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스트레스는 나의 가장 비싼 부업이었다

7. 스트레스를 만드는 세 가지 거짓말 : 완벽주의, 비교, 불확실성

by 무념

이전 챕터 들에서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외부 요인들에 대해 논해 보았다. 부당함과 불안함, 직장에서의 빨리빨리와 수직문화, 집 밖에서 스트레스받으며 일하는 가장 등등 많은 외부 요인들이 있지만 내부 요인에서 기인한 스트레스는 없는 것일까?


완벽주의, 비교, 불확실성은 회사나 사회가 아닌 '내가 나에게 스트레스를 요구하는 세 가지 거짓말'이다. 그동안 스트레스의 원인을 논할 때 그 원인을 나 스스로에게 찾기보다는 회사나 사회 같은 외부적 환경에서 오는 것으로 인지하고 그에 따른 해답을 이끌어내 보고자 했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무의식적인 보상을 얻기 위해 스스로를 중독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심지어 어떤 관점에서는 외부로부터 받는 스트레스에 준하거나 그 이상으로 심각한 스트레스 발아 요소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런 내부로부터의 성찰 및 원인고찰 없이 스트레스의 본질에 다가서고자 한다면 반 쪽짜리 해결책이 되는 것이다. 이번 챕터에서는 이 세 가지 심리적 경향을 '극복해야 할 감정'으로 보지 않고 '해체해야 할 논리적 오류'로 규정하는 관점의 전환에서 시작하려 한다.



- 완벽주의는 '가장 비효율적인 낭비' 다.

당연한 얘기지만 완벽한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완벽한 결과를 낼 수 있으면 당연히 그것이 바람직한 것이고 좋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 중 맡게 된 크고 작은 일에 대해 가슴에 손을 얹고 '난 이 일을 완벽하게 해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결과를 언제나 늘 도출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면 아무리 쉬운 시험이라도 단 한 개의 실수도 없이 100점을 받기란 쉽지만은 않았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사람은 어찌 보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완벽을 추구하는 생물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만큼 매사에 늘 완벽하기는 쉽지 않지만 언제나 완벽을 요구받고 있는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결과물을 세상에 제출하기가 두렵다. 이 정도면 객관적으로 누가 봐도 훌륭하다 말할 정도의 결과물을 도출해 냈지만 아주 작은 실수 하나조차 하고 싶지 않아서 신중을 기하고 또 기한다. 이 것은 자격증 시험으로 비유하자면 커트라인이 70점인 자격증 시험에서 70점이어도 통과이고 71점이어도 통과인데 굳이 95점 100점을 받겠다고 필요이상의 노력을 기해 스트레스를 사서 받는 것이다. 물론 100점을 받을 정도로 공부하면 조금의 실수가 가미되더라도 여유롭게 통과할 수 있고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여기서 내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100점을 받을 정도로 시간과 정신건강과 다른 모든 기회비용을 다 갈아 넣어 공부하는 것보다는, 80점 정도 받을 수 있는 수준으로 전략적으로 접근했으면 해결되는 것을 20%의 무의미한 에너지까지 쏟아부어 낭비하는 것에 대해 언급하고자 함이다.


또한 완벽주의는 '시작 회피'라는 방패이다. 직장인이라면 다들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보았을 법한 유튜버, 작가, 부업 등등을 현재 당신이 하고 있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정답은 완벽주의이다.

유튜브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화려한 썸네일들과 엄청난 구독자수를 가진 철옹성 같은 유튜버들, 서점에 가면 이미 출판되어 있는 수 없이 많은 책들은 당신이 현재 그 길을 걷지 않고 있는다는 사실에 대한 가장 우아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완벽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고 내가 그 길을 걸어가 봤자 욕먹고 실패할 것이다라는 생각은 사실은 완벽주의에서 기반한 것이다. 실패와 비판이 두려워 행동 자체를 시작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의 고통을 피하고 최소화하기 위해 비효율적인 지연을 택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한 우리의 목표는 완벽이 아니라 '마감 기한 내의 최고 효율'이다.



- 비교는 '가장 쓸데없는 데이터 분석'이다.

사람의 본질은 남과 비교하기 좋아하는 것이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우월감도 열등감도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 우월감도 있고 열등감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 대부분은 남들과 비교하면서 우월감보다는 열등감을, 혹은 열등감 까지는 아니더라도 딱히 남들보다 화려하지는 않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면서 SNS 속 화려한 타인의 모습들을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나도 저렇게 한 번 살아봤으면..' 하면서 보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 없이 많은 정보와 데이터를 접하고 끊임없이 그 정보를 분석하면서 다음에 옮길 행동의 근거로 삼는다. 그중에는 당연히 유용한 데이터도 있고 정말 아무 쓸모도 없어서 없는 것이 더 나을 정도의 데이터도 있다. 당신이 지나가면서 우연히 듣든 자발적으로 SNS 등을 켜서 눌러 들어가서 듣든을 떠나 타인의 정보가 당신의 삶에 영향을 준다면 엄밀히 말해 그것은 '쓸모없는 데이터'이다.

내 삶의 속도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남들이 20살의 나이에 건물을 사고 스포츠카를 끌고 다니든, 80세 나이에 폐지를 줍고 리어카를 끌고 다니든 엄밀히 말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도 모르게 '내 나이는 몇 살에 무엇을 하고 있는데 이 사람은 몇 살에 무엇을 하고 있구나' 라며 남들을 보며 부러움을 느끼기도 위안을 얻기도 한다. 나는 회사에서는 별 볼일 없는 직급으로 회사에 애정도 미련도 없어 하루하루 주어진 일이나 수동적으로, 그러나 성격상 결코 대충대충 하지 못하고 효율적으로 열심히 빨리하고 칼퇴해 나를 기다리는 가정으로 달려간다. 가족들과 행복한 저녁시간을 보내고 밤늦게 운동을 하러 가면 그 도장에서의 나는 회사로 따지면 부지점장이나 차장 같은 비교적 높은 축에 속하는 가르쳐주는 위치에 서서 초보 회원들을 지도해 주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고 온 힘을 다해 땀 흘려 운동한다. 집에 돌아오면 씻고 집안에서의 내 할 일을 하고 짧게라도 글을 쓰거나 내일 쓸 글의 아우트라인을 잡아놓는다. 40을 바라보는 나이에 별 볼일 없는 직급인 나는 30 초반에 승진한 사람에 비하면 실패한 인생인가? 나에겐 언제나 나에게 따뜻한 가정과 자녀들이 있고 스트레스를 풀 취미와 개인활동이 있고 많이 비싸진 않고 대출도 껴 있지만 내 집도 있다. 나에겐 나만의 성장 속도가 있고 데이터 측정은 오직 나만의 기준으로 내가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서의 성장률만을 유효한 데이터로 인정하고 측정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비교는 '노력 회피'의 방패이다. 타인과의 비교는 당신에게 '이미 너무 늦었다' 거나 '나와는 클래스가 다르다'와 같은 결론을 내리게 하여 새로운 노력과 학습을 포기하게 만든다. 이런 노력회피의 방패 뒤에 숨은 당신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결론을 스스로 내고 편안하게 합리화하며 현실에 안주해 버리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당신이 비교하는 타인의 데이터는 당신의 통제영역 밖에 있는 쓰레기 데이터이며 당신의 목표와 비교대상은 언제나 과거의 당신 자신이어야 한다. 남보다 나은 삶이 아니라 과거의 나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고, 그 낫다는 기준 역시도 우리가 사회통념상 행복의 기준이 되는 요소들이 아니라 나만의 판단기준을 갖추고 스스로를 사랑해야 스트레스가 없을 것이다.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한 우리의 목표는 비교가 아니라 '나만의 속도로 가는 것'이다.



- 불확실성은 '일어나지 않을 허상'이다.

앞 챕터에서 잠깐 언급했던 바가 있지만 '우리가 하고 있는 10가지 고민 중 9가지는 일어나지 않거나 어쩔 수 없는 일이고 1가지만 진짜 고민'이라는 사실을 다시 상기해 보자. 불확실성에 대한 고민은 미래라는 존재할지 안 할지 모르는 대상에 현재의 존재하는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행위와도 같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나 같은 경우는 뉴스에서 미국 대통령이 관세를 어쩌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어쩌고 하는 급의 뉴스에는 크게 관심은 없고 결과만 보는 편이다. 물론 당연히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알아두면 좋고 알아야만 하는 정도의 시사상식 금융상식이라는 것은 있다. 다만 반대로 그 기본적인 상식을 갖췄다면 그 후에 일어나는 일은 내 손을 벗어난 일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특색은 백인백색 이라지만 유난히 이런 거대한 뉴스에 민감하고 스트레스받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미국 대통령이 관세를 부과하든 말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든 올리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내가 무언가를 한다고 관세를 부과하지 않을 미국대통령도 아니고 기준금리를 내리지 않을 한국은행도 아니다. 이렇게 스트레스받지 않는다고 해서 정치 같은 것에 무관심해서 참정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과는 또 다른 개념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그냥 내려진 결과를 받아들이고 일어날 미래에 대비하되 무관심하지는 않고 깨어있는 것이다.


또한 불확실성은 '책임 회피'의 방패이다. 일어나지 않을 미래에 대해 걱정이라는 허상에 매몰되어 '어떻게 될까', '실패하면 어쩌지'와 같은 비생산적인 질문에 에너지를 쏟게 된다. 이런 쓸모없는 곳에 사용되는 에너지는 안타깝게도 우리가 지금 당장 해야 할 가족과 함께할 시간, 나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운동이나 활동, 미래 재정 계획 점검 등의 가장 생산적인 곳에 써야 할 에너지를 적재적소에 쓰지 못하게 만든다. 생산적이고 통제가능한 현실행동에는 당연히 책임이 따르게 되는데 이런 불확실성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가장 쉬운 핑계이다. 당신은 허상에 대한 고민들을 노력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이는 무가치한 곳에 에너지를 투자하는 손해 보는 장사이다. 가장 합리적인 행동은 허상을 지우고 통제가능한 책임감 있는 현실에 집중하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한 우리의 목표는 불확실성이 아니라 '생산적 현실에 집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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