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젊은 어머니의 단단한 침묵

마흔의 젊음이 단숨에 늙어버린 이유

by 황희종

아버지의 병환이 깊어지던 1971년 겨울, 집안의 공기는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어머니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 뒤에 숨어 있던 불안과 두려움은 어린 내가 보기에도 숨길 수 없을 만큼 선명했다.

그 무렵, 아버지의 몸은 더 이상 집에서 모실 수 없을 만큼 쇠약해졌다.

어머니는 결국 아버지를 모시고 고향 근처 이모님 댁으로 갔다.


마지막을 정리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어머니는 누구보다 먼저 알고 계셨던 것이다.

군북 집에는 나와 여동생만 남았다.

형과 누나는 이미 마산에서 각자의 삶을 꾸려가고 있었고,

집은 어느 날 갑자기 텅 빈 것처럼 조용해졌다.

겨울바람이 지붕을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만이 우리 집을 채웠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모님 댁에서 거의 석 달을 지내셨다.

그곳에서 어머니가 어떤 밤을 보냈을지,

얼마나 길고도 고된 시간을 견뎠을지

나는 나중에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마지막은 조용했다.

울음조차 제대로 삼키지 못한 채 지켜봐야 했던 그 순간,

어머니는 이모님과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 조용히 장례를 치렀다.

그 중요한 일을 자식들에게 곧바로 알리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머니 혼자서는 감당하기 벅찬 상황이었지만,

어린 우리를 불러 눈물과 슬픔 한가운데 세워두고 싶지 않은 마음.

그리고 이미 지쳐 버린 몸과 마음을 다시 일으켜

모든 절차를 이끌어야 하는 현실이 있었다.

그때 어머니의 나이는 고작 마흔이었다.

세상과 맞서기에는 여전히 젊은 나이였지만,

그 젊음은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그해 봄 단숨에 늙어버린 듯 보였다.

장례를 모두 마친 뒤에야 어머니는 우리에게 연락을 했다.

마산에 있던 형과 누나, 그리고 군북에서 기다리던 나와 여동생.

우리는 그제야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함께할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모든 일을 정리한 뒤 우리를 마주한 그 표정에는

서러움이나 통곡보다 더 깊은 고요가 있었다.

눈물은 이미 말라 있었고,

슬픔은 얼굴이 아니라 어깨의 무게로 내려앉아 있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사람이 단숨에 늙어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어머니가 젊음을 잃은 것은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가 한순간에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남기고 간 빚은 어떻게 갚을지,

어린 두 아이는 어떻게 키워야 할지,

앞으로 어떤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기댈 사람도 없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우리 앞에서

단 한 번도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어머니가 택한 방식이었다.

침묵으로 아이들을 지키고,

흔들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더 단단하게 세우는 방식.

어머니의 침묵은 포기도 체념도 아니었다.

그 침묵은 두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거대한 책임의 다른 표현이었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그 봄,

마흔의 젊음이 단숨에 늙어버린 이유는

바로 그 막막함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우리를 살려내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의 단단함이,

훗날 우리 가족을 다시 서게 만든

어머니만의 오래된 힘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어머니에 대하여 –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