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랑만 살아야 하는 법 (3)

자만파, 자기 만나 파탄

by 밤얼음

집에 올라오자마자 여행 가방을 꺼내 옷을 쓸어 담았다.


"당신 이제 마흔이야.

어린놈이 유부녀 데리고 장난질했나 본데 정신 좀 차려!"


"여자 나이 마흔?"


코웃음을 쳤다.

현관 거울 속 번진 립스틱을 엄지로 눌러 정리했다.


"그건 나한테 해당 안돼.

나 정도면 더 좋은 남자 만날 수 있어."


가방을 끌고 방을 나서자 남편이 내 팔을 붙잡았다.


"나는 집이랑 회사밖에 모르면서 당신한테 성실했어! 뭐가 그렇게 부족했는데!"


"여보는 이름부터가 잘못 됐어. 박성실."


"성실하게 사는 게 뭐가 문젠데."


"성실하게 살아서 달라진 게 있어?

세상은 성실하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거든."


그의 팔을 뿌리쳤다.

잠시, 손이 허공에 남았다.


"계속 성실하게 살아. 영원히."


그대로 집을 나왔다.

낡고 색이 바랜 외벽.

나를 담기엔 너무 작은 집.

그동안 나는,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었다.


어느새 준수의 집 앞이었다.

로비 대리석이 유난히 번들거렸다.


아래가 아니라, 위.

이게 내 사이즈다.

새로 시작하는 거야, 예주라.


문이 열리자, 현관에 준수의 신발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뭐야, 늦게 끝난다더니."


그 옆.

여자 구두 한 켤레.


분명 내 것이 아니다.


안쪽으로 들어섰다.

준수의 방문이 반쯤 닫혀 있었다.

그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엉킨 숨.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문이 벌어질수록 살색이 짙어졌다.


"누... 누나."


준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꺄악!"


여자가 황급히 이불을 뒤집어썼다.


낯익은 목소리.


"... 안가영?"


가영이가 몸을 가리며 고개를 들었다.


"주라야..."

"안가영 너... 뭐야...?"

"......"


"누나. 오해야, 오해."


내가 비웃던 그 말.


손이 먼저 나가버렸다.

짧은소리와 함께 그의 고개가 옆으로 꺾였다.

혀로 입 안을 한 번 굴리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나를 내려다봤다.


몇 시간 전, 나를 안고 있던 얼굴과는 다른 얼굴로.


"아, 어차피 누나 유부녀잖아."


"너... 나 사랑하는 거 아니었어?"


준수는 헝클어진 머리를 느긋하게 쓸어 넘겼다.


"내가 미쳤어?"


입가를 비틀며 나를 훑어 내렸다.


"나 같은 남자가 유부녀를 왜 사랑해."


나 같은... 남자.

귀에서 윙 소리가 났다.


옷을 대충 걸친 가영이 내 옆에 섰다.


"그래 주라야...

너도 나도 가정이 있는데, 사랑은 아니지."


가영의 시선이 내 가방으로 떨어졌다.


"너 설마... 진짜 이혼이라도 하려고 했어?"


그 시선을 따라 준수의 눈도 가방에 멈췄다.

코웃음을 쳤다.

남편 앞의 나처럼.


준수가 입을 열었다.


"분수도 모르고 눈만 높아서는.

맨날 명품에, 차 타령이나 하고.

벤츠? 부가티?"


입술이 또렷하게 움직였다.


"아직도 이십 대인 줄 알아?

누난 그냥 된장녀.

올드포티야."


올드포티.


내가 남편에게 던졌던 말.


그 말을

지금 내가 듣고 있다.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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