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간

by 자강





임 선생님으로부터 신문사의 형편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을 즘 둘째 처남의 배우 시험 합격 소식을 전해 들었다. 대통령 선거일이 있던 날로부터 며칠 전에 미국과 합작한 한국 최초의 방송국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이야기를 아내에게 전했는데 그 소식을 들은 건지 아니면 이미 알고 있었는지 둘째 처남 기창이는 배우가 되는 꿈을 꾸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우리에게 그 뜻을 처음 말했고, 그 꿈을 반대하는 큰 처남 기만이와 갈등을 빚는 것 같았다. 그런 시끄러운 상황에서 아내의 시름은 커져만 갔고, 나는 나대로 회사의 존폐 위기로 한참 혼란한 사이 기창이가 배우 시험에 응시했고 최종 합격만 남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내는 큰 처남과는 달리 둘째 처남을 지지해 주었고 나에게 장인어른을 설득해 달라고 부탁을 한 상황이었다. 나는 별다른 경제적 도움을 줄 수 없기에 장인어른께 둘째 처남의 경제적 지원을 부탁하는 말을 거들기로 하고, 합격 발표가 나는 주의 토요일에 함께 고향에 다녀오기로 했다.

오늘은 둘째 처남의 생일이어서 아내가 신문사 근처 빵집에서 케이크를 사 오라는 부탁을 했다. 나는 어수선한 신문사 분위기를 뒤로한 채 케이크를 사러 빵집으로 가기 위해 퇴근 준비를 했다. 그때였다. 임 선생님이 교정실로 전화를 했고, 나의 사수 철수 씨와 나를 국장실로 오라는 말이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아, 퇴근하려는데 왜 부르지?"

철수 씨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전화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국장실로 호출했다는 신호를 내게 보냈다. 사수와 나는 다소 긴장한 상태로 국장실 문 앞에서 노크를 했다.

"네, 어서 들어들 와요."

"부르셨습니까 국장님."

전화를 받을 때와는 사뭇 다른 자세로 사수 철수 씨가 국장님께 깍듯이 묻는다.

"거기 앉아요. 어...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 많이 했는데 전에 말했듯이 신문사 후원이 줄면서 재정적으로 어려워진 사정 다들 알지요? 오늘 신문사 사주 회의에서 폐간이 결정되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결정되었고, 상당수 기자들이 퇴사 준비도 못 한 채 결정된 터라 다들 힘들게 되었어요. 면목 없습니다. 오늘까지 일한 월급은 봉투에 넣었어요. 급박하게 결정된 일이라 옮길 신문사도 못 알아봤을 텐데 미안들 합니다."

국장님은 안경 너머로 흐르는 눈물을 훔쳤고, 철수 씨와 나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조용히 국장실을 나온 철수 씨와 나는 아무 말도 없이 마지막 퇴근을 했다. 둘째 처남의 기쁜 생일날에 신문사 폐간 소식을 전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계단을 천천히 내려왔다. 매일 오르고 내리던 계단이건만 폐간 소식에 충격이 컸던지 층계가 더 높아 높이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케이크를 사기 위해 빵집으로 향하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내는 신문사를 퇴사하면 시골집에 내려가 살아도 괜찮다고 이야기했지만,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의지할 곳 하나 없던 서울에 가정을 이루고 아이도 생겨서 열심히 일을 하면 되겠다 싶은 찰나에 폐간이라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니 벼랑 끝에 선 기분이 들었다. 전투 중에 한 다리를 잃었어도 이렇게 절망적이지는 않았는데 가장의 무게란 실로 크고 무겁다는 것을 느꼈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추스른 나는 빵집에 들러 가장 크고 맛나 보이는 케이크를 샀다. 오늘 일은 내일 아내와 단둘이 있을 때 이야기하고 우선 기창이의 생일을 축하해 주리라.

전차에 몸을 싣고 집 근처 정거장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고 있자니 큰 처남 기만이가 나를 불렀다.

"매형, 같이 가유."

"어, 퇴근이 좀 늦구먼."

"이 대통령 당선 후 할 일이 더 늘어서 눈코 뜰 새 없구먼 유. 그거 케이크 맞쥬? 지가 들을 테니 이리 줘유."

다리가 불편한 나를 위해 큰 처남이 케이크를 건네받았다.

"매형 신문사는 별일 없지유? 소문에는 이 대통령 당선 뒤로 정치 깡패들이 더 판을 치고 댕기면서 야당 쪽 사람들 많이 힘들게 한다던디 매형 신문사도 신익희 선생 쪽 사람들이 만든 신문사 아녀유?"

"그렇잖아도 후원이 줄고 재정이 어려워져 힘들게 되었어."

"아이구 어쩐 대유. 누나는 별말 읎던디."

"누나가 워디 그런 말 옮기구 다니는 거 봤남? 여장부잖어. 전쟁통에도 집안 큰일 다 알아서 하구. 남자로 태어났으면 큰일 했을거여."

"맞지요. 하하하."

나는 차마 오늘 신문사의 폐간 소식을 큰 처남에겐 먼저 말을 할 수 없어서 조용히 다른 말로 둘러대며 집으로 향했다.

"누나, 우리 왔어."

기만이가 아내를 부르는데 대문을 열고 나오는 낯선 이가 있었다. 까만 피부에 큰 눈망울을 한 키 작은 여자아이가 아내와 함께 우리를 반겼다. 그 아이는 은수라고 했다. 둘째 기창이를 좋아해 전쟁이 끝나고도 서울로 곧장 가지 않았다던 그리고 작은 아버지를 따라 대만에 갔다던 아이. 그 아이가 돌아온 것이다. 나는 아내에게 말로만 듣던 그 은수라는 아이를 보고 적잖이 놀랐으나 기만이는 친 여동생이라도 만난 듯이 무척이나 기뻐했다. 은수와 기창이 기만이 아내와 나는 그렇게 기창이의 생일날 미역국에 고기반찬으로 행복한 파티를 하고 헤어졌다. 그 은수라는 아이는 하룻밤을 우리 집에서 자고 간다며 집에 가질 않았다. 그나저나 출근할 신문사가 사라진 내일 아침엔 당장 아내에게 폐간 소식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어린 손님 덕분에 그 어려운 일을 미뤄야 할 형국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그건 아침이 되면 알게 될 일이다. 우선 잠을 청해야겠다.

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