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속도를 가로지르는 마음의 궤적

-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by 세니사

두 축이 교차하는 SF의 네 유형

문학 작품의 유형을 분류하는 일은 개별 작품을 이해하는 데 때로 유용하고 때로 무용하다. 그러나 독자 입장에서 김초엽의 작품들을 SF라고 볼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다. 그의 작품에서 우주, 외계 생명체, 첨단 기술이 등장하지만 본질적으로 그의 작품은 상실과 애도의 서사로 읽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문에 맞닥뜨릴 때, SF의 유형을 고민해 보는 작업은 김초엽의 작품을 보다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SF의 유형을 분류하고자 시도할 때, 두 개의 축(기준)을 설정하는 편이 적절하다.

첫 번째 축은 과학 기술 적용의 엄밀성이다. 이 축의 한쪽 끝에 하드 SF를 놓고, 반대쪽 끝에 소프트 SF를 놓을 수 있다. 하드 SF는 과학 기술의 법칙을 최대한 충실히 따르며 과학적 논리와 문학적 개연성이 직조된 서사로 독자에게 지적 쾌감을 준다. 소프트 SF는 과학 기술의 발전을 배경으로 하여, 그로 인해 변화하는 사회 구조나 인간의 내면에 깊이 침잠한다.

두 번째 축은 기술 발전에 대한 태도이다. 이 축의 한끝에 디스토피아 SF를, 다른 끝에 휴먼 SF를 배치할 수 있다. 전자는 정치 혹은 경제 권력이 기술과 결합하여 만들어낸 체제가 인간의 존엄성을 압도하는 파국을 그려낸다. 후자는 현저히 발달한 과학 기술이 삶의 조건을 형성하는 시대에 인간적 관계와 감정이 서사의 의미를 결정한다.


다만, 개별 작품들을 네 개의 차원 어딘가에 배치하고 각 차원이 배제적인 듯 읽는 일은 위험하다. 하지만 이 두 축을 X축과 Y축으로 하여 형성되는 최소 네 개의 영역 어딘가에 개별 작품을 배치해 본다면, 작품을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삼을 수는 있다.



김초엽의 소설, (소프트 SF & 휴먼 SF)?

김초엽의 작품들은 과학 기술을 엄밀하게 적용하여 서사를 쌓아가기보다 과학 기술이 인간의 관계와 감정에 어떤 파동을 일으키는지 주목한다는 점에서 우선, ‘소프트 SF & 휴먼 SF’ 차원에 놓을 수 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나아갈 수 없다면』에 수록된 일곱 작품은 각기 다른 과학적 상상력을 빌려오지만 결국 모든 서사는 감정과 관계의 문제로 귀결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 어떤 SF 작품은 네 영역 가운데 어느 한 영역에 갇혀 있기보다 다른 영역을 가로지르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일곱 편의 작품을 보다 정교하게 응시한 후 이번 단편선에 대한 최종 해석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그곳으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각 작품이 던지는 질문을 범주화하면 크게, 다음 세 가지 질문이 도출된다.


첫째, 누군가와 극복할 수 없는 거리나 시간을 사이에 두게 되었을 때 인간은 왜, 어떤 선택을 하는가.

둘째, 인간이 타인과 함께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셋째, 초인적 기술의 시대에 인간은 삶의 의미를 무엇으로 구성하는가.


이 세 질문은 과학 기술의 정합성보다 그 기술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균열과 감정의 진폭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김초엽의 작품이 ‘소프트 SF & 휴먼 SF’의 좌표에 놓일 수 있음을 증거 한다.



극복할 수 없는 거리와 시간 넘어서기

표제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우주에서의 이동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더 빠르고 더 저렴한 이동 기술의 발달이 역설적이게, 주인공의 가족이 살고 있는 행성으로 갈 수 있는 우주선의 운항을 정지시켰다. 주인공이 가족에게 가지 못한 채 프리징 기술로 자신의 수명을 연장하면, 언젠가 갈 수 있을 날을 기다리는 동안 다른 행성의 가족들은 이미 자연사했을 만한 시간이 흘렀다. 이제 간다 해도 그녀를 반겨줄 가족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곳에 결코 닿을 수 없는 장시간의 비행을 감수하며 홀로 개인 우주선을 출발시킨다. 왜일까? 존재의 중심은 물리적 시공간이 아니라 관계의 시공간에 살기 때문이리라. 인간은 물리적 좌표가 아니라, 마음이 머무는 시공간에 닻을 내리는 존재인 것이다.

「관내분실」에서 몸이 놓인 거리와 시간은 한층 멀어진다. 죽은 자와 산 자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몸의 물리적 부재 이후에도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잔존하는지를 탐색한다. 죽은 자의 뉴런을 통째로 ‘도서관’에 업로드하여 죽은 자와 산 자의 소통을 가능하게 한 기술이 발달한 시대, 그러나 작품에서 기술은 본질적으로 관계의 지속성을 실현하지 못한다. 오히려 단절과 상실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낼 뿐이다.

두 작품 모두에서 기술은 거리와 시간을 극복하기 위해 사용되지만,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단절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마음이 깊이 뿌리내린 관계의 감각과 기억은 소거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인간은 기억하고 기다리고 때로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낸다. 인간의 삶은 그 관계 안에서만 지속 가능하기 때문이다.



공존의 의미

「스펙트럼」과 「공생가설」에서 서사의 중심은 공존이다.

「스펙트럼」에서 주인공은 뜻하지 않게 낯선 행성에서 낯선 지적 생명체와 살게 되지만,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우주 개발 시대에 걸맞게, 온갖 외계어를 다룰 수 있는 번역기가 있지만 소용이 없다. 그들 언어는 소리가 아니라 색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그들과 평화로운 관계를 형성하며 함께 산다. 공존은 앞선 기술이나 논리적 언어 이전에 서로에 대한 ‘태도’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지구로 귀환한 후 그 행성의 위치를 발설하지 않는다. 기술을 앞세운 지구인들이 그 행성과 생명체들에게 어떤 ‘태도’로 접근할지, 그 태도가 어떤 파괴를 가져올지 알기 때문이다.

「공생가설」에서 공존은 ‘각자 함께’의 의미를 넘어, 내 안에 이미 존재하는 타자와의 공생이다. 그러나 인간은 일곱 살을 기점으로 내 안의 타자성을 제거할 뿐 아니라 공생의 기억마저 삭제한다. 이로써 인간은 확고한 자아를 수립하는 것이다. 하지만 작품에서 인간은 상실한 타자를 기억하지 못하는 채 그리워한다. 여기서 공존을 넘어서는 강도의 공생은 이미 인간의 본질인 것이다.

두 작품은 관계에서의 정서적 측면을 넘어 윤리적 측면을 전경에 둔다. 기술은 때로 새로운 만남을 가능하게 하지만, 그 만남이 인간의 삶을 인간답게 할 수 있는가는 태도와 선택에 달렸다고 말한다.



삶의 의미

「감정의 물성」,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또한 관계와 무관하지 않지만, 보다 개별적 삶의 의미를 탐색한다.

「감정의 물성」은 기술에 의해 감정이 물질로 엄연히 존재할 수 있는 상황을 상상한다. 감정이 물질이 되어 만져질 수 있고, 만짐에 의해 그 감정이 한층 강화될 수 있다면 인간이 연연하는 감정은 과연 어떤 감정일까. 그토록 연연하는 감정이 그 사람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어떤 감정이 왜 그토록 애틋하고 절대적인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다만, 어떤 감정은 마치 물질인 양 선명하게 우리의 삶을 조건 지을 수 있지 않겠냐고 제안할 뿐이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와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역시 한 사람에게 삶의 중요한 선택을 결정짓게 하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결국 세 작품은 모두 인간이 삶에서 하는 선택들은 궁극적으로 각자 삶의 서사와 그 서사에 동반된 감정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감정은 선택을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힘인 셈이다. 현저한 기술의 발전이 ‘할 수 있음’의 영역을 확장한다 해도, 나는 무엇을 하며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선택은 궁극적으로 각자의 감정에 달린 문제인 것이다.


유형을 가로지르는, ‘다정한 디스토피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기술의 가능성을 예측하거나 위험성을 경고하기보다 기술 이후에도 지속되는 인간의 조건을 탐색하는 작업에 가깝다. 김초엽의 작품 세계에서 기술은 서사의 동력이 아니라 삶이 놓이는 자리의 재배치일 뿐이다. 그 자리에서 인간은 여전히 누군가와 관계 맺고, 그 관계를 기억하고, 함께 하려는 태도를 견지하며, 감정의 반경 안에서 삶을 살아간다. 다시 말해 우리가 빛의 속도로 나아갈 수 있든 없든, 인간 삶을 좌우하는 질문은 본질적으로 같다.

흥미로운 점은 김초엽이 그리는 세계가 종종 배타적이고 차별적이며(디스토피아적 요소), 기술은 때로 가족을 갈라놓거나 개인을 고립시킨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 디스토피아적 세상을 배경 삼아 오히려 인간적 가치를 끌어올린다. 기술이 빛의 속도로 멀어지는 거리감을 만들어낼 때, 인물들은 그 거리감을 극복하기 위해 온 생애를 바치는 것이다. 결국 일곱 편의 이야기는 ‘소프트한 설정으로 빚어낸, 단단한 인간애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이로써 그는 기술적 사고의 실험실을 인간적 감정의 실험실로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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