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빨간 중년기 02

두레박

by 코 빨간 중년

초대되지도 않은 주제에 일상에서 불쑥 얼굴을 들이미는 유년기의 어렴풋한 기억들이 몇 개 있다. 사람, 사물 혹은 특정한 상황의 단면들, 전체 맥락이 아닌 뜨문뜨문 희미하게 폴라로이드처럼 인화되는 기억들 말이다. 어떤 이유로 불특정 장면들이 무작위로 나타나는지 알 수 없지만, 문득 떠오른 기억들은 달궈진 물에 라면수프를 넣을 때처럼 급히 울컥했다가 이내 사그라든다. 하지만 물 떼는 계속해서 겹겹이 쌓여간다.


집에 한 대뿐인 자전거를 먼저 타겠다고 잽싸게 타고 도망가는 나를 쫓아오던 약이 오른 형이라든지, 지금과는 달리 애틋했던 국민학교와 중학교 시절 우리 남매에 대한 기억이라든지, 혹은 부모님 모르게 사생대회를 나가기 위해 창문 밖으로 아트백을 미리 던져놓고 맨 몸으로 마실 가는 척했던 것들.





많은 친척들이 할머니 집에(할아버지 집이기도 하지만)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으니 명절이었을 거라고 추측되는, 몽타주같은 기억 역시 기별도 없이 찾아와 영사기를 비춘다.


부산에서 먼 걸음을 하신 고모가 배탈이 난 나의 배를 문질러 주던 걸로 봐서는 그 추측은 틀리지 않다. 탈무드의 여우가 터무니없이 차례 음식을 배속에 부어 넣은 탓에 배탈이 난 것이다. 당시 울진에서 부산까지 6시간 이상 걸릴 만큼 멀고 험난해서 만남이 잦지는 않았고 고모에 대한 기억도 딱히 많지 않지만, 내 손은 약손이라고 주문을 외며 내 배를 정성껏 문질러 주던 누렇고 투박한 손의 온기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아버지와 고모는 남매들 사이에서 유독 각별했고, 이러한 흐름 속에 가족들도 모두 고모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흔한 스케줄은 아니었지만, 성인이 된 후에도 부산 갈 일이 있으면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들르곤 했다.

사촌 누나, 형은 또래도 아닌 데다 자주 볼 기회가 없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애틋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병원 터줏대감이 돼버린 안색이 좋지 않은 고모를 보고 있자면 그리 유쾌한 기분이 드는 건 아니라서 연락이 뜸해졌고, 찾아뵈야겠다는 생각 역시 부글부글 끓었다가 이내 사그라드는 바람에 눈 몇 번 깜빡임으로 세월은 하염없이 흘러가버렸다. 한 번이라도 연락을 드려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연거푸 떠오르는 것 중에 하나는 작은 아버지가 나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집에 데려다주던 기억인데, 조부모께서는 같은 동네 작은 아버지네 가족과 한 지붕 아래에서 지내셨고, 또래의 사촌들 또한 자주 어울렸던 사이라 틈만 나면 들러 시간을 때웠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어머니의 잔소리가 이명을 유발할 때면, 다른 엄마와 뒤바뀌길 간절히 바라던 환상 속에서 철없던 어린놈의 유일한 피난처는 할머니와 사촌들이었다. 집에 가기 싫은 마음에 버팅기다 보면 어김없이 어머니의 독촉 전화가 걸려왔고, 한 밤중에 나는 작은 아버지 앞 오일탱크에 매달려 체포된 잡범의 심정으로 끌려갔다.






당시에는 비극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희극, 고작 촌극에 가까운 이야기일 뿐이지만, 그것들은 해가 갈수록 듬성해지고 흩날리는 탓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기억은 많지 않다. 부옇게 남은 자국만이라도 붙들어 두고 싶은 심정에 남은 기억을 애써 긁어모으는 건 여성호르몬을 더욱 마찰시키고 부추기기만 할 뿐이다. 더불어 나이가 들수록 늘어만 가는 애주가의 내장 지방은 더 큰 악순환의 굴렁쇠를 요구한다. 우리의 내장 지방에는 유독 우리의 소중한 남성호르몬을 훔쳐가는 잡범이자 상습범이 살고 있다고 하지 않나. 눈에 먼지가 들어간 것처럼 행동하게 만든다.


불혹, 즉 미혹되지 않는 나이에서 수년이 더 지난 지금, 물론 공자의 불혹처럼 성숙해졌는가는 의문이지만, 소문으로만 듣던 감수성은 분명 불혹을 넘으면서 튕기듯이 치솟고, 그대로 고착된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이라고 둘러댄다. 영화를 보면서도 책을 읽으면서도 짤막한 사연을 보거나 들으면서도 주체할 수 없는 감수성이 울컥하고 터져 나온다. 혼자뿐일 때는 옆구리에 곽티슈를 끼고 있겠지만, 옆에 누구라도 있다 치면 뻐근한 척 기지개를 켜고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고개를 뒤로 젖힐 수밖에 없다. 기억의 습도가 높아지는 나이다.


테스토스테론의 감소와 안구건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노안도 포함해서), 앞서 얘기한 겹겹이 쌓인 기억의 파편들이 눈물샘을 퍼 올리는 두레박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나 미생의 장그래에게 나를 투영하고 대리로 만족을 하지만, 나의 데이터베이스에 축적되지 않은 인물에게는 감정 이입이 쉽지 않다. 한 켠에 새겨진 사실 혹은 진실 그리고 냄새, 온도, 모든 감정과 육감들은 기억의 이정표가 되어 나의 정체성을 몰아댄다. 제 멋대로인 레고 조각들이 멋대로 맞물려 가며 각자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완성해 간다.


그래서 각자의 입맛과 미의 기준은 다른가 보다. 신념도 다르고 목표도 다르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 그 모든 것을 뭉뚱그려 취향이나 성향이라고 약속하지만, 친한 사이라고 해서 그것을 쉽게 인정해주진 않더라는 것이고, 자신의 고결한 성향을 이해 못 하니 상대를 바보취급 하기도 한다. 그들에 대응이라도 하듯 나 역시 혹자들을 비난하기에 이른다.




'아니 그러니까 나는 여전히 '테토 남'이라니까, 이해가 안 되시나??'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네'



비록 '에겐 남'에게 잠식될지언정 기억의 마찰은 아직도 나를 뜨겁게 달구는 것이라 여긴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