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빨간 중년기 03

펭귄

by 코 빨간 중년

때로는 걷거나 가볍게 제자리 뜀을 하는, 산보에 가까운 운동을 새벽 한 시간가량 하게 되었는데, 일주일이면 상해버린 잔반처럼 채수망에 버려져야 할 다짐이 예상과 달리 한 달을 지나, 두 달을 훌쩍 넘어가고 있다.

(글을 쓴 지 몇 달이 지났고 현재는 다섯 달째 유지 중이라고 자랑삼아 첨언한다)


나와의 약속이라고 해서 거창한 마음을 먹지도 않았고 마음먹은 대로 쉽게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약속이나 계약은 파기하라고 존재하는 이유 또한 없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무덤을 파는 약속 따위는 애초에 할 이유조차 없었다. 일단 대충 옷이라도 여미고 나가 보기로 했다. 의미 없이 문 앞까지만 이라도 좋으니 작심삼일로 마음을 먹어보자 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던데, 그 시작은 마음을 먹는 것, 마음을 먹고 결심하는 순간 뇌의 세포가 재배열된다고 하니 한번 믿어보자 했다.





구보라는 것은 레저의 범위에 들지도 않고, 프루스트의 소설만큼이나 재미도 없어서 진도를 빼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최근 영하를 한참 밑도는 추위에도 방한 용품을 자루처럼 뒤집어쓰고 온몸을 감싼 펭귄처럼 뒤뚱거리며 중랑천으로 향했다. 목표했던 바와는 달리(컨디션 난조를 보인 며칠을 제외하고) 운이 좋게도 제법 가학적으로 인내심을 발휘하는 중인데, 특별한 다짐도 없이 무의식으로 몽유병 환자처럼 집을 나서고 있다.

약속도 아니고, 딱히 다짐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수준인데 곱씹어보자면, 신변에 여러 가지 굉장히 우려스러운 상황이 많았고 현재도 진행 중인 상황에서 나를 좀먹어가는 무력감만이라도 해소하고 싶었다. 매일을 스스로 합리화하는 것이 부끄러웠고, 핑곗거리를 더 이상은 주고 싶지 않았던 이유들이 우연히 혹은 필연적인 과정이 되어 오늘은 그래도 뛰어볼 만한 추위라고 되뇐다.



과유불급으로 의지가 한풀 꺾이는 지점이 찾아온 것은 청중(독자들, 그러니까 당신들)의 기대를 저버리기 싫었던 탓이다. 그건 내 탓이 아니다.

두 달이 다 되어갈 즈음, 아마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이하던 시점, 물론 그것이 나에게 특별함으로 다가오지도 않았고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날들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소외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약속이 부쩍 늘고 지방으로의 이동이 많아졌다. 나만 빼고 재밌는 것 또한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태함의 감시망이 허술할 때 산책을 하거나, 이동 중에 최대한 모로 돌아다니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었다. 추후에 언급할 '슬픈 소식들'이 뒤따른 탓도 있다.

더불어, 애초에 처음부터 너무 많은 것에 과한 욕심을 담아 시작한 덕분에, '네 마음만 마음이냐, 내 마음도 마음이다'라는 식으로 자신과의 싸움에서 누가 지든 그게 나라는 것을 깨닫고, 다른 것들 또한 잠시 외딴 정거장에 정차해야만 했다.


그러면서 자책했다. 이 나이 먹도록, 고작 이 정도 몰아세웠다고 나약하게 무너지는 꼴이라니.

글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영어공부도 그 지점에서 다를 바 없이 회차 구간에 들어섰다.

꽉 막힌 사내가 많은 짐을 한 번에 옮겨보겠다고 손톱 끝까지 사용한 짓이 스스로에게 과한 짐을 지우는 행위라는 걸 그토록 수도 없이 반복해 오면서 왜 모른 척했을까? 이미 중년이 돼버린 나를 굳이 왜 이런 난처함으로 몰아넣은 걸까?







택배 박스를 뜯을 때 그런 적이 많다.

박스에 붙어 있는 비닐 테이프가 언뜻 보기에는 하찮아 보여도 막상 손 끝으로 당겨 뜯으려 하면 늘어지기만 할 뿐 소심줄처럼 완강히 버티면서 쉽사리 내용물을 건네주지 않는다. 열쇠나 볼펜 같은 삐죽한 것이라도 있으면 해결될 일인데, 나의 삐죽함으로는 해결이 되지도 않고, 건방진 테이프 따위라서 짜증만 날 뿐이고, 그 사소한 것 따위에 이성을 잃고 오기와 객기를 부린다. '아니 뭐 이런 ㅅ...'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방관하던 사소한 것들, 스스로 지는 부담이고 고집일 뿐이다.


캠핑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마찬가지로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본인 일 수도 있고, 남자(사람) 친구나 남편일지도 모른다. 성급하지만 대부분의 남성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짐을 한 번에 옮기지 못하면 자존심이 상하는 것일 수도 있고, 조금 남은 것들 따위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 수고로움은 비효율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모닥불처럼 고집을 피워야만 하는 남자의 사명감 같은 것이 분명히 있다. 내가 여느 캠핑족처럼 풀세팅 장비가 아닌 백팩킹을 추구하는 이유다. 다만, 일어서거나 걷기도 힘들 정도의 백(만킬로)팩킹이라는 게 나의 함정같은 고집이다.



제발 조금만 부담을 덜어내자.

다만, 이 짓궂은 어깃장이 헛된 시간이라는 생각은 하지 말자.

가끔 포기하면 오히려 편하다는 걸, '알면' 됐다.

앞으로 남은 나의 인생의 표면은 더욱 거칠어질 것이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