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볕이 좋은 주말,
결혼식을 가야 하는 부산함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옷장 깊숙한 곳의 정장과 잠시 눈을 맞춘다.
꽉 끼는 불편함보다 익숙한 편안함이 좋은 나이.
'중요한 자리에선 힘을 빼는 게 맞지.'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캐주얼 정장을 꺼내 입고 집을 나선다.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봄가을이면 주말의 부산스러움이 어색했는데,
제법 오랜만의 이 부산스러움은
예전만큼 설레거나 들뜨지는 않는다.
그저 익숙하게 구두끈을 묶는 기분처럼,
담담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서른셋을 기점으로 뜸해지던 청첩장은,
이제 정말 손에 꼽을 정도가 되었다.
나도 이쯤이면... 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그 '이쯤'이라는 계절을 아득히 지나쳐,
홀로 다른 시간에 서있다.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그저 각자의 시간이 다른 속도로 흘렀을 뿐이다.
지나간 것을 되돌릴 수 없음을 아는 나이가 되었기에,
아쉬움은 남을지언정 원망은 하지 않는다.
예식장에 도착하자
낯선 얼굴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예식장은 하객들로 북적였지만
익숙한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오기로 한 친구들을 기다리며
괜히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렸다.
출산을 앞두고,
혹은 아이 때문에,
직장 때문에 타지로 떠나거나...
우리는 이제
서로의 바쁨을 먼저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얼굴엔 못 보던 주름이 자리 잡았고,
살찔 일 없을 것 같던 친구의 배는
편안하게 솟아 있었다.
삶과 육아의 고단함이 새겨진 얼굴들.
반가움 끝에 찾아오는 이 감정의 이름은
아마, 거부할 수 없는 시간의 무게를
함께 확인하는 데서 오는 옅은 '서글픔'일 것이다.
식이 끝나고 사진 찍을 시간이 되자,
수많은 상념이 머리를 스친다.
우리는 다 모이지 못했지만,
우리를 대신해 와준 수많은 사람을 보니
친구가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도
잘 살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스친다.
만약 언젠가 내가 저 자리에 서게 된다면,
내 곁을 채워줄 친구는 몇이나 될까?
나는 과연, 저 자리에 설 수는 있을까?
플래시가 터지는 찰나의 순간,
우리는 어떻게 기억될까?
결혼식이 끝나고,
왁자지껄한 피로연장을 뒤로하고
먼저 식장을 나선다.
부서지는 가을 햇살 아래,
나는 다시 혼자가 된다.
친구의 가장 행복한 날,
나는 나의 가장 평범한 주말로 돌아간다.
나의 계절은 아직,
조금 다른 곳에 머물러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