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으로 멈춘 시간을 의도된 쉼으로 파는 법
오늘은 10년이 넘는 경력을 가진 한 서비스 기획자의 이력서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처음 봤을 때는 10년의 연륜이 느껴지는 탄탄한 이력서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경험들을 시간 순서대로 천천히 따라가다 보니, 안정적인 시기 뒤에 찾아온 몇 번의 흔들림과 커다란 공백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이 이력서는 판단하기가 정말 애매합니다. 10년 경력은 좋은데, 타임라인이 이상해요. 정규직으로만 줄곧 근무를 했는데, 2개월, 3개월만 근무한 이력이 있습니다. 조직에 적응을 못한 걸까요? 그러다 다시 3년 안정적으로 다닌 건 괜찮아 보이는데...
가장 큰 문제는 지금입니다. 최근에 퇴사하고 지금까지 거의 2년 가까운 공백이 있어요. 이 공백에 대한 설명이 단 한 줄도 없습니다. 10년 경력자가 2년 가까이 쉬었다? 이건 치명적인 공백입니다. 이력만으로는 이 분이 다시 감을 찾을 수 있을지, 왜 이렇게 오래 쉬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눈에 띄는 강점들
사용자 중심이라는 명확한 기획 철학
자기소개서에서 "내가 사용자라면?"이라는 질문에서 기획을 시작한다는 점을 명확히 밝혔습니다. 이는 10년간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을 정립했음을 보여줍니다.
Full-Cycle 프로젝트 경험
쇼핑몰 구축 프로젝트를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로 꼽으며, 사용자 설문조사부터 요구사항 정의, 구축, QA까지 전 과정을 경험했음을 어필했습니다.
폭넓은 산업 도메인 경험
금융, 공공기관, 커머스, 교통 등 다양한 산업을 경험하며 높은 적응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쉬운 지점들
설명되지 않은 2년의 치명적인 공백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최근 퇴사 후 지금까지 약 2년 간의 경력 공백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었습니다.
짧은 근속 기간
안정적인 경력 중간에 2개월, 3개월 만에 퇴사한 기록은 커리어의 안정성에 의구심을 갖게 만듭니다.
역할 나열 중심의 경력 기술
'OOO 고도화 구축', 'OOO 홈페이지 개편' 등 프로젝트명은 나열되어 있으나, 정작 본인이 각 프로젝트에서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떤 기여를 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그의 한마디 :
"처음 7년은 정말 쉬지 않고 달렸어요. 그런데 8년 차에 좀 흔들렸고, 마지막 회사를 나오고 나서는 솔직히 번아웃이 왔어요. 거의 2년을 쉬었는데, 이 공백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감이 떨어졌다', '이제 일하기 싫은가 보다'라고 생각할까 봐 이력서 내는 것 자체가 두려워요."
경력 사항을 시간순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OO회사 기획/마케팅 (3년)
□□회사 기획 (4년)
△△회사 기획 (2개월)
☆☆회사 기획 (3개월)
◇◇회사 기획 (3년)
(약 2년 간의 공백)
이 정보만 놓고 보면, 불안정한 시기와 현재의 치명적인 공백 때문에 10년의 경력이 오히려 약점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출발기 (2013~2015) - 마케팅을 이해하는 기획자로 출발
첫 회사에서 단순 기획이 아닌 온라인 마케팅 기획 및 운영을 함께 경험했습니다. 이는 '어떻게 만들까'를 넘어 '왜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비즈니스 관점을 갖춘 기획자로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성장기 (2016~2019) - 에이전시 핵심 기획자로의 도약
에이전시에서 4년 가까이 근무하며 굵직한 금융, 커머스, 교통 프로젝트를 이끌며, 기획자로서의 전성기를 보냈습니다.
탐색기 (2020) - 방황이 아닌 탐색의 시기
4년간의 성장기를 거친 후, 2개월, 3개월의 짧은 경력을 거쳤습니다. 이는 끈기 부족이 아니라, 에이전시를 넘어 자신에게 맞는 새로운 환경(SI, 인하우스 등)을 찾기 위한 전략적 탐색의 과정으로 재해석할 수 있습니다.
안정기 (2021~2023) - 공공기관이라는 새로운 전문성 확보
SI회사에서 3년 근무하며 공공기관 프로젝트를 다수 수행했습니다. 이는 탐색기를 거쳐 새로운 전문 분야에 성공적으로 안착했음을 보여줍니다.
휴식기 (2024~현재) – 공백이 아닌 의도적인 쉼
10년 넘게 쉼 없이 달려온 후 맞이한 2년의 공백. 이는 경력 단절이 아니라, 다음 도약을 위한 전략적 휴식이자 재충전의 시간으로 정의했습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경력을 다시 읽자, 약점처럼 보였던 특징들이 강력한 메시지로 바뀌었습니다.
전환 - 마케터에서 기획자로 시야를 넓힌 출발
이 분의 커리어는 단순 기획이 아닌 마케팅 기획에서 시작합니다. 이는 기획 단계부터 비즈니스 성과와 사용자 유입을 고민할 수 있다는 차별점으로 다른 기획자들과 구별되는 강력한 전환의 서사입니다.
단절 - 방황이 아닌 전략적 탐색
가장 불안해 보였던 2020년의 짧은 경력들(2개월, 3개월)은 4년의 긴 근무 후에 찾아온 단절입니다. 이는 방황이 아니라 자신의 전문성을 확장하기 위해 새로운 환경을 적극적으로 탐색했다는 능동적인 단절의 서사로 읽힙니다.
공백 - 경력 단절이 아닌 의도적인 쉼
10년 넘게 치열하게 프로젝트를 수행한 후 맞이한 2년의 공백은 번아웃을 극복하고 다음 커리어를 준비하기 위한 의도적인 쉼입니다. 이는 완주를 위해 잠시 멈춰 호흡을 고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 공백은 실패가 아니라 10년의 경력을 돌아보고, 새로운 에너지를 채우는 전략적 공백입니다.
그의 한마디 :
"10년 넘게 일했는데 2년 쉬었다는 게 제 발목을 잡았어요. 다시 못 돌아갈까 봐 두려웠죠. 하지만 이 공백이 의도적인 쉼이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달라졌어요. 방황처럼 보였던 2020년도, 마케팅으로 시작했던 첫 경력도 모두 지금의 저를 만든 과정이었네요. 이젠 제 10년의 경력을 그리고 쉼을 당당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력서를 타임라인 위에 올려놓는 작업은 흩어진 경험의 조각들을 시간이라는 실로 꿰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잦은 이직과 치명적인 공백으로 경력이 단절된 기획자로 보였던 이력서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재구성하자, 마케팅 관점을 갖춘 10년 차 기획 전문가가 전략적 탐색기를 거쳐 전문성을 다진 후, 다음 도약을 위해 의도적인 휴식기를 갖고 새롭게 출발하는 베테랑 기획자의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이 모든 공백을 정당화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서 직무와 관련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공백, 특히 6개월이 넘어가는 공백은 시장에서 매우 위험한 신호로 읽힙니다. 치열한 경력을 바탕으로 한 의도적인 자기계발이었음을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공백은 단점이 아닌 서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력서를 다시 읽으면, 당신의 커리어는 더 이상 단순한 나열이 아닌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