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파, 자기 만나 파탄
나 예주라. 내 나이 40세.
나이에 비해 아직 쓸 만한 몸매와 얼굴.
이런 나의 유일한 흠은, 내 남편이다.
저 똥차만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벤츠가 아니라 부가티 옆자리에 앉아 있었을 텐데.
부가티는커녕, 영포티도 아니고 올드포티 옆자리라니.
짜증나 정말.
"여보는 다른 남자들한테 미안해해야 돼."
"또 그 소리야?"
"나 같은 여자를 자기가 독차지했으니까, 평생 들을 소리지."
한숨을 쉬며 TV 리모컨이나 돌리는 저 배불뚝이가 내 남편이다.
"관리 좀 해. 아직 40대 후반인데 50대 후반 같잖아."
"... 내가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나?"
"난 굿 영포티, 여보는 올드 포티."
"영포? 뭐? 그게 뭔데?"
역시 촌스러워.
능력 좀 되는 줄 알고 결혼했더니
승진은커녕 뱃살만 승진 중인 인간.
됐고.
오늘은 이 몸값을 제대로 써먹는 날이다.
어제 산 블랙 미니 원피스.
영섹시룩. 블랙 하이힐로 마무리.
"또 쇼핑했어?
지난달 카드값 많이 나왔잖아. 이번 달엔 좀 아끼자니까..."
그놈의 카드값 카드값.
징글징글하다.
"당신 근데 어디가?"
"오늘 동창 모임 있다 했잖아."
"맞다, 남편들도 온다 했지? 얼른 옷 갈아입을게."
"여보는 갈 거 없어."
그러게 평소에 관리 좀 하지.
쪽팔리게 저 몸뚱일 어떻게 옆에 끼고 가.
"저녁은 알아서 시켜 먹든 해."
"또 배달시켜 먹으라고?"
식충이.
현관을 닫아버렸다.
모임 장소에 도착했다.
이렇게 꾸민 모습을 매년 보는 얼굴들한테만 보여줘야 한다니.
"어머, 주라야."
"너는 나이를 안 먹는다, 얘."
인사를 나누며 옆자리 남편들을 슥 훑었다.
놀래라.
내 남편 1, 2, 3인 줄.
가영이가 뒤늦게 들어와 내 앞에 털썩 앉았다.
"야, 너 향단이 기억나?"
"향단이? 이향기?"
"걔 오늘 나온대."
그때였다.
술집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훤칠한 키.
서글서글한 눈매.
단정한 셔츠핏.
그 셔츠 위를 비집고 나오려는 잔근육.
긴 팔 끝에 길고 굵은 손.
그 손을 잡고 있는 여자.
향단이, 아니 이향기였다.
"곧 결혼할 남자친구야."
말.도.안.돼.
외모, 몸매, 성적, 직업.
평범 그 이하인 이향기가
저런 급의 남자를 옆에 끼고 나타났다.
잠시 뒤 남자가 자리를 비우자 가영이 몸을 들이밀었다.
"남친 무슨 일해?"
얼굴이 저 정도로 잘생겼는데
능력까지 좋겠어?
설마.
"사업해. 차밍 알지? 대표야."
"어머! 그거 이번에 대박 난 브랜드잖아. 남친 몇 살인데?"
"나보다 8살... 어려."
8살 연하 훈남이 자리로 돌아왔다.
나와 향기 사이에 앉은 남자.
"인사가 늦었네요. 나준수입니다."
그가 향기의 물 잔을 채운다.
향단이를 춘향이로 만들어준 손으로.
시간이 꽤 흘렀다.
애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고, 남은 건 나와 가영이. 그리고 향기와 향기의 남자친구.
"나 안가영이야. 집에 오늘 안가영!"
"너 남편이 걱정하겠다."
"남편은 얼어 죽을... 나 오늘 자유인가영!"
만세 자세로 휘청이며 일어난 가영이가, 향기와 준수 사이로 파고들 듯 자빠졌다.
"향기야 네 남친 멋있다. 부러워..."
준수의 몸이 내 쪽으로 기울었다.
"가영아 괜찮아?"
향기가 가영을 부축하며 자리를 떴다.
공기가 달라졌다.
그와 나 사이에 남겨진 건
채워지다 만 와인잔과 애매한 침묵.
천천히 손을 뻗었다.
내 손끝이 닿는 순간 그의 근육이 미세하게 굳었다.
"저기..."
그의 말끝이 흐려진다.
천천히
손등을 타고 손목까지 올라갔다.
"향기 없잖아요."
반대쪽 손으로 와인을 한 모금 들이켰다.
그대로
얹혀 있던 손을 아래로 미끄러뜨렸다.
손목에서 허벅지.
더 아래로.
이성을 이기는 건 힘이 아닌 본능이다.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더 천천히 입술을 겹쳤다.
짧은 접촉.
그가 숨을 멈췄다.
떼었다가 다시.
입술이 맞닿자
이번엔 그가 먼저 나를 끌어당겼다.
그 순간.
"... 준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