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블로거였지만 우울했던 대학원생

그 시절의 나는 스스로에게서 자신감을 잃어갔다.

by Gina


블로그에 글을 썼다.


2004년부터 시작한 나의 기록들은 차곡차곡 나만의 공간을 쌓아갔고, 2013년에 정점을 찍었다.


네이버 상단에 나의 글이 노출되고, '파워블로거'로 불리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내가 파워블로거로 살면서

온라인상에서 가장 빛나던 그 시절..


현실의 나는

생애 가장 어둡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열쇠구멍속과 같은 비좁은 틈새에 갇혀 있었다.



.

.



당시 나는 석사과정을 밟는 대학원생이었다.


하루에 15시간 이상을 머물러야 했던

실험실의 환경은 열악했다.


삭막한 공기와 빽빽하게 채워진 테이블이 있는 실험실.

층마다 나눠진 연구부서들의 조용하고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매일 분 단위로, 시간 단위로 하루를 쪼개서 생활하고 있었다.



수십 번 반복되는 실험의 실패와 재도전 속에

졸업논문만이 유일한 생존 줄이었기에,

나는 매일 예민하고 날카롭게 다듬어져 있었다.

.

.




실험실에서 만난 입학동기와 다퉜다.


그 당시 나는 버티고 버티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실험실 환경이 싫어진 상태였다.


조그마한 사소한 갈등마저 쉽게 풀 수 없었다.


나에게 피해 주는 게 싫었고,

나는 이기적이었다.



동기와의 다툼도 용납하지 못했고,

선배들의 까탈스러움에 웃으며 받아주기보다는

점심시간과 티타임을 포기하는 쪽을 택했다.


랩실 사람들과 의미 없는 수다에

내 휴식 시간을 뺏기기 싫다는 핑계로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나랑 안 맞으면 안 어울리면 그만이지.'

그런 단순하고 오만한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2013년

지독하게 무더웠던 여름

결국 나는 대학원 문을 나섰다.




실험실에 적응하지 못한 건 나였다.



.

.

실험실이라는 작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패배감과

이겨낼 수 없다는 생각속에 좌절이 찾아왔다.


논문을 쓰기 위해 숨가쁘게 달린 15개월... 그 긴 시간을 미련없이 놓아버린 나... '나는 더 노력해도 안될거야'라고 스스로를 탓하고 합리화하며, 이 길이 아니라고 포기해버린 상태였다.



수십번의 실패를 반복하며,

실험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마다,

스스로를 의심했다.

길고 길었던 나의 연구가 뿌리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때의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

.


석사학위를 포기하니

박사학위도..

교수로서 살고자 했던 평생의 꿈도

희미하게 사라졌다.



고등학생 때부터 달려온 길. 과학자로서 살고 싶었고,

평생 연구하면서 학자로서의 미래를 꿈꿨었는데...

10년이 넘도록 공부해서 달려왔던 나의 인생이 희미하게 사라지는 물거품이 되었다.



가장 어둡고 빛 한점 없는 어두컴컴한 열쇠구멍

그 깜깜한 빈틈마저도 사라져 버린

우울하리 만큼 무거운 미래가 상상되는

그런 시기였다.







나의 어두웠던 세상과

온라인 속의 블로그는 달랐다.

그곳은 오직 나만이 주인공인 공간..


블로그는 나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블로그에 적는 글에는 좋아요 공감버튼이 수십 개가 눌렸다. '글을 잘 보고 있다'는 문구가 달렸고, '글이 읽기 좋다.' '재밌다' 등등...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스팸메일함에는 제품제안 메일들이 가득했고, 브랜드에서 보낸 협업 메일이 쏟아졌다.


누군가 나를 찾았고, 나를 필요로 했다.


네이버 메인 상단에 나의 글이 노출되었고,

매일 수천명이 나의 블로그를 찾았다.

블로거로 인정받고 있다는 착각속에서

나는 더더욱...

블로그의 세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현실은 우울했지만

블로그에서의 나는 행복하고 즐거웠다.



나에겐 블로그 속 세상이

현실을 잊게 해주는 탈출구였고,

가장 달콤한 꿈 같은 도피처였다.




.

.

그러나 언제까지고 그 안에 머무를 수 없었다


현실의 나는 당장 월세를 벌고 생활비를 벌어야했다.

대학원을 자퇴하고 나와서, 사회는 나에게 혹독했다.



취업 준비와 새로운 공부를 병행하며

'노력하면 뭐든 될 거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실상은 블로그가 주는 화려한 보상 속에

현실의 고통을 묻어두고 있었다.


나는 착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이전 01화[프롤로그] 블로그가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