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도전? 창의적 혁신!]
“노래가 처음 나왔을 때 ‘괴상한 음악이 나왔다’라는 반응이었다. 삼촌 이모들은 ‘듣지마라’고 했고, 더 연세 있는 분들은 ‘저게 무슨 노래냐’라고 했다.”- 김창완, 산울림 데뷔 45주년 기자간담회 中
내가 ‘한국 최초의 사이키델릭’이라 칭송하는 산울림의 ‘아니 벌써’가 세상에 나왔을 때 한국 사회는 이런 반응이었단다. ‘최초의 한국적 록’으로 또한 평가하는 신중현의 곡 ‘미인’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트로트와 포크 음악이 주류를 이루던 당시, 록 음악이 그것도 우리 가락을 접목해 낯선 리듬과 멜로디의 음악이 잘될 리 없다고 판단해 애초에 앨범 초판을 비매품으로 발매했다고 한다.
내가 처음으로 한국 대중음악에 꽂힐 때 즈음, 맨 앞에 있던 조용필의 ‘단발머리’는 또 어땠을까. 어린 내게는 그저 신나는 노래였지만 남진, 최헌, 혜은이를 따라가던 당시의 어른들에게는 생소한 장르였을 듯하다.
이렇듯 ‘처음’은 불편하다. 하지만 누군가 치열한 고민 끝에 새로운 스타일을 끌어와 ‘나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하는 작업은 진보의 큰 걸음이 된다. 특히 음악을 비롯한 예술 영역에서는 절대적. 혁신적인 도전이 대중과 호흡할 때 예술은 다른 패러다임으로 전환한다. 물론 모든 도전이 ‘혁신적’일 순 없지만, 엉뚱해 보이는 시도가 대중에게 어필하면서 창의와 혁신으로 평가받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목격해왔다.
‘작은 거인’이라는 밴드의 보컬로 ‘일곱 빛깔 무지개’라는 노래를 통해 처음 접한 김수철이 그랬다. 등장 당시에는 그다지 인기를 끌지는 못했는데, 내 귀에도 묘한 이질감을 남기면서 계속 ‘거슬리는’ 존재로 남아 있었다. 아마도 내가 당대의 밴드 송골매나 MBC 대학가요제 출신의 소위 ‘그룹사운드’ 음악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일 거다.
그러던 김수철은 첫 솔로곡 ‘못다핀 꽃 한 송이’로 메가 히트를 친다. 사람들은 흔히 한국 팝 발라드의 시작을 이문세가 이영훈 작곡가와 함께하기 시작한 3집 ‘난 아직 모르잖아요’부터로 꼽지만, 난 고급스러운 팝을 펼쳐낸 김수철을 이광조와 함께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재기발랄함이 담긴 솔로 곡들 가운데 영화 ‘고래사냥’ OST에 담긴 이 노래를 오랜만에 들어보자.
유튜브에는 KBS와 MBC가 리마스터링 한 영상이 없고 김수철이 2002년에 스스로 리메이크 한 뮤직비디오가 있어 소개해봤다. ‘고래사냥’ 영화에 김수철과 함께 출연했던 안성기와 이미숙 배우도 등장한다. 작년 말 타계한 안성기라는 대배우의 24년 전 모습이 아련하다.
김수철 하면 떠오르는 시그니처 안무인 가위차기(?) 같은 춤도 반갑다. 개인적으로 참 많이 연습하고 따라 했던 나의 K-pop 최초 안무일 거다.(아, 박남정 ‘사랑의 불시착’의 화려한 발재간보다는 먼저인 게 맞겠지?)
한국 대중음악에서 1980년대는 트로트에서 팝 발라드로 주류가 바뀌는 시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언더그라운드’라는 영역 또한 확실히 차별화되는 시절이 아닐까 싶다. 장발을 고수하는 바람에 TV에는 나오지 않았으니 어른들은 잘 몰랐던 ‘청소년들의 음악’이자 ‘해방감의 음악’. 바로 헤비메탈 록 장르였다.
당시 중고생들 사이에서 입소문으로 알려지던 밴드들 중 한 팀이 어느날 라디오 공개방송에서 라이브로 그들의 노래를 시작하자, 나는 공테이프를 넣어 둔 카세트의 녹음 버튼을 잽싸게 눌러 A면 첫 곡으로 담았다.
중학생 때까지 영국 등의 뉴웨이브 음악을 주로 들어 ‘록(Rock)’을 모르던 나는 이 시나위의 데뷔 곡에 매료되었다. 고딩 동기들이 서로 ‘부활’의 김태원이다, ‘백두산’의 김도균이다 하며 좋아하는 밴드의 기타리스트 실력을 놓고 싸웠지만. 내겐 시나위 신대철의 기타 속주보다 임재범이란 보컬의 야수성이 더 충격적이었다.
‘충격적인 보컬’로 따지자면야 이 노래의 주인공이 빠질 수 없다. 아, 이 어색하고 약간 기이한데도, 답답한 가슴을 팍 터뜨리는 독보적 목소리는 당시에도 지금도 시원하게 표현할 길이 없다.
‘들국화’ 1집 속 전인권의 유일무이한 보컬은 질풍노도의 시기에 갇혀 지내던 청소년들에게 마음속에서나마 질주를 허락하는 탈출구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들국화’는 ‘한국의 비틀즈’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평단과 대중에게 사랑받았다.
라디오를 중심으로 청춘들에게 혁신적으로 다가왔던 이 음악들이 서서히 잊혀가던 때, TV라는 오버그라운드의 영역에서 처음 듣는 음악이 터졌다. 한국어 랩이 ‘양념’이 아닌, 곡을 이끄는 ‘메인’으로 만들어진 노래, 그리고 본 적 없던 역동적인 안무에 패션 아이템까지 장착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출몰이다.
‘힙합’이라는 장르를 ‘샘플링’이라는 명목으로 마구 수입했던 감각과 상술도 남달랐지만, 서태지는 민중가요에나 담겼던 사회적인 메시지를 자신의 랩에 담았다. 청소년들이 비로소 ‘문화 대통령’을 찾은 것이다. 당시 대학교 3학년이었던 나 역시도 과 내에서 가장 먼저 ‘난 알아요’ 가사를 외울 정도로 열광했다.
서태지의 미국 음악 수입과 조합의 역량은 시나위 베이시스트 시절의 헤비메탈 기타 소리를 심어두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스스로 밝혔듯 ‘세계 최초의 춤추는 얼터너티브 록그룹’을 3집에서 구현하는 데에 이른다. 그리고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를 결심하고 내놓은 마지막 4집 곡 ‘필승’에서 그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밴드 콘셉트를 연출, 가장 멋진 뮤직비디오를 남긴다. 난 이 노래를 통해 평생 꿈꾼 ‘쇼킹 핑크’ 염색의 헤어와 함께 ‘펑크록’이라는 새로운 음악 장르도 알게 됐다.
서태지와 아이들(Seotaiji and Boys) - 필승(Must Triumph) M/V
그리고 이듬해. 서울 홍대 근처 클럽 ‘드럭’에서 시작했다는 ‘조선 펑크’를 처음 듣고서 나는 사랑에 빠져버리고 만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필승’을 능가하는, 노래방 필살기 엔딩 곡. 내가 부를 때마다 “이게 무슨 노래예요?”라는 질문을 듣도록 만들었던 노래. 지금도 노래방에서 부르면 소파나 테이블 위에 올라가게 만드는 명곡.
그렇게 서태지에 이어 크라잉넛은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되었다.
‘산울림’ 김창완에서 크라잉넛으로 이어지는 의식의 흐름은 앞에서 언급했던 대로 ‘엉뚱한 도전’이라는 연결고리로 묶여있다. 서태지와 크라잉넛이 자신들의 노래를 통해 선보였던 ‘자기 분열적인’ 가사. 김창완의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에서는 유쾌하게, 그리고 노련하게 구현되기에 이른다.
산울림(Sanulim) -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이소라의 프로포즈] | KBS 19970315 방송
한편, 아쉽게도 최근엔 내 귀를 긁어대는 창의적 혁신의 음악을 찾기가 쉽지 않다. 2008년 국카스텐의 ‘거울’이 마지막이다. 오래전부터 가끔 찾아 듣는 이승환, 윤도현과 YB, 윤종신, 윤상, 박광현과는 다른 불편함. 거기서 비롯되는 경이로움. ‘거울’은 내게 그런 노래다.
지난 석 달 동안 21세기 K-pop이 연상시켜낸 20세기 월드뮤직 이야기를 펼쳐보았다. 그동안 살펴본 것처럼 한국 대중음악은 당대의 선진적인 ‘팝송(pop song)’이라는 외래의 것을 받아들이고 참고하면서 성장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청출어람을 이루어낸 K-pop이 앞으로도 동시대의 월드뮤직을 가로지르고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아로새기며 새로운 창의와 도전과 혁신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애호가 아저씨로서 계속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다시 딸과 그런 음악이 나왔다는 대화를 할 수 있길 소망한다. 그런 마음으로 ‘거울’을 소개해드리면서 이 음악 이야기, 행복하게 마친다.
[MV] Guckkasten(국카스텐) _ Mirror(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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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S를 환영합니다! ]
음악 평론가가 아니다 보니 행여 다른 견해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론은 언제든 댓글로 남겨주시면 다시 확인해서 꼭 답글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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