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과 혼란.
우리 집에는 내게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물건이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펼쳐 들며 나의 존재를 확인하던 것. 바로 거울이다. 더 이상 내게 필요 없는 물건으로 분류되던 그날부터 거울 앞에서 나는 정면을 응시하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 내게 이렇게 물었다.
“시력을 잃은 후 가장 힘들었던 것이 뭐였나요?”
솔직히 딱 한 가지만 고르기는 무척 어려웠다. 눈앞의 풍경에 더 이상 빠져들 수 없다는 사실, 사랑하는 얼굴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상실, 매일을 세밀하게 탐색하는 걸음이 예전 같지 않다는 답답함. 그 모든 것이 괴로웠지만, 무엇보다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따로 있었다.
늘 그곳에 달려있지만 더 이상 용도가 희미해진 우리 집 내 거울처럼. 내 쓰임을 모두 잃어버릴 것 같은 존재적 상실은 생각보다 깊고도 넓었다. 그저 차가운 표면만 내게 닿는 전부인 듯 나도 내 삶 속에서 있으나마나한 그런 존재로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살아오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란 내겐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었다. 차라리 내가 돕고, 나누고, 더 번거로워지는 편을 택하는 게 오히려 쉬웠다. 누군가의 도움과 지원이 필요한 삶으로의 초대 앞에, 도움 받아야만 살아지는 나날들 앞에서 그저 깊은 한숨만 뱉어내는 날들이 이어졌다.
쓸모를 잃은 계절이 우리 가정을 훑고 지나갔다. 우리의 마음은 처음 맞이하는 겨울 추위처럼 낯설었고, 황량한 내면은 어디로 발을 디뎌야 할지 알 수 없는 광야의 밤을 닮아 있었다.
시력을 잃으며 내 몫의 자리는 자연스럽게 뒤편으로 밀려나는 것 같았다. 할 수 없는 것과 해낼 수 있는 것을 구분해야 했으며, 할 수 있는 방법을 반드시 찾아야만 삶이라는 게 지속 가능하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존재를 힘껏 증명해 내야만 내가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우리를 중심부로 이끌던 용도와 쓸모는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우리는 그 후로 늘 가장 뒷자리가 우리 자리라고 여기고 앉았다. 서서히 주변부로 밀어내던 그 힘은 구석진 자리가 너희에게 가장 어울리는 자리라고 조용히 속삭였다.
그렇게 표류하고 떠다니던 어느 날. 우연히 지금의 공동체를 만났다. 아무도 우리에게 전에는 어떤 역할을 감당해 왔었는지, 이력과 경력을 묻지 않았다. 용도와 기능의 목록을 이야기하는 대신 환대와 온기로 서로의 시간을 채워 나갔다.
우리를 만나러 오는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것 중 가장 환한 것으로 우리 마음을 밝히고 갔다. 함께하는 시간 동안 사소한 것에도 함께 웃고, 울며 마음을 나누곤 했다. 어쩐지 슬픔을 씻어내는 계절이 우리에게도 허락되는 듯했다.
환대에도 품이 든다. 오십 리를 같이 가자는 이와 백 리를 함께 걷는 데는 큰 수고로움이 따른다. 그럼에도 곁을 내어준 온기는 보이지 않는 길을 보지 않고도 가게 하는 힘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보이는 길처럼 가게 하는 이유를 알게 했다.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도 보는 것처럼 걷게 이끌었다.
얼마 전까지 공동체는 기관별로 돌아가며 교회 청소를 했었는데 매번 청소에 참여하지 못했던 나는 미안한 마음이 늘 불편한 가시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커피값을 보내기도 하고 나름의 방법을 찾았지만 석연치 않았다.
어느 날은 공동체에 기여할 수 없어서 마음이 불편하다고 친한 언니에게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언니는 웃으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미안한데, 우리는 아무도 너한테 기대하는 것이 없어.”
그 말은 내 안에 낡고 남루한 기준을 조용히 무너뜨렸다.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조건과 기준 안에서 결과만으로 바라보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그저 존재로 만나고 싶다는 편지며, 있는 모습 그대로 용납하고 받아들이겠다는 의지이자 노력이다.
얼마 전 누군가 내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의 당당함과 긍정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나는 큰 실패 없이 원하던 바를 이루며 살았던 지난날의 배경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노력과 쓸모의 증명이 반질반질하게 닦아 주던 반짝이던 그 길에서 원인을 찾았다. 타고난 긍정적인 성격 때문일까 생각했다. 그러나 모두 아니었다.
사람의 긍정과 낙천적 성격에는 한계가 있다. 결정적인 순간, 연약한 밑바닥을 드러내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진실이 아닌가? 그러니 타고난 기질만으로 설명해 낼 수 없는 일이 분명 있다.
무쓸모의 시절에 받았던 사랑, 가장 궁핍한 마음, 빈손으로 찾아간 곳에서 만난 환대와 사랑이 나를 움직이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역설적으로 자격을 온전히 잃어버린 시절에 받았던 포용과 환대는 우리가 가장 깊이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더 선명하게 드러냈다.
모든 쓸모가 바닥을 드러내던 자리, 더 이상 힘을 뺄 힘조차 없던 시절, 더 이상 우리의 가치를 증명해 낼 수 없을 때 비로소 우리의 존재가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그 말이 충만하게 닿았다.
빈 손으로 서 있던 계절에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었던 시간. 존재로 다가온 온기와 사랑은 상상을 뛰어넘는 힘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가장 무력한 시절을 지나 여러 번의 계절을 보내는 지금, 우리도 이제 제법 단단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거울 앞에 앉는다. 늘 성실히 내 곁에 있어 준 그 거울 앞에서 오늘 만나야 할 소년과 소녀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보이지 않아도, 당장의 쓸모를 알 수 없어도, 그저 거기 있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한 존재들이 있다.
차가운 거울 표면을 살며시 쓰다듬어 본다. 거울 표면이 내 손끝에서 천천히 온기를 얻는다. 필시 그 안에 비친 나도 볼 한쪽에 우물을 깊이 만들며 웃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게 나는 또 다른 누군가의 하루를 비출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