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두 얼굴의 아버지

- 한, 유기된 자의 분투기

by 세니사

다정한 아버지, 잔인한 아버지

언니, 오빠, 나의 고향은 지금은 사라진 행정 구역, 진해이다. 아버지는 우리가 태어날 당시 해군이었다. 어느 날 전역을 한 아버지는 원양어선 통신사가 되었다.

아버지가 탄 배가 들어와 아버지가 집에 있을 때, 아버지에게 통신 기술을 배우러 드나드는 성인 남성들이 있었다. 그들 중 누군가 어린 나를 안아 올려 내 입술에 자기 입을 맞추더니 갑자기 내 입안으로 혀를 들이밀었을 때, 얼마나 진저리가 나고 무서웠던가. 내 인생 최초의 기억. 공포와 혐오.

진해에서의 또 다른 조각 기억은 아버지가 짙은 자줏빛 커다란 고무통에 물을 가득 받아 어린 나를 목욕시키던 일이다. 진해에서 그는 나와 동생에게만큼은 나쁜 아버지가 아니었던 듯하다. 그를 두려워한 기억이 없다. 하지만 아버지는 언니와 오빠에게는 완전히 다른 아비였다. 아버지가 언니나 오빠를 데리고 들어가 방문을 닫으면, 닫힌 방문을 뚫고 튀어나오던 매질 소리와 비명을 꿈인 듯 생시인 듯, 기억한다.

정확히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우리 가족은 서울로 이사를 했다. 아버지는 이제 한 번 바다에 나가면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집에 돌아왔다. 그가 돌아올 때면 비릿한 생선들이 몇 상자씩 따라왔다. 돌아온 아버지는 몇 주를 머물다 다시 떠났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버지도 생선도 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발을 끊고 소식을 끊고 돈을 끊었다. 그리고 다시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는 오후에 집을 나서 우리가 잠든 후 돌아왔다. 어둠 속에 잠들어 있던 나는 문득, 어머니의 울음소리에 잠이 깨곤 했다. 벽을 향해 누워,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

세월이 한참 지나 알게 된 당시 상황은 이랬다.

발길을 끊었다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가 당신 동생 집으로 우리를 보냈던 날,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어머니는 동의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재판을 거쳐 이혼했다. 아버지는 소송에서 이겨 양육권은 물론이고,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접근할 수 없다는 명령도 받아냈다.

이후 아버지가 한 일들로 미루어 볼 때 이 소송이 자식을 지키기 위한 아비의 고육지책이었을 리 없다. 이미 젊은 여성과 새살림을 차렸던 아버지는, 어머니를 무일푼으로 내쫓기 위해 계획했고, 실행했고, 끝내 성공했다. (아버지의 치밀하고 치졸한 계략은 여기에 옮기지 않겠다.)

그리하여, 나의 생후 여덟 번째 어린이날은 아버지가 은밀히 준비해 온 가족 해체 계획을 드러낸 첫날이었던 셈이다.


학대의 연속성

부모가 자식을 유기하는 일은, 행인지 불행인지, 어느 날 단번에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든 일종의 신호라 할 만한 행위들이 앞서게 마련이다. 그 신호들을 주위 성인이나 관련 기관이 알아채 줄 수는 없을까.

가정은 지극히 사적 공간이며 미성년 자녀의 양육과 교육은 일차적으로 부모의 책임이다. 그러나 사회의 유지와 발전은 가정의 안녕을 기반으로 하여 실현된다. 그러니 미성년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육성할 책임과 필요가 공동체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나의 아버지가 자신의 자식에게 했던 일들 가운데 장차 그가 자식을 버리게 되리라, 자연과학적인 인과론으로 단정할 수 있는 일은 물론 없다. 그러나 오빠와 언니를 매질하던 일, 집에 발길과 돈을 끊은 일, 무고한 어머니와 생이별을 시킨 일, 중학생 자식을 학교에 보내지 않은 일은 모두 이후 그가 벌인 일과 분리하여 보아도 그 자체로 아동 학대다. 각각의 행위에 제동이 걸렸다면, 그는 감히 다음 단계의 학대로 넘어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1970년대 상황이었을 뿐 오늘은 다를까. 안타깝게도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 우리 귀에 아이들의 비명이 직접 들리지는 않는다 해도 숫자가 보여주는 진실은 직접 들리는 비명만큼이나 강렬하다.

2022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폭력 피해 아동의 수는 폭력 피해 여성 수의 60배에 이른다. 방어 능력도 대처 능력도 없는 아동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장 손쉬운 폭력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폭력은 결코 동일한 행위의 반복으로 끝나지 않는다. 강도는 높아지고, 빈도는 잦아지고, 차원은 심화된다. 더욱이 그러한 상황에 처한 아동의 고통은 아동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동 학대는 한 인간이 끝이 안 보이는 어두운 동굴로 들어가는 입구인 것이다.

그러니 부디, 그 동굴 입구에 눈 밝은 파수꾼을 세워 어떤 아이도 그 안에 던져지지 않도록 함께 지켜봐 주기를... 그리하여 작은집의 더부살이를 시작으로 우리 형제들이 차례차례 놓였던 지경들에 어떤 아이도 다시 놓이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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