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중 대신 기다림’, ‘불평 대신 등 너머의 기도’
어린 시절의 나는, 스스로 말하듯 착한 아이였다.
동네 어른들의 심부름을 마다하지 않았고,
어머니가 몸져누웠을 때는 밥을 짓고 집안을 정리하며
동생을 돌보는 일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아버지가 편찮아
어머니와 함께 이모님 댁으로 가 계시던 동안에도
나는 동생의 손을 잡고 학교에 다녔다.
그 시절의 나는,
어른들이 기대하는 ‘말 잘 듣는 아이’의 범주 안에 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내 마음속에는 말로 표현하지 못한 반항과 복잡한 감정이 쌓여갔다.
겉으로는 얌전했지만 속으로는 묻고 싶은 말이 많았고,
이해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혼자 끓어오르던 시간들도 있었다.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그 감정은 처음으로 밖으로 터져 나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맞은 첫 여름은 유난히도 뜨거웠다.
군북에서는 마땅한 일거리를 찾지 못한 어머니가
고성에 있는 외가로 가 보름이 넘도록 일을 하고 돌아오셨다.
오랜만에 마주한 어머니의 얼굴은 검게 그을려 있었고
몸은 눈에 띄게 여위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내 마음속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졌다.
그날 저녁, 나는 책을 집어 던지며 말했다.
이제 공부하지 않겠다고.
더는 어머니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며
책상 앞에 앉아 있을 수 없다고.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나를 꾸짖지 않았다.
화를 내지도 않았다.
대신 나를 붙잡고
아이처럼 울었다.
“내가 왜 이렇게 사는지 아느냐.”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지 아느냐.”
그 말 속에는
분노도, 원망도 없었다.
오직 간절함만이 있었다.
“네가 공부를 포기하고 공장에 가서 기술을 배우면,
그게 정말 나를 편하게 해 줄 것 같으냐.”
“그 돈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겠느냐.”
그날 어머니는 내 선택을 꾸짖지 않았고
나의 말을 억지로 꺾지도 않았다.
대신,
자신의 삶을 걸고 지켜온 이유를
눈물로 보여주었다.
그것이 어머니의 방식이었다.
꾸중 대신 기다림. 불평 대신, 아이의 등을 바라보며 올리는 기도.
어머니는 아이를 이기려 하지 않았다.
아이보다 앞서 서서 끌고 가지도 않았다.
다만,
아이가 스스로 길을 잃지 않도록
뒤에서 오래 바라보고,
끝까지 믿어주는 쪽을 선택했다.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한 번도
“너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대신 “그래도 네 길은 놓지 마라”는 마음을
삶으로 반복해 보여주었다.
그 기다림과 침묵, 그리고 등 너머에서 흘렸을
수많은 기도들이
결국 나를 지금의 자리까지 데려왔다는 것을
나는 아주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