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의 회상]
그동안 여성 보컬리스트부터 걸그룹 이야기까지 늘어놓았으니, 이제 남성 아티스트 얘길 해볼까 한다.
흔히 ‘남자들의 노래’하면 어떤 음악을 떠올리는가. 지금이야 성별을 기준으로 장르나 보컬을 나누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옛날 옛적 남녀유별이 공개적이고 심지어 공식적(!)이던 시절에는 ‘록(Rock)’ 같은 장르가 남자의 장르로 구분되곤 했었다.
난 개인적으로 음악의 장르보다는 노래 가사나 제목에서 남자의 로망을 마주하곤 한다. 그래서 오늘 첫 노래는 가사 내용도 모르면서, 그저 멜로디와 제목에 꽂혀 오래 찾아 듣고 있는‘쳇카즈(The Checkers)’의 Friend and dream이다.
チェッカーズ Friend and Dream(プライベート・モノクロ)
‘친구’와 ‘꿈’. 그야말로 남자들이 자기 인생이라며 몰입하는 단어 아니던가. 그래서인지 유독 남성 뮤지션들의 노래 제목에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이 노래를 부른 밴드 ‘쳇카즈’는 1980년대 일본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그룹이었다. 노래는 물론이고 머리 모양, 패션 등으로도 그 당시 청춘들 사이에서 유행을 선도했었다. 밴드이면서도 보컬들이 춤을 추기도 했었는데, 컨츄리꼬꼬가 한국에서 리메이크 해서 인기를 얻은 ‘오 마이 줄리아(Oh, My Julia)’도 이들의 히트곡이다.
2020년 12월 31일이었을 거다. 해마다 그래왔듯 그날도 아내와 일본 NHK 홍백가합전을 보고 있었는데 화면에 그가 등장했다. ‘올 블랙’ 패션에 흰 장갑을 포인트로 끼고 나온 백발의 보컬리스트. 그리고 그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멤버들. 그렇다. ‘안젠치타이(안전지대)’였다. 처음 등장했을 때 즉각 알아보지 못했지만 이 노년 밴드가 ‘I love you카라하지메요(부터 시작이에요)’ 연주를 시작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일본 대중문화가 국경을 넘지 못하던 시절, 얼굴 한 번 제대로 본 적 없던 이 밴드의 노래들을 내내 듣던 시절이 순식간에 소환됐기 때문. 놓칠 새라 얼른 스마트폰을 꺼내 TV 화면 속 그들의 모습을 연신 찍어댔다.
그날 안젠치타이는 오랜만에 홍백가합전에 출연함으로써 밴드 드러머의 죽음을 애도하는 듯했다. 밴드 보컬인 타마키 코지의 솔로 곡 ‘멜로디’도 이어서 불렀다. 유튜브에는 3년 전 오케스트라 버전이 있어 소개한다.
그들은 2020년 동료, 동지의 죽음을 ‘멜로디’라는 노래로 기렸지만, 그들의 1980년대 최고 히트곡도 ‘Friend’인 것은 역설처럼 다가온다. 고등학생인 내가 친구들한테서 불법 복제된 LP, 소위 ‘빽판’을 빌려 듣던 노래였다. 천둥벌거숭이 시절 우정에 관한 일본어 가사를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 어쩌면 그 뜻 모를 멜로디에 붙여진 ‘친구’라는 제목에 몰입했었을까.
나는 가끔 어떻게 비틀즈의 멤버들이 그때 리버풀에서 서로를 만날 수 있었을까, 들국화의 멤버들이 당시 서울에서 뭉칠 수 있었을까 생각하곤 한다. 천재 뮤지션들이 동시대에 함께 모여 만들어낸 어마어마한 음악들을 감상하며 그 필연 같은 우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이다.
이 안젠치타이도 마찬가지다. 1970년대 일본 본토 북쪽 ‘홋카이도(北海道)’, 그것도 일찍 개항한 가장 큰 도시 삿포로가 아닌 ‘아사히카와(旭川)’에서 멤버들이 모여 50년 넘게 멋진 노래를 선사하다니. 그저 신기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50이 넘은 지금도, 특히 술 한잔 걸치고 귀가하던 30~40대 때부터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와 함께 나 혼자 흥얼거리는 노래가 비트겐슈타인의 ‘Friends’다. 정작 동갑내기 친구들에게 노래방에서 불러주면 잘 모르는 노래다. 하긴, 신해철이 낸 프로젝트 앨범 중에 윤상과 함께한 ‘노땐스’만큼이나 인지도가 낮았던 게 ‘비트겐슈타인’ 밴드프로젝트였으니까.
가사보다 멜로디를 먼저 듣는 내가 가사에 꽂힌 노래가 이 ‘Friends’다. 지금까지 함께해온 친구들을 정말 좋아하는, 내 평생 가슴 속 깊은 마음을 끄집어내기도 하고. 참 사랑했지만, 이제는 어느새 잊힌 친구들을 떠올리게도 하는 노래다.
신해철은 남성 뮤지션 중에서도 유독 꿈, 우정, 소년을 제목이나 주제로 한 음악을 많이 만든 듯하다. 페미니스트와 가장 가까운 사고와 논지를 펼쳤던 남자 뮤지션으로 기억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의 노래 ‘민물장어의 꿈’은 꿈, 희망, 미래에 관한 다른 대중음악과 노랫말의 결이 다르다.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그런데도 세상의 진리는 알고 싶다는 꿈에 관한 노래처럼 들린다. 그래서 신해철의 예고, 당부대로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모두가 슬퍼하는 장례식장에서 내내 당당히 울려 퍼졌다.
꿈, 소년, 친구란 키워드는 영원히 철들지 못하는 나의 오랜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쓰는 날도 자잘하고 헛되어 보이지만 오래 품어온 꿈에 관한 프로젝트 제안서 세 건을 마무리했다. 꿈을 꾸고 도전하는 소년처럼, 희망을 접지 않고 노력하는 중년처럼, 오랜 우정을 간직하는 장년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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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S를 환영합니다! ]
음악 평론가가 아니다 보니 행여 다른 견해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론은 언제든 댓글로 남겨주시면 다시 확인해서 꼭 답글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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