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이 남긴 것
아버지가 떠난 뒤,
집 안에는 어머니와 나, 그리고 아홉 살 동생 —
세 사람의 숨소리만 남았다.
그 숨소리에는 늘 가난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남기고 간 빚을 갚기 위해
새벽마다 마을을 오가셨다.
어느 날은 밭일을 하고,
또 어느 날은 친구 집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셨다.
나는 그 사실이 부끄러워
그 식당 앞을 돌아서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미련하고
가장 마음 아픈 소년의 회피였다.
그 무렵 집안 형편은 나날이 어려워졌다.
학교 회비조차 내지 못해 선생님 앞에서 머뭇거렸고,
점심시간이 되면 교실에 남아 물만 마셨다.
결국 나는 여름방학이 되자
찐빵 가게에서 일하게 되었다.
갓 쪄낸 찐빵을 양동이에 담아 두 손으로 들고
고향 마을을 돌며 팔았다.
그때 고향의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내 형편을 알고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심부름 잘하고 말 잘 듣던 아이였으니까,
“희종이 왔나?” 하며 웃으며 맞아 주셨다.
찐빵값보다 훨씬 많은 돈을 쥐여주기도 하고,
쌀 한 되를 내어주시기도 했다.
그 따뜻한 마음이 어린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큰 위로였다.
그분들의 손길 덕분에
가난한 세상 속에서도 사람의 온기를 배웠다.
무겁고 덥고 힘들었지만,
그날 번 몇 푼의 돈을 어머니 손에 쥐어드릴 때
그 손끝의 떨림을 잊을 수 없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돈의 무게’와 ‘사랑의 무게’가 같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가난은 그날로 끝나지 않았다.
나는 어느 날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저도 형처럼 마산에 가서 돈 벌게요.
학교는 그만 다닐래요.”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숙이셨다.
그리고 조용히 눈물을 닦으며 말씀하셨다.
“희종아,
공부는 네가 아버지 대신 이 세상에 설 수 있는 길이야.
그 길을 놓치면 안 된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밤새 울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책을 폈다.
백열등 아래에서
지쳐 잠든 어머니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낡은 공책 위에 눌러쓴 글씨마다
내 다짐이 새겨졌다.
“없다는 건,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결핍은 나를 약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과 맞설 근육을 키워 주었다.
남의 도움을 기다리지 말 것,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것,
그리고 무엇이든 스스로 시작할 것.
그 가르침은 가난보다 오래 남았다.
“결핍은 나를 시험했지만,
포기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