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있기 며칠 전 서울에 텔레비전 방송국이 생겼다는 소식을 남편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러고 달포 후 기창이가 그 방송국에 시험을 보겠다는 말을 내게 처음으로 했다. 우리 삼 남매 중 가장 인물이 좋기로는 막내인 기창이가 맞지만 인물이 좋다고 모두가 배우가 되는 것은 아니어서 기만이와 난 배우 시험을 보겠다는 기창이를 말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아신다면 풍각쟁이가 되려 한다며 호통을 치실게 분명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기창이, 니 참말로 공부 안 허고 배운가 뭔가 헐 참인겨?"
"왜, 안 될 것 같아서 그런겨? 내는 자신 있는디. 아부지는 풍각쟁이라 뭐라 하셔두 앞으로 방송국 배우가 얼마나 잘나가게 될지 두고 보라구."
"기창아, 니 워디서 그런 소리 듣고 와서 그런 꿈을 꾸게 된 거여? 누나는 니를 뭐라 하는 것이 아니구. 진심으로 니 장래가 걱정돼서 그런 것이구먼."
"그 장래희망이 배우가 되는 것이란 말이지. 원체 들어가는 게 힘들어서 그렇지. 한 번 방송국 들어가게 되면 형님이 법원 다니며 버는 돈보다 더 벌 수 있다는 말여."
"시방, 니 공부 안 허구 방송국 들어간다는 것이여?"
기창이와 내가 주고받는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기만이가 입을 열었다.
"내는 반대혀. 니는 나보다 머리도 더 좋고 신식 공부도 많이 했는디 그 아까운 재능을 썩히고 배우 나부랭이나 헌다고 하는겨 시방?"
"배우가 워떠셔 그려? 행님은 그 골치 아픈 벱 공부허면서 맘 편한 적 있었는감?
"시상에 맘 편하게 아무 걱정없이 할 수 있는 있기나 한 건감? 니는 그걸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겨?:
"행님이 널 물러서 그런 거지. 미국이 우리나라랑 손잡소 만든 방송국에서 방송을 만들고 텔레비전 이란 게 집집마다 생기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날이 온대니께."
"그래서 힘들게 서울까지 와서 공부하고 그걸 써먹을 생각 안 하고 아버지께서 역정 내실 일을 허겠단 말이여 니는?"
"내는 아버지 무서워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거 싫구먼."
"됐어, 싸우지들 말고 그만들 허여 누나가 기창이 니 생각 알았으니께 매형이랑 같이 아버지께 말씀드려 볼 거구먼."
기창이가 막내여서 마냥 어리게만 생각되었었는데 저리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걸 보면서 이젠 다 컸다 싶어 내심 기특했다. 아버지는 풍각쟁이라고 말씀하시겠지만 나는 기창이의 꿈을 응원한다.
기창이와 기만이가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고 남편은 퇴근 후 임 선생님과의 저녁 술자리가 있어서 늦는다고 해기에 나는 기다리지 않고 잠을 청했다. 내일 오전엔 외숙모를 만나기도 해야 하고 배가 점점 불러오면서 몸이 점점 무거워지고 쉽게 고단해지는 터라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기도 전에 잠이 쏟아진다.