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꺼지지 않던 실험실의 불빛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홍대와 신촌,
시끌벅적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대학로 인근에서 행사 홍보를 하는 일은 예상외로 너무나 즐거웠다.
실험실 건물의 불빛을 피해 도망치듯 옮겨온 이곳에서, 나는 뜻밖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새로운 일을 하면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처음으로 '책임'이 있는 일이 주어졌다.
오래지 않아 행사 포스터 제작담당을 맡게 되었을 때는 설레기까지 했다. 규모가 작은 회사라 아르바이트생인 하에게 과한 일을 분담해 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생 공부만 해왔던 나에게, 실험실에서 연구프로젝트만 해왔던 나에게는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고 도맡아 할 수 있는 일이 주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작업조차 즐거웠다.
유명한 디자이너와 일러스트 작업을 하면서 새벽 늦게까지 아주 작은 수정작업까지도 의논했다.
수정본을 받아 마케팅 팀장님과 상의하고,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모든 게 새로운 일이었기 때문에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것에 만족했다.
좁은 실험실에 갇혀 연구논문을 읽으며 머리를 짜냈던 시간들. 아무리 고민해도 해결되지 않는 실험 실패 속에 고통스럽던 시간이... 이곳에서는 거짓말처럼 하루하루 빠르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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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일이 결과물로 눈앞에 나타났을 때는.. 디자이너한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당장 달려가서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싶었다.
정성껏 만든 포스터가
수백 장 프린트되어 사무실로 도착하던 날,
나는 포스터를 들고 홍보하러 사무실을 나섰다.
나는 비로소 나를 알게 되었다.
논문들 속에 파묻혀,
현미경 너머의 세상을 들여다보는 인생보다는
활동적으로 현장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만나고 팀프로젝트를 하는 일이
나에게 더 잘 맞는다는 것을...
나는 혼자인 게 편한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새로운 일을 하면서 깨달았다. 사람들과 부딪히며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결과로 완성시킬 때 가장 큰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10년 넘게 꿈꿔온 과학자의 길을 포기했을 때 느꼈던 좌절감은 신촌의 활기찬 거리에서 조금씩 희석되고 있었다.
뭐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아직도 20대 후반이었고, 취업준비생이었다. 이제라도.. '더 늦지 않았다고'... 제대로 된 출발선에 섰다면 그걸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바심이 생겼다.
어느덧 나는 스물여덟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친구들의 소식이 들려왔다. 이미 직장에 취업했다는 친구들, 번듯하게 돈을 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를 샀다고 했다. 대리직급을 달고 좋은 집에 사는 것같은 그들의 SNS가 계속 신경쓰였다.
나의 SNS 역시 변함없이 화려했다.
블로거로 생활하며 보여주는 내 삶은 여전히 화려하기만한 허상속에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안정적인 친구들의 미래와 달리, 나는 이제야 겨우 아르바이트생으로 사회에 첫발을 떼고 있었다.
마음의 여유가 사라졌던 건 그대로였다.
블로거로, 그리고 아르바이트생으로 오래 지낼 수는 없었으니까...
대학원 자퇴.. 석사학위 수료... 이력서에 적힌 그 한 줄이 취업에 득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실이 될까 봐 두려웠다.
나는 공채 합격을 준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