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향한 첫 걸음
내 꿈은 작가다. 그것은 무려 30년쯤 전부터 키워오던 꿈이었다. 글을 쓰는게 좋았고, 끄적끄적 쓴 글을 친구들과 돌려보기도 했다.
인터넷 소설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친구들과 돌려보았던, 내가 쓴 글은 고등학교 2학년때 담임 선생님께 제출 되었다. 그 당시 청소년 소설 공모전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첫번째 탈락은 그때부터 였다.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은 없어지지 않았다. 나의 진로는 자연스럽게 국어국문과가 되었다. 그때 구체적인 진로 목표는 방송작가였다. 신방과를 선택할까도 했지만, 국어국문과를 선택한 이유는 수능날 아침에 먹은 우황청심환의 역할이 컸다.
수능시험을 보러 가는 날.. 큰 딸이 긴장될까 걱정된 엄마는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약국을 찾아가 우황청심환을 사오셨다. 이웃에 살고 있는 친구가 심신의 안정에 좋다고 한 이유에서 였다. 분명 밤에 사서 자기전에 먹이라고 했을텐데 바빠서 못챙기고 아침에 부랴부랴 다녀온거였다. 엄마의 정성이었다.
국어와 수학 시험을 어떻게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멍한 상태에서 정신이 든 건 점심시간이었다. 처음 먹어본 우황청심환의 효과는 굉장했다. 나는 늘어진 천처럼 풀어져서 제일 자신있던 국어와 나름 좀 풀었던 수학 시험에서 말 그대로 폭삭 망했다.
국어국문과는 나의 적성과 잘 맞았다. 글을 쓰는 동아리가 있어서 함께 활동하며 문집도 만들었다. 그때 쓴 글이 있는 문집을 보관하고 있다가 최근에 다시 읽어 보았다. 젊은 날의 치기어린 글에 얼굴이 달아올라 지금은 폐기처분이 되었지만 나름 열정을 불태우며 대학생활을 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나의 진로는 조금 수정이 되었다. 글을 쓰고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때 깨달은 것이 있다. 과거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 때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면 뒤로 물러나지는 않는 다는것! 조금씩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수석으로 졸업하면서, 내 손에는 졸업장과 중등 국어 정교사 자격증이 들려있었다.
교직을 이수하기 위해서는 교생실습을 가야한다. 난 내가 졸업한 모교인 여고로 실습 신청을 했다. 담임반은 2학년이었고 과목 실습은 1학년이었다. 실습생 대표로 그 당시 많이 쓰지 않았던 영상 자료까지 쓰면서 대표 수업 시연을 했다. 수업을 가르치는건 정말 재미있었다. 문제는 나이도 비슷하고, 나보다 키가 컸던 여고생들은 나를 무척 귀여워하며 따랐다는 것이다. 교생 선생님은 귀여움이 통했다. 하지만 담임은 달랐다. 사춘기를 달려가는 중.고등학생에게 귀여운 담임 선생님이란 그냥 만만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꿈을 향한 두번째 시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