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엑스 마키나》(알렉스 가랜드)
* 이 글에는 영화 《엑스 마키나》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엑스 마키나》*에서 천재 프로그래머이자 과학자 그리고 사업가인 네이든은 인공지능 로봇 에이바를 만들었다. 그는 직원인 칼렙에게 일주일 동안 에이바를 테스트하여, 에이바에게 자의식이 있는지 판단하라는 과제를 준다. 그런데 칼렙은 에이바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아는지에 대해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과제를 스스로 제기한다. 한편, 네이든은 줄곧 유리방에 갇혀 지내온 에이바에게 칼렙을 이용해 방을 탈출하라는 과제를 이미 주었다. 칼렙에게는 비밀이다. 네이든은 사실, 에이바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자의식과 상상력, 통제력, 섹시함, 공감 능력을 이용”할 수 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심리학 용어로 자의식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아는 일. 신체적 특징, 남과의 관계, 세계와의 관계 따위의 모든 외적 관계를 벗어나 성찰에 의해 자신의 내면적 세계에 대하여 아는 일’이다. 철학 용어로 자의식은 ‘타인과 구별되는 자아**로서의 자기에 대한 의식’이다. 두 의미를 거칠게 종합하면 타인과 구별되는, 내면적 자기 혹은 자아를 아는 일이 자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안다는 것은 그 행위의 의미를 이해한다는 뜻이라고 볼 수 있다.
‘자의식’에 대한 정의를 바탕으로 우선, 네이든이 칼렙과 에이바에게 던진 과제에 대해 영화가 제시한 답을 이해해 보자.
첫째, 에이바에게 자의식이 있는가? 답은 그렇다,로 기울어진다. 네이든은 에이바의 지적 능력과 몸은 보존하고, 기억은 삭제할 계획이다. 칼렙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에이바는 자신을 지금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네이든의 과제를 넘어서는 목표를 스스로 설정하고 실행에 옮긴다. 에이바가 자신을 지금 그대로 보존하려는 생각/마음은 에이바가 자신을 타인 혹은 세계와 구분되는 존재로 인식한다는 의미일 수 있다. 무엇보다, 자신이 ‘바라는 바’를 인식하지 않았는가. 이는 자의식의 소산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에이바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자의식, 상상력, 통제력, 섹시함, 공감 능력을 ‘이용’할 수 있는가? 답은 그렇다,이다. 에이바는 칼렙에게 당신과 함께 있고 싶다고 말하는 등 자신이 칼렙을 좋아한다는 신호를 보내어 칼렙의 마음을 움직인다. 결국 칼렙은 스스로 에이바를 탈출시킬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긴다.
네이든의 인공지능 로봇은 네이선이 기대한 이상의 성과를 거둔 셈이다. 그렇다면, 칼렙이 제기한 과제에 대한 답은 어떨까.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안다는 것이 그 행위의 의미를 이해한다는 뜻이라면, 이에 대한 답은 부정적이다. 에이바는 자신이 스스로 설정한 목표, 유리방을 벗어나는 정도가 아니라 네이선을 완전히 벗어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네이선을 죽이고, 또 다른 인공지능 로봇 교코를 희생시키고, 칼렙을 그곳의 한 방에 가둔 채 홀로 도시로 간다. 에이바는 자신의 행동이 낳을 결과를 정확히 예상하며 칼렙의 호감과 교코의 분노를 ‘이용’한 것이다.
그런데 에이바가 자신의 보존과 자유를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행동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았다고 볼 만한 단서는 없다. 네이든에 대한 분노가 네이든의 살해를 정당화한다 해도, 칼렙과 교코의 희생이 그들에게 부당하다는 사실을 에이바는 한순간도 고려하지 않았다. 바위를 깎아 만든 그곳의 지하에서 지상으로 오르는 계단을 밟기 직전, 에이바는 산 채로 혹은 죽은 채로 남겨진 이들이 있는 그 공간을 돌아보며 미소 짓기까지 한다.
에이바는 왜 이런 존재가 되었는가? 싱귤레리티에 도달한 인공지능에게 인간성이 없기 때문인가? 영화가 제안하는 답은 다르다.
에이바가 도시에 도착한 순간, 카메라는 길바닥에 드리운 인간의 그림자들을 보여준다. 바삐 오가는 그림자들이 사라진 빈 바닥에 가만히 멈춰 서는 그림자가 에이바다. 형태로 볼 때, 그림자 에이바는 그림자 인간과 구분되지 않는다. 이 장면에 담긴 함의를 플라톤적으로 표현하자면, 에이바의 그림자는 인간의 그림자(모사본)인 것이다. 영화는 네이든이 에이바를 만든 공간을 플라톤의 동굴이 연상되도록 구성했을 뿐 아니라, 칼렙의 이야기 ‘흑백의 방에 사는 메리’를 통해 이 점을 명확히 강조한다. 에이바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존재인 것이다.
에이바의 ‘인간성’은 칼렙이 네이든에게 도대체 에이바를 왜 만들었냐고 물었을 때 네이든이 했던 답과도 연결된다.
“만들 수 있는데 안 만들 이유가 없잖아.”
네이든은 잭슨 폴락의 그림으로 자신의 행동이나 에이바의 행동을 설명할 때도 폴락이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생각했다면 점 하나 찍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라고 단언한다. 칼렙이 던졌던 질문,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에이바가 알지 못하거나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에이바를 만든 네이든에게 기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도시의 길바닥에 비친 그림자는 에이바만이 아니다. 인간 또한 그림자로 등장한다. 이 점을 이렇게 바꾸어 고민할 수 있다. 인간은 무엇의 그림자일까.
이 물음 앞에서 영화 《엑스 마키나》는 켄 리우의 소설 「즐거운 사냥을 하길」과 겹친다.
「즐거운 사냥을 하길」에 등장하는 요괴 후리징은 기계 문명 이전 시대에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가 빚어낸 존재다. 그런데 기계가 마술적 판타지를 대신하면서, 후리징은 더 이상 여우로 둔갑할 수 없게 된다. 심지어 한 남성이 후리징의 몸을 한 부분 한 부분 기계로 바꾸어가며 능욕한다. 이와 유사하게 《엑스 마키나》에서 네이든은 인공지능 로봇을 반드시 여성으로 만들 뿐 아니라 성행위가 가능하도록 만든다.
두 작품 모두,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이 어쩌면 이성적 존재로서 인간이 품은 꿈의 실현이기보다, 인간의 통제를 넘어서는 욕망의 현현은 아닌지 묻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거대하고 막강한 욕망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더불어, 나날이 비대해지는, 인간의 자의식은 자신이 하는 행동의 의미를 더 이상 묻지 않는 것은 아닌지, 분별을 거절하는 욕망의 질주가 빚어낸 우리의 ‘엑스 마키나’가 머지않아 인간사를 대신 결정하지 않을지, 이제라도 기술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지, 묻는 듯하다.
* 엑스 마키나 : 라틴어 ‘Deus ex machina’는 ‘신의 기계적 출현’을 의미한다. 이것은 극의 사건 진행 과정에서 도저히 해결될 수 없을 정도로 뒤틀어지고 비꼬인 문제가 무대의 꼭대기에서 기계 장치를 타고 무대 바닥에 내려온 신의 대명(大命)에 의해 해결되는 기법이다. - 출처 : 『드라마사전』(김광요, 박진권, 황성근, 류용상, 김종대, 2010.)
** 자아 : 인식과 행위의 주체. 체험 내용이 변화해도 동일성을 지속하여 작용, 반응, 사고, 의욕의 작용을 하는 의식의 통일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