살은 세차다. 찌푸린 미간이 펴질 줄 모른다. 괜히 여기까지 왔다는 마음이 일렁이고 후회가 자욱한 연기처럼 퍼진다.
바로 그때, 어쩐지 내 손을 잡고 있는 남편의 손에 평소보다 힘이 더 들어간다. 결코 놓지 않으려는 듯 촘촘하고 단단하다. 그 이음새 앞에서 공백과 여백은 잠시 맥을 잃는다.
조심조심 한 발 한 발 내디뎌 본다. 가다 뭠춰 숨을 고른다. 이내 또 두려운 한 발을 내민다. 기만하듯 불어대던 바람도 잠시 멈춘다. 우리는 어디쯤 건너왔을까?
징검다리를 건너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과 내일이라는 디딤석도 역시 이런 식의 건너기가 아닐까? 차마 뒤돌아갈 수는 없어서 저마다 굽이치는 두려움을 안고서 살다 보니 살아지는 시간.
사실 우리는 내일이 반드시 올 것처럼 오늘을 산다. 저녁에 남은 반찬을 내일도 먹기 위해 냉장고에 보관하고, 요거트의 유통기한이 하루 더 남은 걸 확인하고는 안심한다. 재활용 상자의 박스들이 눈에 밟혀도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로 미루기로 한다. 당연함 속에서 눈꺼풀을 스르르 내리고 새 아침의 안녕을 약속한다. 그 누구도 내일을 장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확실을 딛고서도 묵묵히 가는 길이 우리가 걷는 길 아닌가?
나는 오늘도 두려움을 안고 이 길을 걷는다. 어차피 균열이 없는 어른이 없듯 흔들림 없는 하루는 없다고 여기며 내 앞에 주어진 공백과 틈새를 피하지 않기로 한다. 그의 손을 잡고 조금은 더 단단해질 걸음으로 한 발을 딛는다.
어느덧 마지막 디딤석 위에 섰다. 끝내 한 발이 안전한 평지에 착지한다. 그러면 늘 어김없이 나오는 말.
“정말 그렇네.
생각보다 무사히 건넜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