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랑만 살아야 하는 법 (4) 완결

자만파, 자기 만나 파탄

by 밤얼음

"누난 그냥 된장녀. 올드포티야."


그 말이 귓속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짐가방 바퀴가 턱에 걸렸다.

가영이를 태운 준수의 외제차가 내 앞을 가볍게 가로질렀다. 배기음이 멀어지고, 늦게 따라온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번진 화장 위로 머리칼이 엉겨 붙었다.


망할 것들.


전화기를 꺼내 연락처를 훑어 내렸다. 이름은 많지만, 쓸 만한 이름은 없다. 화면이 꺼진 액정 위로 내 얼굴이 비쳤다.


결국 아무 차나 잡아 탔다.

택시 안.

운전석 옆 가족사진이 눈에 밟혔다.



"여보, 나 너무 늙어 보이지 않아?"

"내 눈엔 아직도 예뻐."

"여보 눈에만 예뻐 보이면 뭐 해. 다른 사람들 눈이 중요하지."


남편은 늘 웃으며 말했다.


"남들 눈이 뭐가 중요해. 내 눈에 예쁘면 됐지."



집 앞.

비밀번호를 눌렀다.


그새 바꿔놓은 건 아니겠지.

삐ㅡ


그대로였다.


"여보..."


거실은 내가 나간 자국 그대로였다.

남편은 소파에 앉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여보, 내가 잘못했어."


소리가 뜻대로 나오지 않았다.

한참 뒤에야, 남편이 고개를 들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또 그러겠지."


무릎이 먼저 굽혀졌다.


"아니야, 여보. 다신 안 그럴게. 나 달라질게."


남편 다리를 더 꽉 끌어안으며 몸을 바짝 붙였다. 그의 허벅지에 얼굴을 묻고 숨을 죽였다.


잠시 후,

남편의 손이 천천히 올라와 내 어깨에 얹혔다. 밀어내지도, 끌어안지도 않았다.


몇 달이 지났다.


남편은 언제나처럼 출근했고, 퇴근했다.

다만 퇴근 시간이 예전보다 조금 늦어졌다.

나는 매일 밤 남편의 휴대폰을 열어봤다.


그리고.


남편의 친구들 모임 날.


"여보 먼저 들어가 있어. 나 화장실 좀 들를게."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조명 아래에서 고개를 기울이자 목선이 길게 드러났다.


안쪽에서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만수가 B기업 회장 조카라며?"

"진작 알았으면 내가 어떻게 좀 해봤을 텐데."


여자들의 하이힐 소리가 멀어졌다.


닫았던 파우치를 다시 열어 립스틱을 꺼냈다.

한 번 더 눌러 바르고, 손끝으로 입술 선을 정리했다.


홀 안으로 들어섰다.

사람들 사이에서 한 남자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몸에 잘 맞는 수트.

내 몸에 잘 맞을 것만 같은 사이즈.


그 옆에 앉은 내 남편.


"야, 만수야.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


저 사람이다.


나는 천천히 걸어가 남편 옆에 앉았다.

잔이 몇 번 더 오갔다.

취한 친구들 택시를 잡아준다며 남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편이 나가자 테이블 위 공기가 묘하게 느슨해졌다.


만수가 잔을 들었다가 내려놓는다.

시선이 잠깐, 내 쪽에 머문 것 같다.


준수와의 그날이 떠올랐다.


시련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어떤 방향으로든.


나는 달라졌다.


더 성공적이게.


남편이 비운 자리에 자연스럽게 몸을 옮겼다.

의자가 조금, 만수 쪽으로 기울었다.


다리가 닿을 듯 멈췄다.

만수가 잠깐 남편이 나간 방향을 힐끗 봤다.


잔을 들어 올리며 시선을 맞췄다.


"예주라예요."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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