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자

by 자강



다음날 아침 어린 손님은 일찍 일어나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들어와 아침 준비를 하는 아내에게 무언가를 재잘거린다. 기회를 엿봐 신문사가 폐간한 사실을 말하려던 시도를 포기한 나는 인쇄소에 들려 출근해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좀 늦은 출근을 했다. 정확히 말하면 출근하는 척을 하는 것이었다. 출근길에 매일 보고 지나쳤던 거리의 모습이 새로이 보이는 것은 아마도 나의 마음 가짐이 달라졌기 때문이리라. 여느 때 같으면 만원 전차에 몸을 싣고 신문사에서 해야 할 일을 생각해야 했지만,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니 무상무념으로 무작정 길을 걸었다.
재동국민학교 앞을 지날 무렵 날이 더운 탓인지 운동장에 나와 버드나무 아래에서 수신(修身) 과목을 공부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의 국민학교 시절이었던 일제 때 내선일체(內鮮一體)를 위해 황국신민서사를 외우게 했던 수신 과목은 아주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일본말이 어렵기도 하였지만, 마음에 내키지 않는 것을 배우니 더욱 외우고 암송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었는데 그로 인해 나에게는 늘 일본 선생에게 매를 맞거나 벌을 받았던 수신 시간이었다. 나는 그 수신 과목 시간에 해방된 나라의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나 궁금하여 가만히 운동장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공교롭게도 수업 내용은 '정직'이다. 하얀 반소매 샤쓰를 입고, 갓 이발소를 다녀온 듯한 머리를 한 선생이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정직에 관한 일화를 아이들에게 이야기한다. 나는 아침에 아내에게 거짓으로 출근한다 말하고 나왔는데 이는 정직하지 못한 행동이니 선생의 말에 의하면 난 부도덕한 사람이겠구나 싶었다. 또다시 운동장으로 시선을 돌려 다른 무리의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체육 시간인지 줄을 서서 제 차례를 기다리거나 막 단박질을 하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를 악물고 뛰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단박질을 끝낸 몇몇 아이들은 철봉에 매달려 급우들의 단박질이 끝나기를 기다리기고 있기도 했다.


학교 운동장 구경을 잠시한 나는 창덕궁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가는 길에 아내와 함께 갔던 한약국집이 있다. 저 한약국집의 큰 딸은 아버지의 덕으로 이화를 나온 신여성이었는데 십 년 전 동경에 있는 Y대의 영문과를 졸업한 사내와 결혼을 했다고 한다. 그 딸이 결혼한 지 8년 만에 아이가 생겼고, 그 아이를 작년에 낳았으니 생애 첫 손자를 얻은 한약국집 의원은 아내의 임신을 축하해 주며 딸의 이야기를 늘어놓아 알게 되었다. 그 딸의 아이는 이제 돌잔치를 했겠지. 돌잡이로 무얼 잡았을까? 그리고 장차 태어날 나의 아이는 무엇을 잡을까? 아니 그 보다 먼저 아들일까? 딸일까? 나는 딸이면 좋겠다 하였는데 아내는 아들을 먼저 낳고 싶다 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덧 청계천변이 보이는 곳까지 내려온 나는 흐르는 땀을 씻으려 잠시 걸음을 멈췄다.

청계천의 일부는 이미 작년부터 복개(覆蓋)를 시작하여 광통교 상류 부근은 이미 덮인 상태였다. 일제 때부터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살던 청계천변은 전쟁이 끝난 다음 생계를 위하여 서울로 모여든 피난민 중 많은 사람들이 청계천변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들은 반은 땅 위에, 반은 물 위에 떠 있는 판잣집을 짓고 생활하였는데, 천변을 따라 어지럽게 형성된 판자촌과 여기에서 쏟아내는 생활하수로 청계천은 더욱 빠르게 오염되어 갔다. 엄청난 양의 하수가 도심 한가운데를 흐르면서 발생하는 악취로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큰 고통을 받았으며, 도시 전체의 이미지도 크게 손상되기에 이르렀다. 정부는 청계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우면서도 유일한 방법으로 '복개(覆蓋)'를 선택한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소중한 문화유산이 사라지는 일도 생겨났기에 그 기록을 다룬 기사를 교정한 기억이 났다.

생각보다 멀리 걸어오다 보니 땀도 땀이거니와 의족을 한 다리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더위도 피할 겸 찻집에 가보기로 하고 광교 모퉁이에 보이는 찻집에 들어갔다. 찻집 메뉴로 먼저 커피와 쌍화차가 눈에 띄었다. 나는 계피향에 이끌려 뜨거운 쌍화차를 주문했다. 삼복더위에 뜨거운 쌍화차라니 주문을 받는 여급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힐끗 바라본다. 잠시 기다리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쌍화차를 여급이 탁자에 내려놓고 간다. 잣과 대추를 띄운 쌍화차에 달걀노른자를 넣었다. 이른 아침 홀로 뜨거운 쌍화차를 마시는 내가 신기한지 여급은 카운터에 앉아있지만 여전히 힐끔힐끔 나에게 눈길을 보냈다. 잠시 쉬러 들어온 찻집조차 마음 편히 쉴 수 없으니 나는 재빨리 차를 마시고 찻집을 나와 버렸다.


시계를 보니 아직 정오도 안 된 시각. 다음엔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을지로로 향했다. 임 선생님이 신문사를 대신해 소개한 인쇄소가 있는 곳으로 가보기 위해서였다. 지팡이를 의지해 한참을 걷다 보니 임 선생님이 말씀하신 인쇄소가 있는 골목길에 다다랐다. '○○인쇄' 이름의 간판이 세로로 길게 걸린 벽돌 건물이 보이고, 그 옆으로 또 다른 인쇄소가 보였다. 나는 호기심 반 절박함 반이 섞인 상태로 인쇄소가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인쇄소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쪽에 있는 모양이다. 또 다른 간판이 보였고 화살표로 계단 아래쪽을 가리키는 간판이 보였다. 다리가 불편하니 올라가는 것보다는 덜하지만 내려가는 계단 역시 나에겐 큰 장애가 된다. 이 인쇄소에서 앞으로 일을 하게 된다면 이 계단을 수도 없이 오르락내리락해야 할 터인데 그것부터 걱정이 앞섰다. 나는 오른손에 지팡이를 쥐고, 왼손으론 계단 난간에 손을 짚어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그렇게 내려간 끝에 다다른 곳엔 굳게 닫힌 인쇄소 문만 보일 뿐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볼 수가 없었다. 이 어수선한 시국에 영세한 인쇄소가 살아남기엔 어려웠을까? 창도 없어 어둑한 지하 계단에서 난감함보다 서글픔이 먼저 밀려와 순간 나도 모르게 털썩 계단에 주저앉고 말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내키지는 않았으나 마지막 희망을 부여잡던 마음이 한순간 풀어헤쳐졌고,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하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얼마 있다.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여름 한낮의 뙤약볕이 맨머리인 나의 정수리를 뜨겁게 달군다. 윤을 찾아가 봐야겠다. 일을 핑계로 그간 소원했던 그를 만나면 무슨 수라도 생기겠지 하는 얄팍한 생각은 아니었다. 그도 입지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영숙 씨에서 아내에게로 전해진 소식을 익히 알기에 서로 의지할 수 있지 싶어 찾는 것이다. 그도 나처럼 언젠가는 실업자가 될 것 같은 불길한 징조도 또한 한 몫을 했기 때문이다. 중앙청은 그렇게 다음 나의 목적지가 되었다. 힘겹게 전차에 몸을 싣고 전차는 달린다. 윤이 있는 중앙청으로.

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