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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태도가 되고 있다.

분노조절 실패로 인한 사고

by 꽃피랑

사회생활을 할 때 감정이 태도로 연결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조언을 많이 듣는다.

사실은 두렵지만 그렇지 않은 척, 싫어도 피할 수 없기에 적당히 지내는 것이 사회생활의 지혜이다.


나 역시 회사에서 인간관계보다는 일을 중시하기 때문에 친해질 수 있으면 좋지만 아님 말고.

이런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지켜본 다음, 말과 행동이 똑같고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될 때만

조금씩 마음을 여는 편이다.


하지만 요즘은 아무리 노력해도 의원들에 대한 감정을 숨길 수가 없다.

10시 회의인데 11시가 되어도 자느라 전화도 안 받고 나타나지 않다가

점심 먹을 겸, 12시 쯤 나타나 점심만 먹고 다시 집으로 가는 의원,

심지어 그는 저녁 6시쯤 의회로 다시 돌아와서 45,000원짜리 전가복을 시켜달라고 요구했다.

예산심의 때는 부서에 예산을 낭비한다며 호통을 치면서 본인은 연찬회, 연구 관련 시찰 등의 명목으로

외유성으로 놀러 가서 세금으로 밥이나 먹고 수다 떨고 돌아오는 의원 등등

이 정도면 거의 밥먹으러 의정활동을 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런 사람들을 2년 넘게 보고 있으려니 때때로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리고 이런 감정이 업무에도 영향을 미쳐서 얼마 전,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를 덮기 위해서 쓸모도 없는 조례들을 만든 다음, 보도자료를 써 달라는 의원이 있었다. 쓰면서도 마음속에 불만이 스멀스멀 피어났고 잘 써주고 싶은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챗 GPT로 대충 보도자료를 써서 의원님께 검토해 달라고 보냈다. 그는 자신의 업적들을 추가하고 별 것도 아닌 조례의 의미를 구구절절 미화하는 내용을 잔뜩 넣었다. 그리고는 얼굴을 날렵하게 포토샵 한 사진과 함께 언론사에 배포해 달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대충 홍보팀에 파일을 넘기고 퇴근했는데 저녁 늦게 팀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지연 씨, 아까 보도자료 보냈어요?"

"네. 무슨 일이실까요?"

"의원님에게 전화가 왔는데 기사 나간 게, 최종파일이 아니라 지연 씨가 쓴 초안이라고 하시네요?"

"네?... 바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네. 내일 의원님 뵈면 죄송하다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죄송합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무리 의원이 싫어도 그렇지.

파일을 잘못 보내는 초보적인 실수를 하다니.'

스스로 한심하면서도 이 기사를 보고 노발대발했을 의원을 생각하니 쌤통이다.


내일 아침에 만나면 90도로 허리 숙여서 정중하게 사과하지 뭐. 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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