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빨간 중년기 01

씨나락 파수꾼

by 코 빨간 중년

나는 흠이 많은 사람이다.


몇 년 사이 10년간의 결혼 생활을 청산했고 이후에는 하던 사업이 위태해져 빚이 많아졌고 애석하게도 생의 정점인 반평생의 고개를 넘어 노을이 지는 나이임에도 여전히 완고한 성격의 소유자다. 통풍과 고혈압은 덤이다. 하지만 몇 번을 복기해 보아도 털 끝 하나 부끄럽지 않은 인생이었다. 발이 넓은 편은 아니라서 친구도 많지 않지만, 나이가 들수록 소중한 친구 몇 명이면 충분하다는 말로 위안 삼는다. 그럼에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마음이 위축되어 주저앉아버린 건 인정한다. 노안을 처음 맞닥뜨린 충격과 동시에 의욕마저 중천을 지나 저물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글을 쓰게 됐다.





우울해서 책을 샀다. 우울해서 빵을 사는 사람처럼 책을 샀다. (한국에서 만큼은) 빵보다 저렴하지만 양질의 양식을 제공한다. 빵 대신 책을 샀느냐와는 별개로 빵도 샀다. 빵을 좋아하지 않지만 모든 음식이 그러하듯 맛있는 빵은 맛있다. 특히 식감과 향이 좋은 빵을 차와 함께 먹으면 코평수가 넓어지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표지와 첫 장을 넘겨 머리글을 먼저 읽어보지만, 암막 커튼이라도 쳐졌는지 글귀가 눈에 썩, 잘 들어오지 않았다. 과호흡인척 숨을 고르고 나를 달래 본다. '안괜찮으면 어쩔건데?' 서걱거리는 종잇장을 비비듯 넘기던 기억을 디딤 삼아서 점자처럼 더듬어 내려갔다. 10년이 넘도록 시름하면서도 '모비딕'과 '자메이카의 열풍' 그리고 '핏빛 자오선'같은 고전들은 결국 다 읽지 못했지만(나만 그런가?) 아직은 알지 못하는 언젠가 다 읽어보리라 다짐하면서 이번엔 오로지 내 취향에 특화된 책들로만 선별했다.


이름을 외는 작가는 많지 않다. '존 르 카레, 스티븐 킹, 제인 오스틴, 존 그리샴, 무라카미 하루키, 교고쿠 나츠히코, 다니자키 준이치로'처럼 유명인들 뿐이라서 특별히 나의 유식함을 뽐낼만한 작가는 없다. 그마저도 아는 척해보려 했지만 줄줄이 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작가인지 기억해 내는 정도가 고작이다. 최근에 '에이모 토울스'가 추가로 목록에 올랐다. '테이블 포 투'에서 관심이 생겼고, '모스크바의 신사'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는 안달이 난 팬이 되어 있었다. 인생에서 한정적이라는 작가의 필력을 이 한 권에 통으로 갈아 넣었는지, 아니면 맷돌을 감는 솜씨가 좋은 사람인지, 자판기 속에 걸려있던 나의 욕구를 간절한 심정으로 쿵쿵 쳐대며 흔들었고 결국 배출구 아래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를 꺼내 들고 말았다.





씨나락이라고 해서 다음 해 벼농사를 위해 남겨둔 볍씨를, 본인의 안위는 살피지 않고 아사한 사람이 죽은 다음 귀신이 되어서야 아껴뒀던 나락을 먹는다는, 의미 없고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일러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한다. 우울한 시기에 평소와는 달리 느긋하게 곱씹으며 읽었던 열몇 권의 책들은 나에게 씨나락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증명할 수는 없는 이유들로 늪이나 다름없던 우울감에서 기어 나와 본인에 대한 애정을 차츰 키워가고 있다. 그 차츰이라는 정도가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은 정도로 미미하지만 말 그대로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을테니, 물을 뿌리고 가지치기를 하며 나를 돌본다. 오해하지 않게 짚고 넘어가자면 목숨보다 귀히 여긴 씨나락처럼 소중하다는 것이지 죽어서 노잣돈과 함께 챙겨가겠다는 말은 아니다. 그것이야 말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다.


나를 투영하고 되돌아보는 의미에서 지금도 한 달에 두어 권씩 읽어 내려간다. '하트로커'에서 고구마 줄기처럼 끌려나오는 지뢰밭의 연쇄 작용으로 운동을 시작했고, 영어 공부도 시작해 본다. 여유가 조금 더 생긴다면 취미 삼아 기타든 피아노든 악기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다. 미국의 중산층 기준에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말도 있잖은가. 물론, 중산층인 척하고 싶은 마음에 무리하게 상급지 아파트로 갈아타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돈이든 시간의 여유든 그런 마음이 생긴 것 정도라고 해두자.


훌륭한 배우일수록 스펙트럼을 방대하게 넓혀가듯이, 비록 내가 배우도 아니고 한 분야의 존경받는 사람은 아니지만, 견문을 넓히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차오른다. 거창한 결과를 가져오진 않을 것이고 지나가는 소소한 일상의 일탈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어울리 않는 옷을 너무 오래 입고 있었다는 생각에 젖어들었다. 내 말을 듣고 있던 '입만 살아있는 녀석'은 근 20년 동안 해온 일이 이제 와서 안 맞느냐며 타박한다.


결과가 비참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이제야 말로 그 옷을 벗어던지겠다는 결심을 다지고 있다. 실제로 과감하게 그러고 있다. 아니, 그러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글을 쓰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혼잣말로 하는 '고백(go back)'이고 향을 돋우는 마늘'다짐'이다. 입맛이 돌기 직전이다. 나는 내일 스피노자의 상큼한 사과나무를 심을 것이다.






-추신-

'씻나락'이 표준어라는 것은 맞춤법을 점검하는 와중에 찾아봐서 알고 있지만 '씨나락'이 더 입에 붙는다. 나는 굉장히 소심한 사람이라 조롱 방지 차원에서 덧붙인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