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폐간이 되기 일주일 전 윤으로부터 지방선거 소식을 들었던 나는 선거가 여촌야도였다는 결과가 서울시의회 선거에선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사뭇 궁금했었다. 결과는 야당의 대승으로 이어졌고, 그로 인해 자유당은 이승만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야당의 장면 부총리가 권력을 쥐게 될까 봐 촉각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한 정국을 생각하면 윤의 입지도 불안해 보기는 마찬가지여서 무리수를 두는 자유당의 행보에 회의감을 느끼는 윤이 곧 결단을 내릴 것 같아 보였다.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 중앙청으로 향하는 전차 안에서 나는 윤이 했던 말을 줄곧 생각했다.
"정 안 되면 고향에 내려가 사는 것은 어떨까? 니나 나나 촌놈으로 태어나 서울살이도 해 봤고, 비빌 언덕 없이 버틸 만큼 버텨 봤으니 미련 없이 떠나는 것도 괜찮은 것이 아닌가 말여."
그랬다. 윤은 태생부터 모든 걸 갖추고 태어난 동료들과 달리 그들과의 아주 힘겨운 경쟁 속에서 때론 더 많이 비굴하게 더 많이 굽신거리며 그 자리까지 올라간 것이었기에 삶이 힘겨웠고, 그 힘겨운 상황을 유지할 만한 명분이 없어진 상황에서 서울살이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느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나는 윤처럼 정치권에 관심은 애당초 없었고, 아내 역시 서울살이에 미련은 없다 했으니 윤보다는 고향으로 내려가기가 수월하리라 생각하겠지만, 나의 처지를 생각하면 고향에서의 밥벌이 또한 녹록하지 않을 것이 뻔하다.
전차가 중앙청에 도착했고, 윤을 만나기 위해 정문 초소에서 연락을 취했다. 잠시 후 윤이 나왔고, 윤과 나는 안국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여? 바쁜 기자분이 날 다 찾아오고, 오늘 출근 안 한겨?"
"그렇게 되였어. 어제부로 신문사 폐간되었구먼."
"아이구 으쩌냐? 조카는 아남?"
"아직... ."
"그렇겄지. 말하기 힘들었을 겨. 내도 시방 생각이 많아지는 판인디 영숙 씨헌티 서울 떠나 고향 가 살자고 어찌 말허나 싶다."
"니 참말로 고향 갈 생각이여?"
"이잉, 이번 서울시 선거 참패로 분위기가 이상허게 돌아가고 있다 말이지. 게다가 얼마 전 있었던 도의원 선거에서 부정 투표가 있었다는 폭로가 있어서 정국이 시끄러워지겄어."
"그건 또 뭔 말이여?"
"글씨 정읍에서 자유당 쪽 사람 당선시킬라구 투표용지를 바꿔치기했다는 구먼 그걸 한 순경이 동아일보 본사에 양심선언을 했고."
"그런 일이 있었구먼. 자유당 사람들 선을 늠었네. 그랴서 니는 고향 가 뭘 허고 살라 그러는 겨?"
"이잉 선배가 읍 경찰서장은 어떠냐고 해서 그리 생각하고 있어. 근디 니는 당장 어뜩헐거여? 곧 애도 생길 거고. 매형이랑 사둔어른 볼 면목도 읍을 텐디."
"그러니 더 걱정이다. 내 이 몸으로 고향 가서 형님처럼 농사를 지을 수도 없구 기술도 없구. 참 난감하게 돼얐어."
윤과 나는 안국동 어느 이름 없는 선술집에서 낮술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 후 해질녘에 헤어졌다. 윤은 반차를 냈고, 난 실직을 했으니 가능했던 일이었다. 낮이 긴 여름날의 해질 시간이 8시에 다다른다는 걸 잊고 있던 난 손목시계를 보고 나서야 시간을 알 수 있었다. 이 시간이면 출근하지 않은 채 낮술을 마신 내가 퇴근 후 한잔한 것으로 생각하게끔 알리바이를 아내에게 증명해 보일 수 있겠다 싶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지만 날은 여전히 후덥지근 했고, 늦은 장마 탓에 끈적끈적한 공기가 집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전차로 두 정거장 되는 거리를 걷다 보니 어느새 신혼집에 다다랐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뒤에서 날 부르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퇴근이 늦었네요."
"아, 동료들과 한잔하느라 늦었소. 저녁은 먹었소?"
"은수가 집에 가기 싫다고 버티다 버티다 지 작은 아버지가 보낸 사람 따라 차 타고 이제 막 가서 아직 못 먹었구먼 유."
"홀몸도 아닌데 잘 좀 챙겨 먹지 그랬소."
"은수랑 늦은 점심을 먹어서 배 안 고프구먼유. 근디 무슨 일 있어유? 어제부터 당신 낯빛이 안 좋구먼유."
"그리 보이오? "
"야, 귀신은 속여두. 지는 못 속이는 거 모르는 감유? 어제는 기챙이랑 기만이도 있구 은수도 있어서 아는 척 못했는디 뭔 일 있지유? 숨기지 말고 뭔 일 있으면 지한테 말씀 허라구 했잖유."
"그게 말이오. 어제부로 신문사가 폐간해서 오늘 출근을 안 했소. 아침에 이야기하려 했는데 어린 손님 덕에 이제야 말을 하는구려. 미리 말 못 해서 미안하오."
나는 머뭇거리다가는 정말 그 시기를 놓칠 것 같아 아내에게 속사포로 내가 처한 상황을 아내와 눈을 맞추지도 않은 상태로 이야기했다.
"그랬구먼유. 그래서 어제도 웃음기 하나없었구. 오늘 아침 출근도 늦었구 ... 미안해 유. 그런 줄도 모르고 지는 또 다른 상상했구먼 유. 신문사 일은 전에 미리 말씀하셔서 닥칠 일이라 생각했으니께 괜찮어유. 아프지만 않으면 입에 풀칠은 허구 살 수 있으니께."
"그래두 내 면목이 없오. 장인어른과 할머니 뵐 낯도 없구."
"그게 당신이 잘못해서 그런 것도 아닌디 우짠데요. 신문사 폐간이 당신 탓은 아니잖아유. 그러지 말고 어여 집에 들어가유."
나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아내는 오히려 나의 실직에 담담하게 대처했고, 그해 겨울이 되어서야 우리는 일 년 만의 서울살이를 끝내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 사이 막내 처남은 탤런트 시험에 최종 합격하고도 배우가 되지 못하고 큰처남 기만이의 소개로 대서소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해산달의 이사로 아내는 많은 고생을 했고 그 미안함은 고스란히 나의 몫이 되었다. 그해 가을 먼저 고향 읍의 경찰서장으로 내려가 있던 윤 덕분에 우리는 읍내에 아주 작은 하꼬방이 딸린 집에서 살림을 이어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