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맑음 ⁵

by 듭새





"아빠는 너 때문에 살아. 너를 만난 해부터는 나쁘게 살아본 적이 없어."


언젠가부터 말에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그 힘을 고이 보관하고 힘들 때마다 꺼내 충전하는 것은 나의 재량. 성인이 된 내가 가지고 있던 몇 안 되는 힘 있는 말 중, 가장 나를 강하게 만들고 언제 어디서 넘어져도 다시 털고 일어서게 했던 말. 거짓 하나 없었을 그 말. 건조함도 축축함도 없이 담담하게 읊조리던 목소리가. 소주 한 잔을 입안에 털어 넣고 시선을 거두던 그 얼굴이. 지금 당신이 뱉은 말이 거짓 한 톨 없는 진실이며 사무치는 진심이라는 것을, 내 삶 속 마음 깊숙한 곳에 단단히 묶어주는 것 같았다.


엄마가 빚을 지고 도망간 후 아빠는 줄곧 나를 혼자 키웠다. 학창 시절에 반 친구들에게 자주 들었던 말은, '너 외동인지 몰랐어.'였고, 그들의 부모님들에게는 '부모님이 참 잘 키우셨네.'였다. 그 시절, 외동이라면 흔히들 가지고 있는 편견. 그 색안경을 낀 사람들 틈에서 용케도 살아남았던 거다. 양보도 할 줄 알고 주변 사람을 챙길 줄도 알고 어리광도 부리지 않는 아이로. 그것은 아빠에게 주고 싶은 내 훈장이었다. 엄마의 빈자리는 티도 안 나도록 바르고 단단하게 나를 홀로 키워낸 아빠가 외롭지 않고 괴롭지 않을 훈장.

엄마 없는 애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아빠 혼자 키웠으니 애가 저렇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라고 한다면 사실 거짓이다. 그런 노력을 한 적은 없다. 정확히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보이기 위한 노력을 한 적이 없다. 내 노력의 초점은 아빠에게 맞춰져 있었을 것이다. 아빠 혼자 일도 하고 집안일도 하려면 힘드니 집안일은 내가 조금 더 한다거나, 회사에 입고 가는 셔츠 정도는 내가 내 교복 셔츠를 빨 때 함께 손빨래한다거나. 하교하는 길에는 시장에서 저녁 장을 봐오고, 가지고 싶은 게 있다는 말은 잘 참고 삼켜보고. 학교에서 가족 행사나 부모님의 참여가 필요한 것들은 언제나 내 선에서 정리했다. 아빠의 업무 시간에는 학교에서든 어디에서든 전화가 가지 않도록 했다. 신경 쓸 것을 최대한으로 줄여주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이었고 내가 해야 하는 노력이었다.


엄마가 있던 초등학생 시절. 아빠는 매달 엄마에게 월급 전액을 주고 본인은 달마다 몇만 원 되지 않는 용돈을 받아 생활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는 밖에서 두 번 술 마실 것을 한 번만 마시고 매일 피우던 담배도 한 번 덜 사고. 그렇게 야금야금 아빠가 모은 돈은 몇 달 후 당시 유행하던 킥보드가 되어있었다. 주인은? 당연히 아빠 딸.


"따알! 아빠가 용돈 아껴서 사 온 킥보드 타러 나와라! 이거 엄청 재밌다!"


집 앞 골목에서 신이 난 아빠의 목소리가 재밌다며 깔깔대고 있었다. 엄마는 동네 시끄럽게 뭐 하느냐며 핀잔을 줬지만, 집을 나가기 전 창문을 활짝 열고 아빠를 본 나는 행복했다. 분홍색 킥보드를 타고 골목을 달리던 아빠의 모습을 보고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우리 딸 사주는데 용돈이 뭐가 아까우냐는 아빠는 여전히 기분 좋게 웃는 얼굴이었다.

나는 꽃게를 좋아한다. 먹기 편하고 맛도 있고. 이렇게 말하면 꽃게가 어떻게 먹기 편하냐고 하겠지만, 내게는 그런 음식이었다. 아빠는 늘 꽃게의 살만 발라 내 밥그릇에 올려줬고 나는 그걸 맛있게 먹었으니까. 자전거를 처음 타게 된 것도 아빠와 함께 타면서였다. 두발자전거의 보조 바퀴를 떼던 날. 아직 손 놓으면 안 된다는 내 말에 멀리서 들리던 아빠의 목소리. 안 놨어. 잡고 있어. 점점 멀어지는 아빠의 목소리가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우리 딸 자전거 잘 타네!

내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한 말은 엄마가 아니라 아빠였다고 한다. 아직 엄마도 뱉지 못하는 아이의 입이 옹알옹알. 아빠! 하고 부르는 것을 보고 아빠는 좋아했고 엄마는 서운해했다. 아빠가 출근하는 시간에는 온 동네가 저 집 아빠 출근하는 시간이구나 알았단다. 출근할 때마다 그렇게 대성통곡을 해대는 갓난쟁이를 품에 안고 엄마는 내가 계모냐며 울기도 여러 번. 비위가 약한 엄마를 대신해 똥 기저귀는 전부 아빠가 빨았다고 했다. 딸인데 뭐가 더럽냐며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면서도 본인이 기저귀는 전부 빨았다. 우리 딸인데 뭐 어떠냐고.

어느 시절을 들춰도 나는 아빠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나에게만큼은 참 좋은 아빠였던 사람.


"딸. 가난한 집에 태어나게 해서, 이렇게 살게 해서 미안하다."


부잣집 딸로 키우지 못 해 미안하다며 사과하던 아빠를 기억한다.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연거푸 소주잔을 비우던 그 모습을. 어릴 적부터 아빠가 나를 어떻게 키웠는지 안다. 허튼돈 하나 쓰지 않고 오로지 나를 위해 청춘을 바치고 산 아빠를 안다.


"나는 아빠가 부자 아빠가 아니라서 좋아. 그래서 나 철부지로 안 크잖아. 생각을 더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아."


주변에서 너는 딸내미 하나는 잘 키웠단 소리 듣는 아빠의 딸로 자랄 수 있는 지금이 훨씬 좋다고 대꾸하던 나. 울고 싶은 얼굴로 울지는 못하고 아무 말 없이 소주 한 병을 새로 따던 아빠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빠의 퇴원 후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던 매일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이 기억들이 내게는 끝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너지는 아빠가 분명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임에 의심이 없던 나. 그런 내 마음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버텼다. 믿었다.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니까.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강하고 우직한 사람이니까. 그러니 아빠가 버티는 이유인 나도, 무너질 수 없다.

죽음을 피했으니 사는 것만이 남았다. 다시 죽음을 만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강한 사람이니 살 자격이 있는 것이다. 잊고 있던 처지와 잊어보려고 하던 괴로움은 다시 또 우리를 끌어내리려 징그럽게 손을 뻗겠지만, 그때마다 생각한다. 죽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나는, 우리는, 살아갈 자격이 있고 그것을 누릴 힘이 있다. 언젠가 건넸던 말, 언젠가 들었던 말, 언젠가 보았던 것, 언젠가 느꼈던 것, 그 모든 것이 살아갈 힘이다. 죽기 위한 삶은 없다. 없어야 한다. 내가 죽음에 한 방 먹이기 전까지는 내게 주어진 기회를 붙들고 꾹꾹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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